일어날 일 그리고 일어난 일

프롤로그 - 시작하며

by 사치한




언젠가 한 번은 일어날 일이라고 오래전부터 생각했습니다.

생애, <산문> 형태의 글을 출간한다는 것이요.

몇 년 전 대략적으로 기획한 목차가 존재하지만.... 항상 그렇듯 다양한 삶의 변곡점을 마주하고, 계절이 지겹도록 오며 가며 인사를 하고, 또 그 인사는 매번 새로운 우선순위를 만드니까요.

그럼에도 걸어온 길을 한 번쯤은 되돌아보고 싶은 그 순간이 올 거라고 짐작했어요. 도저히 미뤄질 수 없는 질곡의 단말마처럼요.

대학원이라는 고비용을 지불하고서야 첫 페이지를 쓰게 된다는 것은 돈의 가치를 무용하게 하는 아이러니한 케이스이지만, 결국 일어날 일이 일어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그것이 '순리'라고 까지 여겨지는 것은 '산업 행위'를 해온 자의 자격이 아닐까 싶습니다.


디자인 현장에서 오랫동안 습작처럼 써 온 글,,, 음~ 안 팔리는 글이 될 듯합니다.(피식)

독자께서 읽고 난 후, 발상의 전환이 된다면~ 여러분에게 특별한 페이지가 되었다면~ 거대한 새 Bird로 날아갈 듯 기쁠 것 같습니다.

아주 오래전 누군가에게 감동을 주는 디자인을 펼치고 싶다고 열망하던 그 청춘에게 이제와 갈채하는 꿈의 격조있는 응답이라고 생각할게요.





대학교를 장학생으로 졸업하고 공모전에 수상하고도 내가 원하는 디자인회사에 가고자 자의적 백수로 2년간 있었습니다.

언니가 출근하면 책상 위에 2만 원. 그 2만 원으로 좌석버스를 타고 강남타워레코드에서 외국잡지를 사서 보는 게 큰 즐거움이었습니다. 용돈의 대부분을 그렇게 썼어요. 한국의 인쇄기술이 뒷받침되지 않은 상태로 외국잡지의 기갈나는 인쇄상태와 물 건너온 종이임에도 향기까지 났던 외국잡지가 무척 신기했어요. 콘텐츠, 사진, 타이포그래피, 디자인 등 도저히 국내잡지에선 볼 수 없는 문화적 충격이기도 했고, 아트디렉터 데이비드 카슨은 내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손꼽아 기다리는 신보도 있었고요.


외국잡지를 보고 온 날이면, 깊은 밤 소리 나지 않게 책상 앞에 앉아 흐느껴 울었습니다.


나도 이렇게 디자인할 수 있는데....
나도... 이렇게 하고 싶은데....
그런데 나는 왜 여기 이렇게 있지?...


그 응답 없던 질문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누군가에겐 그 순간이 좌절처럼 느껴졌을 텐데, 왜 내겐 마그마처럼 뜨거운 열망이 되었을까요? 마치 미시마 유키오의 <금각사>처럼 이글이글 가슴속에서 타오르던 '눈부신 그 무엇'이 된 듯 말입니다. 신념이자 예언처럼 크게 크게 폭풍 같은 나선환을 그리며...


어딘가에 있을 누군가에게 감동을 주는 디자인을 펼치고 싶다고 갈망해 왔던 그 순간을 사랑합니다.

그랬던 디자인과 학생이 성장하여 아트디렉터가 되었고, 콘텐츠 기획력을 가진 일을 사랑하고 현장을 리드하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열망했기에 현장의 고단함을 견딜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어요. 4대 보험이 안되고, 월급이 밀리고, 옆에 동료가 수도 없이 나가떨어지는 창간&리노베이션... 에서도 나를 수호하는 강력한 방어막이었고, 환풍기 조차 녹아 흘러내린 그 찌든 힘듦 속에서도 웃고 있는 황금마스크였어요. 그토록 스스로가 멋지고 대견하고 그랬습니다.

남들은 노동착취 열정페이라고 하겠네요. (후후)


그런 내가 메이저 패션잡지사에 스카우트되었을 때, 진흙구덩이에서 도약한 ’거대한 새’ 라고 믿었습니다. 더 넓은 세상으로 날아올라갈 것이란 기대와 희망&꿈... 또한 누군가 원석 같은 나를 알아보고 발탁해 준 것처럼 나도 그런 위치가 되었을 때 그 '기회의 티켓'이라는 것을 준비된 자에게 전해주는 역할을 하고 싶었어요. 그것이 '청출어람'한 자의 몫이라 믿으며.


그토록 내가 사랑했던 산업의 한 장르는 이제 그 기회도 부유한 듯, 사치가 되었습니다.

그저 산업의 수혜를 받아 포트폴리오에 주렁주렁 WORKS를 나열하기에 마음 편한 것도 아니에요.


그 이유는, 미래세대가
오래전 나와 같은 꿈을 꿀 수 없는
산업에 너무 안타깝습니다.

어떤 면에서 그것은 스타벅스에서 커피마실 돈은 있어도 매거진 하나 사서 읽지 않는 세대에게 도래한 자명한 현실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구인광고도 없이 단 1명을 뽑는,,, 즉, 그렇게 뛰어난 대가리들이 모여 만든 매거진은 줘도 가방만 무거운 현실이요. 또한 '디자인하다'가 툴 tool의 변화에 매몰되어 가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만, 디자인은 항상 산업의 수레바퀴 구조를 도외시할 수 없기에 그 환경 속에서도 디렉터 및 디자이너가 어떻게 이 조화를 리드해야 할 것인지 숙고할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문화정책의 위정자만이 아니라! (다소 고요한 미소로)




< 발행인의 첨언 >


여러분의 특별한 페이지가 될 수 있도록

여기 <나를 디자인하다>에서는 그간 써온 시와 산문, 수필공모전 수상 및 참여한 글도 담으려고 합니다.


본업 외에 어떤 재능을 발견하는 '순간'도 큰 기쁨이었어요. 나를 발견&재발견 그리고 발명하듯. 뭐, 은밀하게 꺼내볼 챕터&케이스가 있다는 것도 사람 자체가 매력적으로 느껴져야 한다는 <나를 디자인하다>의 한 파편일 것입니다.

고로, 그래서, 취미가 단순히 취미가 아닌 본업의 감성을 끌어올리기 위한 불쏘시개로 희생된 것이지만, 그것이 티끌들로 쌓이고 보니 산문도 내고 드로잉북도 내고 그러네요.

기록이 그래서 기억보다 더 무섭습니다.

과연 온전한 산문의 꼴로 추후 출간될 수 있을지, 나 역시 궁금합니다. 그러나 나는 알아요. 내가 그렇게 만들 것이라는 것을.



all txt & art by_ HONG





2025년 03.21 첨언하였습니다.

** 글 내용 중 <나>, <저>의 혼용은 문맥상 매끄럽지 못할 듯하여 <나>로 표기합니다.

상호존중과 예의는 항상 기본옵션입니다.

** 연재 날짜를 지키겠습니다.

** 그림은 따로 첨부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화, 목, 토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