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관 만들기

Day 15. 꿈.

by honggsungg labnote

나는 과학관을 만들고 싶다. 내가 공간 디자인과 전시를 모두 기획한 과학관. 주변 사람들에게 농담처럼 흘리듯이 말한 꿈이기는 한데, 언젠가는 꼭 과학관을 설립해서 과학관장이 될 것이다. 내가 추구하는 과학관의 방향은 아래와 같다.




1. 교육적이지 않은 과학관.


과학의 대중화를 위해 노력하는 여러 사람들과 여러 방식들이 있다. 구는 아이들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과학교육에 우선순위를 두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절대로 교육이 일순위인 과학소통을 하지 않을 것이다. 가장 개인적인 이유로는 초등학생 이하 아이들 특유의 똥꼬발랄함이 나를 너무 지치게 만든다. 구연동화처럼 친절한 말투도 못하겠고, 과장되어 표현하는 것도 못하겠고, 유아스러운 교구나 체험도 제작하지 못하겠다. 내가 유아초등 교육을 못하는 사람이라서 나는 감정적 표현을 하는 사람들이 대단해보인다. 그리고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 또한 별로 좋지 못해보인다. 이런 쪽은 과학의 대중화라기보다는 수학 문제 빠르게 푸는 법, 과학 지문 헷갈리지 않는 법처럼, 시험을 더 잘 치는 법을 알려주는 쪽에 가까워보인다. 그래서 나는 교육이 아닌 과학소통을 항상 지향해왔다.


한편, 유명한 과학관들은 다들 교육적이었다. 나는 대학교를 졸업한 이후에도 국립과천과학관, 국립중앙과학관, 서울시립과학관, 서대문자연사과학관 등등 여러 과학관에 방문했다. 좋은 경험이기는 했지만, 공통적으로 가졌던 불만 중 하나는 너무 과학관이 교육적이라는 점이다. 과학관은 교양인으로서의 과학을 즐겁게 감상하는 경험이 아니라, 교육인으로서 과학을 즐겁게 배우는 체험을 하는 곳이었다. 부스 형식의 과학 전시물을 체험하고 바로 넘어가거나, 교과서같은 느낌의 캐릭터가 과학 지식을 설명하는 등의 초등학생 이하의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전시가 많은 건 사실이다. 그리고 그 아이들이 과학 지식을 배우러 온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학교 바깥의 과학 교육이라는 측면에서 과학관이 교육적인 면모를 가진다는 건 백분 동의한다. 하지만 모든 과학관이 교육적일 필요는 없다.


성인이 된 후에 EBS 방송이나 유튜브를 가끔 보기도 한다. EBS 다큐프라임, 위대한 수업, 취미는 과학 등의 영상은 즐겁게 보고 있다. 하지만 EBS 인터넷 강의를 시청하지는 않는다. 성인은 수능 준비나 내신 대비를 하지 않아, 어떤 개념을 암기하고 교육받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성인들은 EBS에게 지식인으로서의 교양 공부를 원한다. 똑같이 수요-공급 개념을 다루는 컨텐츠라고 해도, EBS 인강과 교재에서 배우는 수요-공급 곡선과 다큐멘터리에서 아파트 가격을 두고 나타나는 수요-공급 곡선은 뉘앙스가 다르다. EBS는 '평생학교'라는 모토를 가지고 학생들만을 위한 교육 컨텐츠 뿐 아니라, 전연령을 위한 교양, 지식, 공부 컨텐츠를 제작한다. 학생이 아니라 성인으로서 EBS에게 기대하는 점은 교육 이상의 교양이다. 온라인의 EBS가 전분야의 교양을 제공하듯, 오프라인의 과학관도 비슷한 역할을 하면 좋겠다.




내가 가장 좋아했던 과학관이자 박물관은 제주도의 넥슨 컴퓨터 박물관이었다. 컴퓨터 박물관은 컴퓨터의 각 부품의 구조와 기능에 대해서 설명하는 층으로 시작한다. 이 층의 바닥에는 각 코스를 따라 전자회로 기판이 그려져있었다. 바닥의 CPU 일러스트 위에는 CPU에 대한 전시물이 있고, 메모리 일러스트 위에는 메모리에 대한 전시물이 있는 식이었다. 두번째 층에는 게임회사 넥슨답게 게임의 역사와 함께, 시대를 풍미한 게임들 (퐁, 갤러거, 테트리스 등)을 체험해볼 수 있다. 그리고 세번째 층에서는 미래의 컴퓨터라는 테마에 맞게 인공지능이나 작은 휴머노이드 체험관으로 꾸며두었다. 세번째 층은 아무래도 아이들을 위한 교육적인 테마를 가질 뿐 더러, 예약을 해야만 즐길 수 있는 체험들이어서 그닥이었다. 마지막 층은 카페와 게임방(?)이 합쳐진 느낌으로 되어있었다. 본격적으로 아이들과 아빠는 게임을 하면서 놀고. 엄마는 그 옆에서 커피를 마시며 쉬기에 너무 좋았다. 게다가 카페에서는 키보드 모양의 빵을 판매하는 것도 킥이었다.


넥슨 컴퓨터 박물관은 어떤 방식으로 컴퓨터가 작동하는지 그 지식을 텍스트와 전시물로 보여줄 뿐 아니라(eyes-on), 관람자가 직접 손으로 게임과 코딩을 하는 컨텐츠 체험을 제공한다(hands-on). 그러면서 마지막으로 부모는 추억의 게임을 회상하며, 아이는 부모 세대의 게임을 엿보며, 가족이 다같이 게임 이야기를 하며 공감할 수 있는 (minds-on) 시간과 공간을 마련한다. 아이를 위한 교육에만 초점을 맞추지 않고, 어른을 위한 컴퓨터 정보, 게임의 즐거움과 추억까지 신경썼다. 세번째 단계의 몰입인 minds-on 까지의 단계를 달성하는 전시가 쉽지 않은데, 넥슨 컴퓨터 박물관은 이를 준수하게 해낸다.


"넥슨 컴퓨터 박물관이 컴퓨터 학습과 코딩 교육에 효과적인가?" 라는 질문에 솔직히 답하자면, No. 하지만 "넥슨 컴퓨터 박물관에서만 얻을 수 있는 경험과 감정이 있는가?" 라는 질문에는 Yessss! 컴퓨터와 게임이라는, 나름 이공계 특유의 매개체를 통해서 가족/친구/연인간의 연결을 가능케했다. 나는 넥슨 컴퓨터 박물관에서의 기억이 너무 좋아서, 이러한 공간이 더 있으면 바램이 있다.




2. 있어보이는, 고급스러운 과학관.


예술의전당에서 공연하는 발레, 오케스트라, 합창같은 문화예술 공연은 있어보이는 하이클래스 계급의 문화처럼 느껴진다. 한가람미술관이나 국립중앙박물관 등 대형 전시관이 유럽/미국의 클래식 미술작품들을 대여한 전시를 보고 있으면 문화인이 된 것같은 기분이다. 현대미술관에서 현학적인 수사로 점철된 작품과 그 설명을 보아도 무슨 말인지 모르지만, 현대미술을 감상하고 왔다는 허세를 부릴 수도 있다. 문학이나 영화 부분도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지적인 허영심을 채우기 위해서 히치콕 같은 고전 영화와 쿤데라 같은 고전 문학을 읽는 사람도 왕왕 있다. 예술의 한 분야를 적당히 좋아하면 "교양있는 문화인"처럼 보인다.


요즘은 한국의 역사 박물관이나 유적 또한 그 위상과 이미지가 바뀌는 게 느껴진다. 초/중학생이었던 나에게 국립중앙박물관은 학기말에 역사체험학습으로 방문하는 곳이었다. 초등학생들이 엄마아빠와 같이 손잡고서 박물관 구경하고, 공부하는 곳이라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1층에 위치한 고조선부터 조선까지의 역사 유물 전시관은 아이들로 시끌벅적했고, 2025년 지금도 많은 인파가 몰려있다. 그러고는 대학생 때 (2019년) 한국미술사입문 과제의 주제를 탐색하기 위해 국중박을 다시 찾았다. 1층부터 계속 돌아다녔지만, 괜찮은 소재를 찾지 못하고 집에 가려다가, 마지막 3층에서 고려시대 종이 나의 마음을 울렸다. 고요하고 웅장한 국중박 3층에 커다란 종 하나가 서있는데, 그 기세가 대단해서 한참동안 빠져서 보고만 있었다. 아마 이 즈음부터 국립중앙박물관은 브랜딩을 준비했던 것 같다. 2021년, 커다란 원형 공간의 중앙에 두 대의 반가사유상만 전시하는 사유의 방부터 시작해, 손기정 청동 투구, 미친 뷰 맛집, 경천사 10층 석탑 등 고급스러운 브랜딩을 지속해서 선보였다. 이제 국중박은 한국사 공부하는 곳 뿐만 아니라, 역사적 유물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곳으로 변모하고 있다. 그리고 국중박의 방문객은 그 역사적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교양인이 된다.


한편, 과학관은 고급스러운 느낌보다는 행정관스러운 느낌이 들고는 했다. 아무래도 과학관이 정부나 교육과 관련되어 있다보니까 그런 것 같았다. 그리고 과학관이 멀끔하기만 하면 됐지 굳이 고급스러움을 추구해야할 이유도 없다. 과학관 앞에서 사진을 찍으면 출장을 나온 것 같은 분위기이고, 과학관 내의 전시작품 앞에서 사진을 찍으면 아이들 데리고 소풍나온 분위기이다. 그나마 과학관의 천체투영관 정도가 천문학스럽고, 멋스러운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공계 분야에서 교양있는 현대 지식인처럼 보이고 싶은데, 손쉽게 그런 느낌을 줄 수 있는 장소가 없었다고 생각한다.




3. 인스타그래머블한, 놀러가는 과학관


예전에는 용산구와 북촌에 있는 디뮤지엄/대림미술관을 좋아했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내가 처음 미술관을 다니기 시작한 10년 전 즈음에, 디뮤지엄/대림미술관에서는 젊음에 관한 사진 전시나, 팝아트 컬렉션, 또는 비비드칼라로 칠한 사물 전시, 등 일반인들이 사진찍기 좋은 전시들을 많이 했다. 나 또한 인스타그래머블한 사진을 얻기 위해서 디뮤지엄/대림미술관에 방문했고, 이를 계기로 나는 미술관이라는 공간에 방문하기 시작했다. 지금도 국립현대미술관의 론뮤익(수많은 해골로 이뤄진 벽 등..)같은 전시에서 많은 사람들이 인스타그램에 많이들 사진찍어 업로드하며, 2025년 최다 방문객을 유치시켰다고도 한다. 이처럼, 사진찍는 전시는 일반인들에게 미술관의 문턱을 확 낮추며, 미술관에 사람들을 유치시킨다.


23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최우람 작가의 작은 방주 전시가 있었다. 이 전시는 굴러다니는 머리를 가져가기 위해 애쓰는 머리없는 짚풀 로봇들을 보여주었는데, 인스타그램에서 꽤나 유명했다. 제임스웹 망원경으로 향하는 배 작품도 있었고, 자동차 브레이크등으로 조립된 구 작품도 있었다. 작품 내적으로도 충분히 과학적인 컨셉을 유지하면서, 작품 그 자체로도 과학기술(..고급 기술은 아니어도, 로봇처럼 배의 노가 움직이고, 기울기/중력을 감지하는 기술이 얼마나 과학적인가!)을 활용하는 작품들이었다. 과학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충분히 시선을 뺏길만한 흥미로운 전시였다. "우와 신기하다!!"라거나, "이 머리 떨어지면 어떻게 하나요?" 같이 정말 인스타그램에서 눈요깃거리 그 자체가 될 수 있는 전시였다. 과학을 몰라도 재미있게 볼 수 있고, 이 작품 내에 있는 과학개념을 알고 있다면, 더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전시. 오마주를 몰라도 즐길 수 있는 영화같은 느낌이었다. 그만큼 이 전시는 내가 미술관에서 감상했던 전시 중 top3에 속할 정도로 좋았다. 전시를 다 보고 나오며, 내가 과학관을 만든다면 꼭 이런 전시를 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image.png https://www.hankyung.com/article/202209078475Y


과학을 몰라도 즐길 수 있고, 눈요깃거리로 볼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 그런 면에서 천문대라는 공간은 정말 좋다. 연인이 야간데이트를 할 만하고 또는 대학교 동아리가 엠티 코스로 넣을만한 곳이라서 놀러가기 너무 좋은 과학공간같다. 그리고 밤, 별, 우주, 어둠, 빛... 이 얼마나 낭만적인가. 별이 이렇게 아름다운데, 과학이 무슨 소용인가. 또한 1월마다 열리는 CES도 스펙터클한 과학관이다. 애초에 CES는 각 기업들의 기술을 자랑하고 선보이는 자리이다. 하지만 CES에서 굳이 춤추고 무술하는 로봇을 보여주고, 전시관을 빛나게 보여주는 이유는, 본인들의 기술이 인스타그램이나 SNS에서 화제가 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각 기업의 기술은 뭐... 어려운 반도체 공정이나, 유압프레스 로봇을 이용했겠지. 보는 입장에서는 그 기술의 내막까지 알면 좋지만, 알 필요는 없다.




과학 그 자체가 인스타그래머블하고, 가벼워지고 있는 것 같다. 한국 과학소통의 대명사, 궤도님은 과학에 미친 자라는 컨셉으로 쉬지않고 과학에 대해서 떠들어댄다. ㅁㅁ요? 당연히 과학이죠. 로 시작해서 과학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 덕분에 사람들은 과학이 정말 어디에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또한 과학이 그리 멀지 않고, 익숙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가 말했던 과학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과학을 가벼운 소재로 여기게 했다는 점에서 굉장한 과학소통을 이룩했다고 본다. 이외에도 공학으로 굉장히 nerdy 제품들을 제작해내는 긱블, 과학적인 주제를 가지고 패널들이 얘기하는 보다, 등의 채널은 각각 괴짜와 팟캐스트 같은 성격을 띄며 가볍게 과학 컨텐츠를 접하게 한다.


오프라인에서도 과학 및 과학관 관련 행사가 종종 나타나고 있다. 국립과천과학관이 퇴근후에 과학관 이라는 프로그램을 주기적으로 선보인다거나, 국립중앙과학관이 과학관 앞 넓은 공터를 이용해서 가족/연인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야구 관람 프로그램을 하고, 사람들에게 친숙한 고양이와 과학자들에게 익숙한 학술대회를 엮어서 냥냥이 학술대회를 열기도 하는 등, 과학관은 그 나름대로 가볍게 사람들을 모이게 하고 있다. 과학관 바깥에서도 과학을 주제로 한 모임이 등장하고 있다. 여행에 미치다 플랫폼에서 과학여행을 떠나기도 했고, 넷플연가 등의 소모임 플랫폼에서 별 보러 가는 모임이나 과학수사 관련 모임 또한 생겨났다. 그런 모임들은 과학같은 건 잘 몰라도 즐기고 놀러간다는 특징에서 내가 바라는 과학소통과 결을 같이 한다. 특히 SNS를 하는 20-30대 어른들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내 마음에 드는 모임들이다.




나는 과학을 접할 수 있는 오프라인 공간을 운영하는 것이 꿈이다. 그 과학공간은 교육적이어서는 안 되고, 고급스러우면서, 인스타그래머블해야 한다. 지식 전달 기능의 과학관이 아니라, 문화로서의 과학공간을 운영하고 싶다.


사실 그런 과학공간이 국내에도 몇몇 있다. (다음 글에 계속)




p.s.

나는 과학관 전문가가 아니다. 내가 과학관 종사자도 아니고, 과학관에 대해 공부를 하고 이 글을 쓰는 게 아니다. 남들보다 과학관에 2배 정도 더 가본 일반인으로서 보고 느낀 점에 대해 쓰고 있다. 현재 과학관은 이렇지 않다거나, 내가 모르는 재미있는 행사가 기획되고 있다거나 한다면 댓글로 많은 반박을 해 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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