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7. 밤.
실험실에서 밤을 샜을 때의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우리 실험실에는 저온실이 있다. 단백질은 상온에서 보관하면 변성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4℃ 근방에서 단백질을 실험하고 보관한다. 매번 단백질이 있는 튜브를 항상 얼음에 박아두고 실험하는 것도 한계가 있으니, 아예 저온실을 세팅해서, 저온실에서 여러 실험을 수행한다. 추위를 못 견디는 나는 저온실에 들어갈 때마다 단단히 마음을 먹는다. 그 날은 실험 스케줄이 꼬여서 새벽까지 저온실에서 실험이 있었다. 실험하면서 자주 노래를 흥얼거리던 나는, 새벽 저온실안에서도 노래를 흥얼거렸다. 옆방 저온실에서도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길래, "저 연구원 분도 새벽까지 고생이 많으시네~"하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1시간 정도 저온실 실험을 잠시 끝내고 밖으로 나왔다. 옆방 저온실을 스윽 지나치면서 안을 봤는데, 그 안은 캄캄해진 채로 아무도 없었다. 복도에 나와서 다른 연구실을 모두 둘러봤지만, 내 자리 말고는 전부 다 불 꺼진 연구실 뿐이었다. 귀신을 느낀 건가 싶었다. 그 날 따라 으슬으슬했던 느낌은 저온실의 낮은 온도 탓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 저온실에서 밤에 이런 에피소드가 있었다고 실험실 회식자리에서 얘기를 했다. 이 얘기를 들은 교수님께서 한 마디 덧붙였다. 본인께서도 새벽에 우리 저온실에서 실험할 때 콧노래부르는 목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고. 같은 귀신을 느낀 것 같아 으스스했다. 물론 과학하는 사람들의 귀신타령이 이상하기는 하지만, 서로 다른 인물이 반복해서 관찰한 이상행동이라니.. 현상의 일관성에 소름이 끼쳤다.
실험실의 밤은 옆방 저온실의 작은 귀신 소리도 들을 수 있을만큼 고요하다. 낮 시간동안 그 소리가 들리지 않은 이유는, 우리방 저온실과 옆방 저온실에 계속 실험자가 출입하면서 생활 소음을 만들어내기 때문일 것이다. 밤에는 남아있는 사람들이 적어서, 사람들의 말소리가 없다. 가동되는 기계들이 적어서, 시끄러운 기계소음도 없다. 밤에는 내가 혼잣말하는 소리가 가장 크고, 내가 키보드 타자치는 소리가 가장 시끄럽다. 고요한 어둠이 찾아오면 실험실은 연구실이 된다.
'실험실'과 '연구실'이라는 단어는 이공계에서는 구분없이 사용한다. 실험노트, 연구자, 실험실 회식, 연구비, 실험 장비 이 모든 어휘들에서 실험과 연구를 교체해서 사용하여도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실험실의 사전적 정의는 '과학적인 실험을 수행하는 공간 또는, 연구, 분석, 검증을 위해 실험 장비와 도구가 갖추어진 장소'이다. 연구실의 사전적 정의는 '학문이나 기술 등을 연구하는 공간, 대학, 연구기관, 기업 등에서 특정 분야의 연구를 수행하는 장소'이다. 즉, 연구실은 학문, 공부, 연구를 하는 모든 공간이며, 실험실은 그 중 하나인 실험을 통해서 연구를 하는 공간이다. 이공계 연구실은 대부분 실험으로 연구를 수행하니, 이공계 실험실은 곧 이공계 연구실이다.
실험을 하는 낮 동안에 이 공간은 실험실이다. 오전부터 오후까지 대부분은 왔다갔다 이동하면서 실험을 한다. 동료 연구원과 실험 결과를 논의하거나 교수님과의 디스커션을 진행한다. 과사무실에 방문해서 행정업무를 처리하고, 실험 기구 업체 직원분들을 만나서 기구 납품을 받는다. 공동기기를 사용하고, 외부 실험실 선생님들을 만나기도 한다. 챗지피티와 함께 코드를 작성하고, 색과 구도를 바꿔가면서 논문 피겨(figure)을 제작한다. 피피티에 슬라이드를 추가하고, 그림과 글을 삽입한다. 낮은 다른 사람들을 만나거나 육체적인 에너지를 소모하는 실험같은 외부 자극을 받아들인다.
밤은 수많은 낮의 외부 자극을 나의 내부로 소화하는 시간이다. 낮동안 진행했던 실험 데이터를 되돌아보면서 정리한다. 동료가 했던 얘기가 과연 맞는 말인지, 교수님이 했던 말씀이 도대체 무슨 말인지 곱씹어본다. 아침에 프린트한 논문을 정독하고, 논문과 내 연구 사이의 관계를 따져본다. 코드를 실행한 후 나오는 그래프와 결과를 보며 도대체 단백질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유추하고, 피겨는 내가 말하는 바를 잘 나타내는지 한 발짝 뒤에서 바라본다. 사고의 흐름을 정리하는 밤 동안에 이 공간은 연구실이 된다.
밤에 하는 가장 중요한 연구 과정은 바로, 논문 쓰기이다. 논문 쓰기는 거의 전적으로 밤에 한다.
어떠한 '쓰기' 행위던 간에 굉장히 많은 사고를 요구한다. 지금 쓰고 있는 에세이, 아무에게 보여주지 않는 일기, 연인에게 보내는 카톡같은 쓰기 행위도 많은 생각을 필요로 한다. 에세이, 일기, 카톡은 본인과 상대에게 행하는 수많은 잡념과 일상의 관심이 글쓰기로 표현이 된다. 물론 나는 이런 감성적인 텍스트들도 밤에 작성하는 편이다.
반면 논문 쓰기는 잡념과 관심만으로는 부족한 영역의 쓰기이다. 논문 쓰기는 일상적인 관심에다가 데이터와 논리가 뒷받침되어야 하는 쓰기 과정이다. 논문 쓰기는 단순히 머리 속에 있는 인과관계를, 데이터와 피겨가 보여주는 결과를 영작하기만 하면 되는 일이 아니다. 논문 쓰기는 연구의 모든 사고의 흐름을 실체화하는 사유의 과정이다. 그래서 새로운 과학적인 결과를 발견하는 실험 자체도 중요하지만, 나는 이 과학적 결과들의 유기적이고 논리적인 서술이 정말 중요한 연구라고 생각한다.
내가 지금 작성하고 있는 논문의 일부분을 예시로 들어보자. 논문의 중요한 부분을 드러내지 않는 정도에서, 내 프로젝트는 다음과 같다. "우리 연구실에서 개발한 기법의 실험 결과와 단백질 구조에 기반한 예측 결과가 잘 들어맞는다. 따라서 단백질 구조가 있으면 실험을 예측할 수 있고, 반대로 실험을 한다면 단백질 구조를 유추할 수 있다." 즉, 간단히 말해서 1)실험값과 2)예측값이 3)일치한다는 4)주장의 논문이다. 그리고 이 간단한 한 문장에는 내가 논문을 쓰면서 어려워하는 부분이 다 들어있다. 1) 나의 실험 데이터를 서술하는 부분에서는 "방법 부분에서 내 실험을 얼만큼 서술해야 하는가?", "이 방법으로 구한 실험값은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가?" 등등의 질문이 든다. 2) 예측값을 계산하는 부분에서는 "내가 놓치고 있는 인자는 없는가?", "이 가정을 하고 예측을 했는데, 과연 타당한 가정인가?" 등등의 질문이 든다. 3) 실험값과 예측값이 일치한다는 부분에서는 "도대체 두 값이 얼마나 비슷해야 '일치한다'라는 어휘를 사용할 수 있을까?", "일치하지 않는 부분에서는 어떠한 변명을 작성해야 할까?" 등등의 질문이 든다. 4) 마지막으로 이 논문의 중요성을 주장하는 부분에서는 "아 이렇게 서술하면 기존 학자들을 모두 반박하는 느낌이 드는데, 어떻게 우회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을까?", "정확성을 살리면서도 이 논문의 중요성을 강하게 말할 수 있는 문단/초록을 어떻게 작성해야 할까?", "아니, 근본적으로 이 논문의 sales point 가 이게 맞을까?" 같은 질문이 든다. 이 질문에 대한 객관적인 정답은 없다. 결정은 내가(교수님이) 내리고, 판단하고, 정한다. 밤 동안에 그 기준을 정하고 고민하는 일을 한다.
물론 낮동안 실험은 잘 했다. 낮에 했던 실험에서 논리는 틀린 게 하나도 없다. 단백질을 절차에 맞게 정제했고, 열심히 코딩해서 내가 원하던 결과도 잘 나왔다. 잘 되지 않는 실험을 수정하여 새로운 방법을 도입하기도 하고, 그냥 노동력을 갈아넣어야 하는 실험을 하기도 했다. 그래서 어찌어찌 실험을 성공시킨다. 낮에 틀림 없이 실험 결과가 잘 나왔는데도, 밤에 그 결과를 논문 텍스트로 옮기고 있다보면 정말 "잘" 했는지 의심이 든다. 밤새 여러 의심과 질문에 대해 골똘히 생각하다가 한 문단을 겨우 적어낸다. 그리고 다음 날 낮에 해야할 새로운 실험과 새로운 분석을 만들어낸다. 마침표를 찍어내려고 논문을 쓰다가, 물음표만 잔뜩 가지고 다음 날을 맞이한다. 다음 날 낮에는 그 물음표에 대한 답을 조금씩 한다. 이렇게 낮과 밤은 서로 물음표를 썼다 지웠다 하며 반복된다.
새학기를 맞이하여 선언하는 밤 루틴 (이었던 것... 다시 이대로 잘 살아보자.)
7시부터 9시까지 논문 한 문단 작성하기.
9시에 퇴근해서 10시까지 운동하기.
10시에 헬스장에서 나와, 집에 도착하고, 짧게 스픽하기.
11시부터 12시까지 유튜브를 보거나, 게임을 하거나, 브런치 글을 쓰는 여가시간.
12시부터 1시까지 책 읽으면서 잠에 들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