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6. 요리.
요리는 화학 반응들의 연속이다. 100 도에서 물이 끓는 과정은 물리적 상변이 이며, 혀로 느껴지는 5개의 맛은 미각세포의 자극원이다. 고기의 겉표면이 고온에서 구워지면서 나타나는 마이야르 반응과, 미생물이 탄수화물을 알코올로 변환시키는 발효 과정은 전형적인 화학 반응이다. 과학커뮤니케이터 궤도님이 늘 말씀하는 것처럼, 요리 그 자체가 과학이다. 하지만 나는 이 글에서 요리 속의 과학 원리를 말하려는 게 아니다.
요리를 잘 하고, 자주 하던 연구실 동료가 있다. 그는 요리가 어렵지 않다고 한다. 요즈음에는 유튜브에 쉬운 자취 요리 영상이 많이 업로드 되고. 그 요리 영상이 하라는대로 따라하면 돼. 요리하는 건 실험이랑 똑같아. 실험할 때 순서에 맞춰서 시약을 넣고 기기를 가동하듯이, 요리할 때도 지시대로 재료를 넣고 조리기구를 가동하면 돼. 방법대로 수행하면 적절한 실험 결과가 나오듯이, 레시피대로 요리하면 맛있는 음식이 나와. 요리는 실험이랑 비슷해.
아래의 sketching science의 그림처럼, 요리와 실험은 비슷한 구석이 많다. 연구실 동료가 말했던대로 요리와 실험은 특정한 프로토콜을 따라서 진행한다. 그리고 요리가 끝나면 결과로 나오는 음식의 맛을 보고, 실험이 끝나면 결과로 나오는 데이터를 분석한다. 마지막으로 요리와 실험이 끝나면 수많은 설거지거리가 생기고, 나는 열심히 설거지를 한다.
요리와 실험이 비슷하다는 얘기를 하기 위해서 간단한 실험 하나, 'Mini prep (미니 프렙)'을 소개하겠다. 생명과학 연구실은 특정 유전자를 연구한다. 연구자들은 특정 유전자를 과발현하기도 하고, 억제하기도 하면서 유전자의 기능을 연구한다. 연구자들은 자유자재로 조작한 특정 유전자를 순수 정제해야 한다. 이 때 특정 유전자가 담긴 DNA를 순수 정제하는 과정을 미니프렙이라고 한다.
미니프렙은 잘 정립된 실험 방법이 널리 알려져있다. 온도를 유지하는 인큐베이터에 5 ml 가량의 배지와 세포가 담긴 튜브를 넣어, 세포를 밤새 키운다. 다음 날, 세포를 원심분리기에서 원심분리하여, 배지는 덜어내고 아래로 가라앉은 세포 덩어리(cell pellet)를 얻는다. 세포 덩어리에 용해 용액, 분해 용액, 중화 용액을 차례로 넣는다. 용액과 세포가 섞인 이 튜브를 원심분리하여 DNA가 담긴 상층액을 실리카 필터로 거른다. 실리카 필터는 DNA만을 고정하고, 나머지는 아래로 흘려보낸다. 그리고 마지막 용액을 넣어 실리카필터에서 DNA를 분리한다. 줄글로 쓰여져서 어려워 보이지만, 실험실에서 이 줄글을 따라서 실험하면 어렵지 않다. 미니프렙은 고등학생이 실험실 체험을 하거나, 대학생이 연구실 인턴을 할 때에, 만만하게 시도할 수 있는 실험이다. 미니프렙은 어느 분야의 생명과학 연구자던 간에 한 번쯤은 해보는 실험이고, 직접 실험해보지는 않더라도 무슨 실험인지는 들어본, 아주 익숙한 실험이다.
간단한 미니프렙 실험을 하는 데에 몇 가지의 기구들이 필요하다. 항온 인큐베이터, 원심분리기, 뚜껑 열리는 14ml 튜브, 1.5 ml 튜브, 실리카 필터 내장 튜브, 파이펫, 튜브 보관함. 실리카 필터 내장 튜브만 제외하고, 나머지 기구들은 모든 연구실이 아주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어야 한다. 화학 물질로는 액체 배지, 용해 용액, 분해 용액, 중화 용액, 세정 용액, 마지막 용액이 필요하다. 각 용액에 들어가는 화학 물질은 이런 저런 실험들을 하면 자연스레 구비하게 되는 물질들로 구성된다.
요리와 실험은 그 형식적인 면에서 굉장히 유사하다. 요리와 실험은 정확한 용량의 정확한 재료를 정확한 단계에 맞춰 수행해야 한다. 라면 봉지 뒤에 적힌 조리 방법대로 조리할 때 최적의 라면 맛이 발휘된다. 만약에 실수로 물을 절반만큼 넣거나, 다른 라면의 후레이크를 넣거나, 면이 다 익은 후에 다시다를 넣어서 라면을 끓인다면 내가 먹고 싶은 그 라면의 맛이 충분히 발휘되지 못한다. 실험도 마찬가지다. 5 ml 의 배지가 아니라 10 ml 의 배지를 사용한다던가, 용해 용액과 분해 용액을 반대로 사용한다면 DNA가 순수하게 정제되지 않거나, DNA 정제량이 감소되어 나타날 것이다. 심지어는 DNA 가 하나도 정제되지 않을 수도 있다.
요리와 실험은 각 단계의 원리를 정확히 알고 있다면 정해진 방법이 아닌 개인에 따른 맞춤 방법으로 수정해서 수행해도 된다. 라면은 간편한 음식이기 때문에 몇 번 라면을 끓여보면 그 메커니즘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따라서 짜파게티와 너구리를 섞어서 짜파구리를 만들 수도 있고, 열라면에 순두부를 추가하여 순두부열라면을 만들 수도 있다. 새로운 라면 레시피는 원래의 라면과는 다르지만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는 라면의 맛을 이끌어낼 수도 있다. 미니프렙 실험에 있어서도, 더 많은 양의 DNA를 정제하기 위해 모든 용액을 동일한 비율로 증가시켜 실험할 수도 있다. 또는 1분 간의 용액 반응시간을 두어, DNA를 더 많은 양으로 정제할 수도 있다.
나의 대학원 생활은 5년이 넘었으니, 나는 실험은 곧 잘 한다. 하지만 실험과 비슷한 요리는 아주 못한다. 내 요리는 무지하게 맛이 없다. 요리를 몇 번 시도해봤지만 그 몇 번의 시도는 모두 실패였다. 나중에 좋아하는 사람에게 요리를 해주고 싶다는 생각은 추호도 해본 적이 없다. 내가 요리를 해주겠다는 말은 앞으로 보지말자는 뜻과 비슷하다. 요리에 들일 정성과 시간과 돈으로 음식을 사먹는 게 더 낫다.
30살이지만, 내가 스스로 요리를 한 적은 30 회가 채 되지 않은 것 같다. 아, 이 글에서 요리라고 함은 원재료를 손질해서 간을 맞추고 맛을 내는 모든 과정을 내가 수행하는 행위를 말한다. 국수를 삶거나, 김치볶음밥을 만드는 정도는 되어야 요리라고 하겠다. 라면을 끓이거나, 냉동만두를 튀기는, 인스턴트 식품의 조리는 혼자 살면서 많이 해봤다. 내가 요리를 하지 않은 이유는 요리를 해서 먹을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주중에는 매일 야근을 하기 때문에 점심과 저녁을 먹고 귀가한다. 토요일과 일요일 중 하루에는 출근을 하고, 출근하지 않는 주말에는 약속에 나간다. 즉, 한 달에 요리를 해서 먹을 수 있는 끼니는 4회 밖에 되지 않는다. 집에서 자주 식사를 하지 않으니, 식재료를 오래 보관하는 것도 일이고, 소량 판매하는 식자재도 1인 가구에게는 많고 비싸다. 한 달에 몇 회 사용하지 않을 조리기구와 기본 조미료를 사는 것도 사치스러웠다. 그리고 얼마 없는 퇴근 후의 시간동안의 요리는 휴식이 아닌 노동으로 느껴져, 선뜻 요리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요리와 실험은 (그리고 모든 일들이 마찬가지겠지만) 많은 시행착오와 반복을 요구한다. 처음에는 정해진 프로토콜에 맞춰서 진행하고, 그 프로토콜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원리를 깨우쳐야 한다. 약불의 어느 시점에 마늘이 갈색으로 익는지, 간을 맞추려면 소금을 얼만큼 더 넣어야 하는지, 이런 시행착오를 거쳐야 요리에 대한 이해가 늘어난다. 실험에서도 마찬가지로 용액의 조성을 조금씩 바꿔보면서 좋은 결과가 나오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시행착오와 반복이 전문성을 만들어내는데, 나는 요리 자체를 시도하지 않으니 요리에 대해서는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요즘에는 간편하게 할 수 있는 밀키트도 나와." 맞는 말이다! 밀키트에 포장된 재료를 뜯어서 냄비에 넣고, 적당량의 물과 함께 끓이기만 하면 음식 하나가 뚝딱 완성된다. 이런 방식으로 부대찌개나 닭갈비를 집에서 해먹었고, 요리에 서툰 나같은 사람도 쉽고 간편하게 음식을 만들 수 있어 좋았다. 실험에도 밀키트와 같은 실험키트가 있다. 실험 키트는 실험 과정을 표준화하고, 화학물질을 미리 조성해서 연구자들이 더 효율적으로 실험하도록 돕는다. 가장 좋은 예시로 미니프렙 키트가 있고, 다수의 연구실들은 미니프렙 키트로 DNA를 추출한다.
"백종원 유튜브대로 요리를 하면 되는데, 그게 안 되는 거야?" 그렇다. 그게 안 된다. 백종원 선생님의 유튜브는 집에서도 충분히 간단하게 따라할 수 있는 요리법을 가르친다. 자취하는 사람들도 쉽게 구할 수 있는 그런 재료들 말이다. 문제는 나에게는 그런 쉬운 재료 조차 없다. 백종원 선생님이 요구하는 식재료도 나한테는 투머치다.
나는 주방과 연구실의 냉장고가 비워질 때 마음이 편안하다. 나는 냉장고 안에 식재료를 볼 때면 부담이 되고, 식재료가 상하기 전에 얼른 헤치워버리고 싶다는 마음뿐이다. 반대로 텅텅 빈 냉장고를 볼 때 쾌감이 느껴지기 때문에, 냉장고의 식재료는 남아날 일이 없다. 연구실에 있는 내 실험대와 냉장고도 마찬가지다. 실험 샘플 보관함에 샘플들이 쌓여있으면 해야할 일이 나를 턱하고 가로막는 것 같은 느낌이다. 동료 중에서는 언젠가 쓰겠지... 하고 샘플들을 보관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나는 "언젠가 쓰겠지..."라며 남겨두는 샘플은 버리고, "언젠가 쓸 거야." 라며 확신하는 샘플은 보관한다. 흐지부지하게 남겨두는 샘플은 결국 제대로 보관되지 않아, 나중에 그 언젠가가 와도 오염이나 낮은 수율로 인해 그 샘플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한다.
요리를 잘하면 좋을 것 같기는 한데, 요리를 자주 하고 싶지는 않다. 아주 그냥 욕심쟁이다. 그래서 요리는 포기했다. 내가 실험은 잘 하는데, 요리까지 잘 할 필요는 없지 않는가. 요리할 시간에 조금 더 일을 하고, 조금 더 돈을 벌자. 그 돈으로 맛있는 식당에 방문하고, 맛있는 음식을 배달시켜 먹자.
덧 1.
나중에 결혼을 한다면 요리를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도 괜찮겠다. 요리 만드는 건 네가 해줘. 뒷정리와 설거지는 내가 할게. 나는 깨끗해지는 과정이 좋으니까.
덧 2.
후... 이 글을 썼더니, 나의 요리 의지에 또 속아 넘어가서 이번 주말에는 요리를 해보고 싶어졌다. 이렇게 일 년에 서너번씩 속아서 요리를 시도하고, 후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