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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홍 May 08. 2024

수영 첫날 요약 : 꽈당


 

 수영인이 되기 위해 통과해야 할 첫 장애물이 뭐라고 생각하는가? 나는 ‘창피함을 견디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실력이 부족한 것쯤이야 운동신경이 없는 내겐 너무나도 당연한지라 창피하지도 않다. 속이 조금 탈뿐이다. 수영은 여러 운동 종목 중에서도 가장 창피함 내지는 수치심(?!)을 견뎌내야 하는 종목이다. 지금이야 별로 창피하지도 수치스럽지도 않지만 처음엔 그렇다.

 일단 수영복부터가 문제다. 오직 몸통만 가리는(엄밀히 말하면 생식기만 가리는), 그것도 고무 쫄쫄이인 까닭에 몸의 실루엣이 다 드러난다. 볼록 튀어나온 뱃살, 허벅지 뒤의 셀룰라이트, 우람한 팔뚝, 게다가 털(!)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이 많지만 차마 어디 물어보기가 뭣하다.

 점입가경은 수모를 쓴 내 얼굴을 감당해야 하는 것이다. 나는 머리숱이 그다지 풍족하진 않은 편이라 머리빨이 없이 살아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거울 속에서 수모를 쓴 나와 눈이 마주친 순간 웃지 않을 수 없었다. 갓난쟁이 이후론 이런 머리가 처음인 것 같다. 수경까지 쓰자 내 얼굴에 어이가 없어서 소리 내 웃었다. 외계인이야 뭐야? 수영을 시작하는 사람에겐 이렇게 내 외형에 대한 창피함을 견디는 것이 첫 번째 장애물이다. (물론 나중엔 이러한 나의 ‘외계인 형’ 모습도 자연스러워진다.)

 그런데 나로 말하자면 새벽 6시에 수영장에 가는 새벽수영러이다. 이 말은 나의 첫 강습이 새벽 6시에 시작되었다는 것. 생존수영 인솔로 인해 수영장의 메커니즘을 아무리 다 파악했다 할지라도 처음 입장해 보는 우리 센터는 낯설기에 긴장을 잔뜩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긴장을 한 보람 없이 알람을 못 듣고 늦잠을 잤다. 눈을 뜨니 새벽 5시 50분이었다. 수영장에 도착하면 6시 10분쯤일 것이다. 미리 다 준비를 하고 강습 시작 시간을 기다려도 모자랄 판인데 지각이 웬 말인가. 그냥 가지 말까? 오늘은 그냥 건너뛰고 다음 강습날부터 깔쌈하게 시작하는 게 낫지 않을까 머리를 굴렸다. 하지만 결론은 ‘지각이어도 가야 한다.’였다. 새해의 내 목표를 겨우 지각 때문에 어그러지게 할 순 없지. 계획했으니, 간다!

 ‘첫날부터 지각이어도 강행’하는 내 모습이 조금 멋있다고 생각하며 새벽바람을 맞았다. 허둥지둥 센터에 도착해 허둥지둥 샤워를 하고 허둥지둥 수영복을 입었다. 긴장한 마음을 숨 한 번에 내보내고 조심스레 초급레인에 다가갔다. 제일 친절해 보이는 여성분께 “여기가 초급반 맞나요?”라고 물었다. 이렇게 물으면서도 얼마나 가슴이 두근두근 두근거렸는지 모른다. 내가 질문을 하는 순간 사람들이 날 쳐다볼 것이다. 으윽 저를 주목하지 마세요! 내가 아무리 나이를 먹으며 외향적인 성격이 되었다곤 하나 원래의 나는 본투비 내성적이고 소심한 아이였다. 이렇게 모르는 사람에게 (그것도 수영장 선배님께) 이번에 막 등록한 생초보인 내가 말을 건다는 건 엄청난 용기를 내는 일이고 창피함을 견디는 일인 것이다.

 난 ‘조금 창피했지만 그래도 용기를 낸 멋진 나’로 수영 첫날이 마무리될 줄 알았다. ‘많이 창피하고 병원 신세를 지게 된 나’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 문장이 끝나는 지점에서 여러분의 머릿속에 ‘지붕 뚫고 하이킥’의 엔딩송이 재생되길 바란다. 화면이 흑백으로 바뀌면서 “커쥬 오 마이걸~” 광고 로고로 ‘카페베네’가 찍히는. 어이없이 허무하게 끝나는 엔딩에 비유되곤 하는 이 시트콤의 엔딩 장면처럼 나의 수영 첫날 엔딩도 어이없고 허무했다. 앞의 일들이 모두 무색해질 만큼 매우 매우 큰 창피함이 나를 덮쳤다.

 사건의 전말은 이러하다. 수영 첫날이니만큼 발차기 자세와 숨쉬기 방법을 배웠다. 유아풀에서 킥판 잡고 음파음파를 하며 바닥에서 발을 떼 본 자체가 감격스러웠다. 우와 수영 재밌다. 낯설지만 즐거웠던 강습이 끝났다. 다시 샤워장으로 들어가 어색함을 견디며 몸을 씻어냈다. 씻고 나와 다른 사람들이 어디서 물을 닦는지 곁눈질로 관찰했다. 자연스레 탈수기를 찾아냈다. 탈수기까지 돌리는 내가 멋지다고 생각했다. 모든 것이 자연스러웠다. 내 딴엔 그랬다. 오늘 처음 온 것 티 안 나겠네? 여기 수영장 고인 물처럼 보이면 어쩌지? 후후후.. 마음속으로 흐뭇한 미소도 지었다.

 하루가 무사히 끝났다는 것에 긴장이 풀린 탓일까? 방심했다. 샤워장에서 락커로 가는 길목에 바닥에 깔려있는 수건이 찝찝하게 여겨졌다. 무좀균이 도사리고 있을까 봐 갑자기 걱정되었다. (나중에 엄마 말씀을 들으니 무좀균은 어차피 수영장 락스물에 이미 다 소독되었다고.. 믿거나 말거나) 그 옆에 놓인 고무 슬리퍼가 보였다. 저걸 밟고 디디면 수건에 닿지 않고 바로 저 너머 바닥으로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내 몸이 공중으로 붕 뜨더니 이내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척추가 수직으로 바닥에 내리꽂아졌다. 내가 젊어서 망정이지 어르신이었다면 무슨 일이 생겼을지 모른다. 다행인 건 어디에 머리가 부딪히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물리적으로 아픈 것은 생전 처음이어다. 이제껏 크게 아파본 적도, 어디 하나 부러져본 적도 없는 게 바로 나였다. 그렇기에 충격은 더 컸다. 아마 내가 모라긴 몰라도 교통사고 급의 충격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여기서 더 알아 둬야 할 것이 있다. 이때의 내 모습이 나체라는 것이다. 내 몸에 실오라기 하나 걸친 것 없었다. 쿠션 역할을 해줄 옷가지가 없던 것은 물론이고, 내가 ‘나체’였다..! 괜찮냐고 다가오는 사람들과 허리를 두드려주는 아주머니가 계셨으나 얼굴도 들지 못했다. 너무 아파서 그런 건지 너무 창피해서 그런 건진 나도 모르겠다. 하필이면 첫날에 이렇게 되다니. 누가 넘어져도 창피할 테지만, 나는 심지어 수영 데뷔 첫날이었다. 이미 하루치 창피함은 앞에서 다 겪은 줄 알았는데 이것까지 감당하기엔 너무 버거웠다. 내 옆에 남아서 걱정해 줄 수친(수영 친구)도 없었기에, 사람들은 안타까운 눈짓을 한번 보내곤 자신의 갈 길을 갔다. 나는 한 발 한 발 어기적 어기적 겨우 떼서 옷을 갖춰 입었다. 허리를 숙여 옷을 입는 것도 버거웠지만 일단 옷 속으로라도 도망치고 싶었다.

 넘어진 것도 창피하고, 나체였던 것도 창피하고, 수영장에 이제 막 등록한 사람이 이렇게 된 것도 창피했다. 너무 창피한 나머지 ‘나 너무 창피한데 계속 수영장에 다닐 수 있을까’까지 고민했다. (하지만 꿋꿋하게 잘 다니고 있다.)

 아, 물론 이 일이 있은 뒤로 일주일 동안 수영을 안 갔다. 아니 못 갔다. 허리가 정말 아팠기 때문이다. 어떤 정신으로 출근을 했는지 모르겠다. 허리를 부여잡고 퇴근을 해 병원에 방문했다. 나는 원래 병원을 방문하는걸 정말 안 좋아한다. 적당히 쉬면 다 낫는다-의 구시대 마인드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은 달랐다. 병원에서 엑스레이와 CT도 찍었다. 약도 받아와 성실하게 섭취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뼈가 부러진 건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수영을 다니실, 다니시는 분들은 꼭 바닥의 미끄럼을 주의하시라. 그렇지 않으면 제아무리 열정이 넘쳐도 비자발적인 원인으로 수영을 못 가게 될지이니. 수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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