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자세를 좀 해야겠네."
초음파를 대자마자 나온 의사 선생님의 첫마디. 아기가 거꾸로 있단다. 8개월 정도가 되면 아기가 아래쪽으로 머리를 둬서 명치쪽에 발이 보여야 하는데, 행복이는 명치 오른쪽에 머리를 두고 있었다. 그래서 태동이 있을 때마다 소변이 마려웠던 거구나.
진료를 마치면서 의사 선생님께 자연주의 출산이 하고 싶다고 했다.
"아기가 거꾸로 있는데 뭐. 안 돌아오면 제왕절개 해야지."
다행히 34주까지는 정상위로 돌아올 수도 있다는 말을 덧붙였다. 아기가 더 크기 전에 정상위로 돌아야 한다고도 했다.
내가 다니는 병원에는 자연주의 출산센터가 있다. 임신 중기인 지금쯤에는 출산 방법을 정해야 한다고 해서 이번 진료 때 자연주의 출산을 신청하기로 마음먹었던 참이었다. 조금은 착잡한 마음으로 자연주의 출산 상담실에서 남편과 기다리고 있는데, 모니터에서는 내 속도 모르고 자연주의 출산 후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는 산모와 남편들의 모습을 연신 비추었다. 마침 행복이가 치골 쪽으로 통통 발을 찼다. 순간 조금 짜증이 났다.
"행복아 거기가 아니라고. 돌아야 된대. 엄마도 자연주의 출산이 하고 싶어."
방금 진료 보기 전만 해도 사랑스럽기만 하던 태동이 한순간에 짜증스러운 것으로 바뀌는 무서운 순간. 남편은 옆에 앉아 '역아 돌리기, 역아 원인' 같은 것들을 찾아보았다. 자연주의 출산에 대해 알아보면서 이 방식이 산모와 아이에게 어떤 이점이 있는지, 그 이후의 육아 과정에 어떤 수월함을 가져다주는지 남편과 꽤 오랜 시간 이야기 나누었다. 남편은 특히 자신이 출산 과정의 일원으로 참여할 수 있다는 것에 마음이 동했는데 제왕절개를 할지도 모른다고 하니 내심 아쉬워하는 눈치였다.
그날 저녁, 남편과 나름 작전을 짰다. 행복이가 치골 쪽을 차면 반응해주지 않는 작전이다. 행복이는 16주부터 태동이 있었는데 20주 정도부터는 태동 놀이도 했다. 아기가 찬 곳을 살짝 눌러주면 같은 곳을 다시 차기도 하는데 이걸 태동 놀이라고 한다. 20주 정도에는 행복이가 지금보다 작아서 배꼽 아래에 있었기 때문에 태동도 항상 배꼽 아래에서 느껴졌다. 그래서 남편과 나는 28주에 접어드는 지금까지도 자기 전에 나란히 누워 행복이가 지금껏 태동을 했던 배꼽 아래를 주로 눌러서 반응을 보았다. 혹시 행복이가 엄마, 아빠에게 반응하려고 여태 거꾸로 있는 게 아닐까 하는 것이 믿거나 말거나 우리의 가설이었다. 그날밤 잠을 자면서도 돌지 않는 행복이를 괜히 꾸짖는 꿈을 꾸면서 뒤척였다. 중간중간 잠이 깨었을 때 의사 선생님이 알려준 고양이 자세를 해보기도 했다.
결국 퀭한 눈으로 눈뜬 새벽, 더 이상 잠은 오지 않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이전에 읽었던 책 내용이 떠올랐다. 우리 행복이처럼 거꾸로 있는 아기를 분만한 이야기였다. 낳고 보니 탯줄이 다른 아기들보다 짧았다고. 그래서 아기가 돌 수 없었구나 하고 낳고 나서 알게 되었다고 했다. 또 다른 아기는 3~4일을 꼬박 진통하고 나왔는데 왜 이렇게 진행이 더디었나 보니 아기가 탯줄을 목에 감고 있는 상태였다고 했다. 위험한 상황에 아기가 스스로 별 탈 없이 나오기 위해 이리저리 위치를 바꿔보느라 오래 걸렸던 거라고.
이렇게 초음파로는 미처 알지 못했던 아기들의 속사정을 나중에 낳고 나서야 알게 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만약 우리 행복이가 정상위로 돌지 않는다면 행복이도 나름의 이유가 있겠구나 싶었다. 무엇보다 우선인 것은 출산의 방법이 아니라 행복이를 건강하게 만나는 것이니까 말이다.
이제껏 자연주의 출산이니 모유수유니 하는 것들을 공부하면서 나만 준비를 잘하면 내 뜻대로 순탄하게 다 될 거라고만 생각했다. 행복이로 인해 못 하게 될 수도 있다는 건 생각해보지도 않았다. 엄마 뜻대로 하고 싶은데 왜 안 도와주냐고 태어나지도 않은 아기에게 고집을 부린 꼴이 되었다. 부끄러웠다. 행복이에게 미안했다. 아직 뱃속에 있는 자식이지만 자식은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어른들 말이 정말이구나 싶었다. 마치 뱃속에 있는 아기가 '엄마 뜻대로 안 될걸?' 하는 것 같았다. 얄밉기보다 엄마로서의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라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제 3개월 후면 정말 엄마가 된다. 이제껏 제 잘난 줄 알고 뜻대로 하려고 용쓰던 나에서, 안되면 안 되는 대로 아이의 방향대로 함께 해주는 엄마가 되려면 여러 번 깨지고 깨져야 할 것 같다. 그래야 한다고 뱃속의 행복이가 나에게 알려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