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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지 Feb 26. 2024

마음의 공간 내어주기

비로소 가족이 된다는 것

  책 <히프노버딩>을 읽고 있다. 덕분에 3개월 후 겪게 될 출산과 아이를 맞이하는 마음가짐에 대해서 차분히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고 있다. 마음에 와닿는 문장에 밑줄을 그으며 읽다가 어느 문장에서 잠시 멈췄다.


  "물리적인 공간뿐 아니라 당신의 마음속에도 아기를 위해 비워둔 공간이 있는가?"


  열 달 전, 유산했을 때의 일이 떠올랐다. 정확히는 나의 첫 번째 임신 때의 일이다. 계획한 임신은 아니었지만, 결혼을 한 지 3~4개월쯤 지났을 때라 이제 슬슬 아기가 생겨도 좋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이 들던 참이었다. 엄마가 30년 전쯤, 나를 품었을 때 보았던 임신 백과사전의 난임 부분을 남편 모르게 펼쳐보기도 했다. 그즈음 아기가 찾아왔다.


  산부인과에서 임신 사실을 확인하고 남편과 도서관에 가서 잔뜩 빌려온 건 죄다 부수입과 관련된 책들이었다. 쿠팡 파트너스, 구글 애드센스, 네이버 블로그 수익화 같은 것들. 책들을 늘어놓고 미간에 주름을 잡으며 심각하게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을 남편이 사진으로 찍어주었다. 그때의 나에겐 뱃속의 아기보다 내년에 육아휴직을 했을 때 반으로 뚝 줄어들 우리 집 수입이 주된 관심사였다. 책에서 본 대로 출근길 버스 안에서 블로그 체험단 신청을 했다. 울렁이는 버스 안에서 멀미를 하면서도 해야 한다는 생각에 꿋꿋이 했다.(생각해 보면 첫 번째 임신 때는 입덧도 거의 하지 않았다.) 퇴근하고서는 주말에 미처 보지 못했던 주식 강의를 돌려봤다. 저녁 식사 준비하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찍어서 식재료 링크를 쿠팡 파트너스 링크로 올리기도 했다.(수익화에는 실패했다.) 그때 나에겐, 내 마음속에는 아기를 위해 비워둘 공간의 여유가 없었다. 아기 때문에 일을 하지 못하게 될 미래, 줄어들 소득, 거기에만 온 정신이 쏠려있었다. 그 공간에 아기는 없었다.


  두 번째 임신을 하고서는, 임신을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감사한 일인지 알기에 마음가짐이 자연스레 달라졌다. 어쩌면 첫 번째 임신이 너무도 준비 없이, 그리고 쉽게 되었기에 더욱 부족한 점이 많았다. 지나고 보니 첫 번째 임신이 유지되어 그대로 아기를 맞이했다면 무엇이 중요한 것인지 생각해 볼 시간도 갖지 못한 채, 나는 나대로 아기는 아기대로 힘든 상태로 아쉬운 시간을 흘려보내지 않았을까 정신이 아찔해진다.


  "당신의 마음속에도 아기를 위해 비워둔 공간이 있는가?"


  다시 내게 물어본다면, 지금은 "비워가고 있습니다."라고 답할 수 있다. 아직은 남편도, 나도 아기를 위한 마음의 공간을 만들어 가고 있는 중이지만 말이다. 7개월이 되니 이제 아기의 몸짓이 명치까지도 느껴지곤 한다. 가끔은 옆구리도 콕콕 찔러보는 것이 하루하루 자라남이 느껴진다. 나의 몸속 공간을 내어주듯이 우리의 마음속 공간도 너에게 내어줘야, 비로소 가족이 될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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