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온 May 06. 2023

랍스터는 혼자가 아니야

  "그때 나는 아마 약한 우울증을 겪지 않았을까 싶어."

  오늘 아침, 남편과 차를 마시면서 불현듯 그런 생각이 들었다. 취업준비를 하던 때의 나는 약간의 우울증을 앓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 앞이 보이지 않는 시간을 보내는 이는 누구나 비슷한 경험을 할 테지만, 매일 아침 눈을 뜨는 것이 괴롭고 숨이 막히는 시간이었다. 독서실에서 공부를 하다가 가슴 한가운데가 조여 오는 느낌에 계단으로 뛰쳐나가 눈물을 주룩주룩 흘리기도 했다. 이 끔찍한 시간이 끝이 나기는 할까, 그리고 이 시간의 끝에 좋은 결과가 나오더라도 내가 원하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닌 데에서 오는 공허함도 있었다. 다행히 가족들과 남자친구(현 남편)의 이해와 애정 어린 돌봄을 받으며 어찌어찌 지나왔고, 원하는 일은 아니지만 직업도 얻게 되었다.


  남편은 내 이야기를 가만 듣고 있다가 인터넷에서 본 랍스터 이야기를 해주었다. 랍스터는 포식자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단단한 껍질을 갖고 있다. 랍스터가 점점 성장할수록 껍질이 몸을 조여 오는 시기가 찾아오는데, 그때 굉장한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한다. 그럼 랍스터는 바위 깊숙한 곳에 숨어서 몸에 맞는, 조금 더 넓은 껍질을 만들기 위해서 오랜 시간을 보낸다. 갑자기 웬 랍스터 얘긴가 싶었지만 남편이 전하고자 하는 얘기는 이거였다. 몸이 조여 오는 스트레스 속에서 랍스터가 정신과에 찾아가 항우울제를 처방받았다면 작은 껍질 속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거라고. 항우울제를 처방받는 걸 못났다고 하는 게 아니라, 몸을 조여 오는 스트레스를 겪으면서 참 힘들었지만 그만큼 내가 조금 더 커진 마음을 갖게 되었을 거라고 했다. 사실 취업준비를 하던 때보다 지금의 내가 더 성장했다거나 더 마음이 넓은 사람이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확실한 건 그때의 내가 랍스터처럼 바위 속에 숨어서 그 시간을 버틴 건 껍질을 탈피하고 약해진 내 곁을 바위처럼 버티고 서있어 준 주변 사람들 덕분이었다.


  6개월 된 갓난아기를 키우고 있는 친구를 만났다. 그동안 쌓였던 이야기를 쏟아내는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가 정말 대단하다고 말했더니 친구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친구는 아이를 낳고 한동안 산후우울증 비슷한 걸 겪었다며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반년 뒤 나의 모습도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내심 걱정도 되고 짠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친구는 지금도 여전히 답답하고 체력적으로도 많이 힘들지만 아이가 정말 예쁘다고 했다. 자기가 태어나서 한 일 중에서 가장 힘들지만 가장 뿌듯한 일이라고도 했다. 이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자기 스스로가 대견하다고. 친구도 랍스터처럼 자기 마음의 몸집을 키우고 있는 걸까.


  처음 겪는 임신과 출산. 시간이 갈수록 아이가 점점 커지면서 내 몸속 많은 부분을 차지해 올 거다. 어쩌면 아이를 낳고 나면 온전히 내 모든 시간을 아이를 위해 맞춰가면서 나를 조여온다고 느끼는 순간이 생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내가 다시 껍질을 탈피하고 약해질 때가 오면 나 혼자만 덩그러니 버텨야 하는 건 아닐 거라고. 그리고 힘든 시간을 보낸 후에는 내 마음의 몸집도 조금은 커지지 않을까. 또 한 번 껍질을 탈피해야 하는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

작가의 이전글 엄마는 예전에 ~였단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