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아니 쉽지만은 않은 꿈이 하나 생겼다. 아이와 서로 생각이 통할 만큼 자라면 "엄마는 예전에 ~였단다"라고 말해보고 싶다. 빈칸에 들어갈 말은 지금 나의 직업이다. 임신은 흔히 인생의 전환기라고들 한다.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도 그렇겠지만, 계속해서 굴려왔던 삶의 바퀴를 잠깐 세워두는 느낌이라 더욱 와닿는다. 물론 아이를 돌보는 건 일을 하는 것만큼이나, 어쩌면 더 많이 체력이 드는 일이겠지만 지금까지 해왔던 일로부터 나를 잠깐 분리시킨다는 점이 기대가 되기도 한다.
최근에 나의 직업과 관련된 설문조사에 참여했는데, "다시 태어난다면 같은 직업을 선택하시겠습니까?"라는 질문에 여지없이 "전혀 그렇지 않다"라고 답했다. 여느 사람들이 그렇듯 나도 나의 직업을 사랑하기보다는 미운 정이 쌓인 쪽이다. 좋아서 하는 일은 아니지만, 지금까지 해왔고 이걸 그만두었을 때 딱히 대안이 없어서 하고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진로를 정할 때 가정 상황 때문에 선택한 직업이었다. 마음 한편에 미성숙한 마음이 항상 남아있었다. 그때 그런 일만 없었어도 나는 더 행복하게 살고 있을 거라는 어리숙하고 못된 마음. 그동안은 "덕분에 남들처럼 취업준비 길게 안 하고 월급 받고 살고 있잖아" 하고 털어 넘겼지만, 지금까지 매일 아침 기름칠하고 어찌어찌 굴려오던 이 바퀴를 잠깐 세워둘 수 있다고 하니 여러 생각이 든다.
임신을 확인하고, 모성보호시간을 쓰기 위해 직장에 알렸다. 동료들은 대부분 축하해 주었고, 따뜻하게 손을 잡아주신 분도 계셨다. 자신이 겪었던 경험을 나눠주시기도 했다. 어떤 분은 임신을 축하한다고 하기 전에 "좋겠다"라고 연신 말씀하셔서 갸우뚱했다. 이미 다 큰 자녀가 있으신 분이라 2세 계획이 있으신 것도 아닐 텐데 뭐가 부러우신 걸까. 같은 반응을 전 직장 동료에게도 들었다. 좀 더 친분이 있는 사이라 뭐가 부러우시냐고 물었더니 간단한 대답이 돌아왔다. "일을 쉴 수 있잖아요."
아이를 키우는 건 분명 보통 일이 아닐 거다. 어쩌면 지금하고 있는 일보다 몇 배는 더 고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까지 깊은 고민 없이 굴려오던 삶의 바퀴를 잠시 주차해둘 수 있다는 데 의미를 두려고 한다. 육아 휴직이 끝났을 때, 여러 가지 상황 속에서 만들어진 선택지 말고 내가 직접 만든 선택지 하나를 더 들고 맞이할 수 있도록 말이다. 쉽지 않은 일이겠지만 지금이 아니면 이 커다랗고 무거운 삶의 바퀴를 잠깐 세워두고 언제 다른 동네 구경을 할 수 있을지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