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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지재 Feb 07. 2022

4. 첫 필드, 서울 경의선 책거리

<내가 유디티가 된 이유> 100만 부 프로젝트

1. 필드에 나가기 전에

1인 기업일 때와 직원이 있을 때는 모든 게 달라진다. 많은 부분이 복잡하고 번거로워진다. 지금까지는 사업자 등록증만 있었을 뿐 거의 방치하다시피 할 정도로 관리가 전혀 되지 않았다. 회계, 세무, 노무에 관한 지식이 전무하다시피 했다. 거래 내역에 대해 홈택스에서 계산서를 간신히 발행해주는 정도.


- 노무사 사무실에 들렀다. 함께 일하기로 한 동업자 두 명과 적절한 형태의 계약서를 세팅했다. 추후 사업의 형태가 바뀌면 또 다른 적절한 계약서로 다시 세팅한다.


- 세무사를 선정하여 매달 기장 대리를 맡기기로 했다.


- 카드 가맹점 등록. 이동하면서 즉석에서 결제받을 수 있도록 카드 단말기를 구매하고 가맹점을 등록했다. 현금영수증이든, 신용카드든, 삼성페이든, 제로페이든 어떤 수단이든 상관없이 결제가 가능해졌다.


- 명함을 제작했다. 짧은 순간에 나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기란 어려운 법이다. 또한 명함은 천편일률적인 디자인 때문에 받자마자 버리게 된다. 그래서 예술품을 접목시켜 제작하려는 생각이 들었다. 지인에게 저렴한 가격으로 그림의 사용권을 구매했고 그 외 일러스트 작업은 직접 했다. QR코드에는 스마트스토어가 연동되어 있다.


- 스마트스토어 개설. 그러나 보통의 스마트스토어처럼 검색 트래픽을 통한 유입은 완전히 포기했다. 스토어의 이름도 P.A (Professional Amateurism의 줄임말이다.). 오로지 qr코드를 통한 유입 트래픽만을 주력으로 하기로 했다. 따라서 상세페이지에 상품을 팔기 위한 내용을 구구절절 써넣을 필요가 없었다. 오히려 스토리 텔링 식이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명함을 받는 순간에 사람들은 '이 책이 뭐길래 100만 부를 판다고 하는 거지?' 하고 궁금해할 것이고, qr을 찍었을 때 나오는 페이지에서 이러한 궁금증이 해소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 확성기 구매.


- 실물 책 확보.





2. 드디어 첫 필드.

오늘 첫 필드 행선지는 경의선 책거리로 정했다. 몇 년 전 그 길을 걸었던 기억을 더듬어보면 분위기가 따뜻해서 좋았다. 그래서 이번에도 그런 분위기에서 누군가와 교감하거나 대화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길 거라는 낭만적인 기대를 품었다.


사실 어제 잠을 제대로 못 잤다. 필드에 나가서 무슨 이야기를 어떤 식으로 풀어갈 지 생각해보려고 했지만 머릿속이 복잡했다. 그럴수록 두려움이 커져갔다. 그래서 일부러 아무 준비도 하지 않았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으려 애썼다. 생각이 많아지면 두려움이 나를 잠식해버린다. 그럴 땐 일단 다짜고짜 부딪쳐보는 것이 상책이었다.


매일의 현장 판매 권수를 30권을 목표로 설정 했으나 패기 넘치게 56권을 챙겼다. 가방이 생각보다 컸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크나큰 실수였음이 밝혀지는데..)


경의선 책거리에 도착해서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동료들과 잠시 걸으며 상황을 살폈다. 황량하리만치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 웬걸? 100여 명의 사람들이 한 곳에 몰려있는 게 아닌가. 알고보니 어느 가게의 이벤트 때문에 팬들이 줄을 서있는 것이라고 했다. 나는 그곳이야말로 노다지라고 생각했다. 두려웠지만 가슴이 콩닥거리기 시작했다. 어쩌면 한 큐에 56권을 완판하고 귀가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잠시 머리를 굴려 멘트를 가다듬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확성기를 틀었다. 머릿속은 하나도 정리되지 않았지만 일단 입이나 떼보자 하고 생각했다. 대충 이런 얘기를 나오는 대로 씨부렸던 것 같다.

"아아. 1분만 시끄럽게 좀 하겠습니다. 제가 udt 작가인데 아 여러분은 무언가를 진정으로 원해보신 적이 불라불라 사인 본을 드리고 불라불라"


입도 머리도 전혀 풀리지 않았다. 나는 몹시 경직되어있었고, 떨렸고, 말투가 어눌했다.

사람들의 반응도 딱히 환영하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뭐야, 이상한 사람이네. 시끄럽네." 정도의 냉랭한 반응이었달까.


그런데 이상하게 느낌이 좋았다. 그것이야말로 바로 이 1년 이상 유지될 거대한 프로젝트의 아주 우스꽝스러운 첫 광경이었기 때문이었다.


드디어 나는 한 발을 뗀 것이다. 그 첫 발을 뗀 뒤로는 모든 일은 상당히 일사천리로 흘러가는 것을 살면서 많이도 느껴왔다. 훈련 받을 때, 고소공포증이 심했던 나는 헬기에서 뛰어내릴 때마다 강하 사인이 떨어지기 직전에 무조건 반 박자 빨리 뛰어내렸다. 일단 첫발을 스스로의 힘으로 떼고 나면 그때부터 두려움은 사라지고, 시도하고, 반성하고, 보완하고, 다시 시도하는 무한 사이클만이 있을 뿐이라는 것을 이제 나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덧붙이자면 나는 사람들 앞에서 긴장하거나 떠는 내 모습을 꽤나 사랑하기도 한다. 특히 축가를 할 때나 노래를 할 때, 내 안의 묘한 긴장감이 가져다주는 떨림이 진정성을 배가시킨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그런 기분과는 다르게 나는 나 자신의 매력을 어필하는 데 실패했다. 이 말은 그 자리에 있던 족히 백 명은 되는 사람들이 나의 책을 갈망하고 궁금하게 하는 데 실패했다는 뜻이었다. 냉랭한 사람들의 반응을 어떤 식으로든 개선해야만 했다.


일단 준비해 간 명함을 나눠주기로 했다. 수십 장의 명함을 순식간에 배포했다. 명함을 받는 것마저 거부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명함을 받아든 사람들과는 몇 마디 말을 섞기도 했다. 명함이 예쁘다는 얘기가 군중들 사이에서 조금씩 흘러나왔다. 몇 명은 우리에게 분명한 호기심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누구도 사인을 받으러 찾아오지는 않았다. qr코드를 찍어봤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러나 찍어서 유입되었더라도 금세 이탈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동료들과 일단 찢어지기로 했다. 나는 그 자리에 남았다. 그 많은 군중들 중 누군가는 사인 받으러 올 수도 있는 가능성을 믿어보기로 했다. 동료들은 홍대, 연남 등지에 있는 몇몇 카페에 명함으로 영업을 했다. 그 중 한 카페 사장님이 2/15~28까지 카페 내부의 공간을 무상 임대해서 판매 부스를 설치할 수 있도록 허락해주셨다. 오늘의 첫 유의미한 성과였다.


나는 서있던 경의선 책거리 그 자리에서 군중들을 가만히 바라봤다. 내가 서있는 자리에, 현수막에, 쌓여있는 책에 관심있는 사람은 없는 듯보였다.


앉아있는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명함을 돌렸다. 말빨로 다섯 마디 이상의 대화를 해내기도 했지만 구매까지 연결될 만큼 매력을 전달하지는 못했다. 바쁘게 지나가는 사람들에게도 시도했지만 그건 하나마나 한 무의미한 일이라는 것을 금세 깨달았다.


장소를 옮겨 홍대 버스킹 거리로 이동했다. 그곳의 상황은 더 심각했다. 일단 움직이는 사람은 걸렀다. 서 있거나 앉아있는 사람을 공략했다. 명함을 주고, 여러 멘트를 사용하며 대화를 이어나가고자 했다. '출판사 대표인데요 몇 가지 여쭤봐도 될까요?', 'UDT 작가인데요, 혹시 에세이를 평소에 좋아하시나요?' 등. 그러나 점차 이 방식은 영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식사를 하고, 동료와 대화를 나누며 금일 경험에 대해 상호 피드백을 했다.


피드백 이후, 나는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전략이 수립되지 않은 싸움은 더 이상 의미가 없어보였기 때문이었다.

금일 판매 부수는 56권 중 0권.

나는 겉보기에는 패잔병처럼 축 처진 상태였다.

그러나 그것이 어떤 것도 판매하지 못했기 때문은 아니었다. 그저 가방이 무거웠고, 잠을 자지 못했고, 쉬운 일은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조금 쉬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가슴 속은 처진 몸과는 확연히 달랐다. 나는 내 안에 다시 꿈틀거리는 어떤 분명한 기운을 느낀 채로, 그리고 동료들의 가슴 속에도 나만큼이나 불타오르기 시작한 뜨거운 열정을 느낀 채로, 나는 상당히 희망적이고 이성적인 명료함을 간직한 채로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3. 피드백 & 느낀점

 1) 사람들이 현장 판매를 하지 않는 이유는 분명 있다.

그것은 비단 코로나 때문만은 아니다. 거리에 나온 사람들은 모두가 제각각의 욕구와 취향을 가지고 있다. 그렇게 본질적인 측면까지 들어가지 않더라도, 거리에서 만난 이들은 이동을 하고 있거나, 조만간 이동할 것이기 때문에 순식간에 깊은 내적 친밀감을 형성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당연히 책에 대한 니즈를 환기하고 구매까지 유도하기도 어렵다. 이것은 이동 중의 사람이나, 앉아있는 사람이나 약간의 가능성의 차이만 있을 뿐 마찬가지다. 어쨌든 앉아있는 사람도 그 자리에 오래 앉아있기 위해 나온 것이 아니라 조만간 어딘가로 이동할 것이기 때문이다. 구두 굽을 스무 번 갈아치우면 영업에서 성공한다는 것이 세일즈 계에서 격언이었던 때도 있었다. 그러나 그 시대는 갔다는 말을 필드에 나가서야 피부로 느끼며 조금은 이해한다.



2) 카페 사장님, 음식점 사장님 등을 공략할 것

 그들은 가게가 비는 시간에 심심하다. 코로나 시국이라 더더욱 그런 여유 시간이 많아졌다. 그들은 심심한 시간에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거나 무언가 의미있는 일을 하고 싶은 욕구가 충분하다. 게다가 장소라는 확고한 인프라를 가지고 있다. 오늘의 유의미한 협상이었던 카페 판매 부스 대관도 이러한 이유 때문에 가능했지 않을까 생각한다. 장소를 협찬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의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대화를 하기 위한 열린 마인드 상태일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상당히 훌륭한 타겟이다.



3) 현장에서 결제까지 완수하는 것은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지금의 실력으로는 이것이 완전히 불가능에 가깝다. 멘트, 스킬, 심리학적 지식을 통해 나만의 루틴화된 방법을 시도, 보완할 필요가 있다. 아주 짧은 시간에 어떻게 친밀감을 쌓고, 나라는 사람과 나의 책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하여 결제까지 이끌어낼 것인가?


지금으로서는, 동료가 제안한 대로, 카페 사장들에게 '일단 그냥 읽어보시고, 며칠 뒤에 찾아왔을 때 책이 별로였다면 그냥 책을 돌려주시라. 마음에 들었다면 그때가서 결제해 주시라.'는 정도로 후결제 방식을 시도하는 수밖에는 없겠다.


그러나 현장에서 결제까지 완수할 아이디어를 지속적으로 탐구해야 하겠다. 결제에 대한 거부감을 순식간에 없애야 한다. 어떻게? 결국 인터넷 판매가 답인가. 필드에 나간지 하루만에 가장 본질적인 물음과 직면해있음을 느낀다.


이것을 단순한 멘트나 스킬의 문제로만 바라보는 것은 피상적인 접근일지 모른다. 내가 파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와서 사게 하는 구조가 되어야 한다. 이것은 필드로 나가기 전부터 판을 완전히 기획해서 나가야만 가능할 것이라고 짐작한다.



4) 명함 내 QR코드 상세페이지 수정 필요.

이 부분은 심리학적 글쓰기를 활용해서 조금 더 간결하게 만들 필요가 있다.


지금은 기존에 블로그에 써두었던 '<내가 유디티가 된 이유>, 100만 부를 팔고자 하는 이유' 포스팅을 그대로 옮겨 썼다. 글이 길지만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하지만 글이 간결하고, 함축적이면서, 조금 더 읽는 이들을 후킹할 수 있는 방향으로 수정하는 게 어떠냐는 동료들의 의견에 동의한다. 거리에서 멈춰서서 QR코드를 확인하는 그 짧은 찰나에 그 많은 글을 다 읽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무엇으로 후킹할 것인가. 어떤 부분을 건드릴 것인가.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 아마 지속적으로 수 차례 수정이 들어가야 할 듯하다.



5) 그래도 역시 실전에서 두드려 맞으니 동기부여가 확 된다.

이론을 먼저 익히고 이후에 실천하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나와 맞지 않는 방식인  같다. 일단 무지한 상태에서 부딪치고, 깨지고나서  부분이  먹히지 않았을까 궁리하고, 개선하고, 보완하여 다시 시도하는 방식으로 해나가야 한다. 그래야 효율이 높고 몰입이 된다. 앤디 워홀은 생각하고, 준비하고,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는 즉시 행동해야 한다고 말했다. 생각과 행동 사이에는 아무런 시차도 없어야 한다고 했다. 일단 부딪치고나서 부족한 부분을 느끼고  부분을 유튜브든 책이든 잠깐 봤는데도 뭐가 잘못된 것인지 즉시 흡수되고 개선되는 것을 느꼈다. 내일은  세게 두들겨 맞고 싶다. 매일 매일 아프게 두들겨 맞고 싶다.



6) "위험한 일을 품위있게 하는 것, 나는 그것을 예술이라고 부른다." - 찰스 부코스키

우리가 하는 일은 어쩌면 불가능한 일일지 모른다. 수치상으로만 보면 그렇다. 결코 쉽지 않은 목표이고, 누구나 쉽게 하지 않는 방식으로 그것을 달성하려고 애쓴다. 상당히 위험한 일을 벌이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남은 과제는 이것을 어떻게 품위있고 우아하게 해내는가 하는 방법을 연구하는 것이다.


우리는 점점 더 세련된 방식을 찾아나갈 것이다. 점점 더 능숙해질 것이다. 우리는 점점 우리다운 방식을 강화하며 우리가 목표로 하는 곳을 향해 나아갈 것이다.


왜냐? 오늘의 시도로 우리 모두는 오랜만에 피가 끓는 것을 느꼈기 때문에.

피가 끓고 심장이 뛰기 시작하면, 그때부터는 상황이 정말 재밌어진다.



7) 정리

무거운 가방으로, 그리고 대중의 냉랭한 반응으로, 어제 잠을 설친 여파 때문에 나는 오늘 급속도로 피로감을 느꼈다. 그러나 가장 불편함을 느꼈던 부분은 오늘의 판 자체가 내 책을 사달라고 '구걸' 혹은 '애원' 하는 구도의 판이었기 때문이다. 그건 내 물건의 값어치를 스스로 떨어뜨리는 것이다. 나는 그렇게 구걸하듯 말하지도 않았고, 그렇게 말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았지만 결과적으로는 구도 자체가 그렇게 흘러갔다. 즉 대중이 알아서 사게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든 팔려고 애쓰고 있었다. 이것에 대한 불편함을 민감하게 느끼고 빠르게 피드백 의견을 공유하여 개선점을 찾아냈던 것은 잘한 일이었다. 또한 동료들과 함께하니 피드백 의견에 대한 부분 뿐만 아니라 그 존재만으로도 심리적으로 큰 영향을 받는다.




8) 내일

- 상세페이지 등 미비한 부분을 보완한다.

- 일단 책을 무겁게 들고 다니며 현장판매 하는 것은 당분간 그 수량을 10권 이내로 극도로 줄인다. 대신 명함의 노출도를 먼저 늘리고, 그 찰나에 관심도를 체크하여 관심이 있는 경우에만 책을 건네는 방식으로 진행한다.

- 플리마켓, 북페어 등 입점 가능한 공간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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