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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오 Jul 27. 2022

오빠가 했던 경험을 이제 바로 옆에서 보네요

우리의 길

남편: "여보, 이 글 좀 봐요. 송 교수님은 저의 뮤즈가 맞지요?"


평소 송숙희 교수님의 네이버 카페 글을 보는 습관이 있습니다.

오늘은 송 교수님과 통하는 내용이 올라와 아내에게 보여주었습니다.


아내: "어쩜, 오빠가 대단하다고 생각했던 모습을 이제 바로 옆에서 보네요,

         오빠가 왜 굳이 어려운 길을 선택했는지 알 것 같아요."




송숙희 교수님을 뵙고 무언가를 깨닫는 경험을 한 것은 10여 년 전 전남 강진에서였습니다. 무턱대고 책을 한 권 쓰고 싶다고 나타난 대학생에게


"책을 쓰면 저 큰 나무 한 그루를 없애야 하는데 책임질 수 있겠느냐?"

는 물음을 스스로 하게끔 했습니다.


당시 명확하지는 않지만 스스로에게만큼은 근사한 모습을 고민하는 삶을 선물했습니다. 고민하는 삶은 평탄한 길 위를 걷다가도, 남보다 더 오래, 더 느리게 걸어야 하는 길을 선택하는 힘이었고, 뛰기 싫어도 뛰어야만 하는 길을 굳이 선택하는 용기를 주었습니다.


그래서 혼자가 어울리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스스로 했을지 모릅니다.

누군가 곁에 있으면 고생할 것이 눈에 뻔히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고생길에 아내가 왔네요.




휴일에는 패터 비에리의 <<자기 결정>>이라는 책을 보다가, 종이 한 장을 꺼내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며 오전을 보냈습니다. 그동안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왔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궁금했기 때문입니다.


저에게는 자연스러운 행위가, 아내는 어색하게 보였을 것 같습니다. 무슨 생각이 저렇게 많은지 답답했을 수도 있고, 궁금했을 수도 있겠습니다. 아내는 그런 저의 옆에 바짝 붙어 앉아서, 사부작사부작 그림을 그리다, 책일 읽다, 손뜨개질을 했습니다.




10여 년 전 송 교수님과의 만남 이후 지금까지, 그렇게 혼자 묻고 생각하며 답하기를 고민하며 혼자였던 남편은 아내를 만났습니다.


이제부터 아내와 함께 걸을 길은 그간 10년 동안 해왔던 고민하는 삶에 대한 보답인 듯, 전처럼 오래 걸리거나 느리지만은 않을 것 같다는 확신이 스멀스멀 느껴집니다.


부부의 길을 걷는다는 건, 오래 걸리고 느려서 답답할 수 도 있는 일인 것 같습니다.

반면에 언제든 공감하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있어서 오래 걸리고 느려도 재미있습니다.


이따금씩 아내는 말합니다.


아내: "여보 돈 걱정 말고 하고 싶은 거 다해"


남편: "응? 정말 그래도 괜찮아?"


아내: "그럼. 걱정 마"


남편: "당신이 우리 집 기둥이야?"


아내: "응, 여보 쓰고 싶은 글 다 쓰고, 하고 싶은 거 다해"


저도 같은 마음이지만 굳이 아내에게 "여보 하고 싶은 거 다해"라고 말하지는 않았습니다. 일단 우리 집 기둥은 아내가 하기로 했습니다.


저, 결혼 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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