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4시 50분.
안방도, 주방도 불이 환하다.
이 시간에 불이 켜진 집안은 어쩐지 낯설다.
그녀는 잠에서 급히 깼다.
새벽기도에 늦었나 싶어 부리나케 몸을 일으켰지만,
이상하리만치 가슴이 철렁한다.
부엌으로 나가자, 개수대 앞에 어머니가 서 있다.
무언가를 조용히 닦는 중이다.
밥솥 아래 물받이가 가득 찼고, 넘친 물이 밥솥 바닥에 엉겨 붙었다며
작게 푸념하신다.
“밤새 제대로 못 자고, 이걸 그냥…”
어머니의 목소리는 작고, 손길은 분주하다.
눈가엔 잠기운 대신 긴장이 내려앉아 있다.
올해 1월, 어머니는 간에 고름이 생겨 보름 넘게 입원하셨다.
퇴원 후에도 밤마다 잠을 설치며,
이따금 새벽까지 불을 밝히고 앉아 계셨다.
그녀는 그런 어머니가 걱정돼 말했다.
“엄마, 이따 제가 닦을게요. 쉬세요.”
하지만 어머니는 손을 멈추지 않았다.
그녀는 방으로 들어가 조용히 누웠다.
그리고 한참 후,
집 안에 다시 고요가 찾아왔다.
불도 꺼졌고, 어머니도 잠깐 눈을 붙이신 듯했다.
아침 7시 무렵.
그녀가 부엌으로 나왔을 때,
어머니도 조용히 뒤따라 나오셨다.
밥상을 차리자, 어머니의 말씀이 이어졌다.
“아휴, 밥솥이 무서워. 물이 넘치고 눌어붙고…
내가 살피지 못했더니 그런 거지.”
그녀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요즘 부엌일은 거의 그녀 몫이었다.
직장과 병간호로 바쁘긴 했지만,
부지런히 신경 쓴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물받이는 미처 보지 못했다.
그건 분명, 그녀의 실수였다.
그녀는 그 순간 마음속에서 두 감정이 교차하는 걸 느꼈다.
하나는 미안함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작고 얄궂은 서운함.
‘왜 이렇게 말하실까. 그냥 조용히 넘기셔도 될 텐데…’
그러고는 스스로를 다그쳤다.
‘아니지. 이렇게 부엌에 나오실 정도로 회복되신 거잖아.’
‘나를 도와주고 싶으셔서 그러시는 거잖아.’
그녀는 마음속에서 수없이 말을 고쳐 썼다.
‘엄마, 그때보다 훨씬 좋아지셔서 정말 고마워요.
제가 더 잘할게요.’
하지만 그런 말은 입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대신 어머니의 잔소리가 다시 들렸다.
“왜, 밥맛이 없나 했더니, 밥솥이 그 모양이니 그랬던 거야~”
그녀는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그 말이 단순한 잔소리로 들린 자신이 속상했다.
어머니가 건강하게 계시고,
그 목소리로 말을 해주시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한 일인데.
그녀는 스스로를 향해 한마디처럼 생각했다.
‘내 마음은 아직 덜 자랐나 보다.
큰딸 노릇, 아직도 멀었나 보다.’
햇살이 따뜻한 오전이었다.
그녀는 어머니가 산책을 하시고,
상쾌한 바람을 맞으며 웃는 하루이길 바랐다.
그리고 그런 마음을 품은 채,
조용히 일터로 향했다.
때로는 귀찮고 불편하게만 들리는 말속에
우리가 놓치기 쉬운 사랑이 숨어 있다.
그녀는 이제 그것을 조금씩 알아가고 있었다.
“여러분은 마지막으로 엄마의 잔소리를 들은 게 언제인가요?”
홍주빛
#소설에세이 #잔소리의 진심 #엄마와 나 #사랑의 방식 #딸의 기록 #가족의 풍경 #홍주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