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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은 공동체의 하나 됨

by 홍주빛

김장은 공동체의 하나 됨

-홍주빛


해마다 늦가을이 되면, 우리나라 집집마다 김장을 담근다.
김장은 단순한 음식 조리를 넘어선다.


2013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이래
‘김치를 담그고 나누는 문화’는 한국인의 지혜이자
가족과 이웃이 함께 김치를 담그는 공동체의 연대 정신을 상징하게 되었다.

ChatGPT Image 2025년 12월 4일 오전 10_21_04.png 3학년 언니들이 따온 배추를 손질해서 절이기 위해 작업하는 광경을...

오늘, 우리가 학교에서 함께한 이 김장도
그 소중한 문화의 맥을 잇는 일이었다.


매년 이맘때면 수업 시간에 김장을 한다.
그런데 이번 김장은 조금 더 특별했다.


무더운 여름부터 비닐하우스와 밭에서 정성껏 기른 배추, 무, 쪽파, 고춧가루.

땀과 햇살 속에서 학생들의 손으로 키운 이 재료들은

마침내 ‘겨울을 담는 날’로 이어졌다.


1년 중 가장 푸짐한 날.

김장날 점심에는 전날 버무려둔 배추 속을 꺼내
수육과 함께 배추쌈으로 싸 먹는다.
이 맛이야말로, 한 해의 결실을 혀끝으로 만나는 순간이다.


평소 채식을 하는 친구들조차 이날만큼은
마음 놓고 고기의 풍미를 함께 즐긴다.
웃음이 오가고, 속이 든든하게 채워진다.


그리고 진짜 김장이 시작된다.

3학년 언니들이 절여 깨끗이 씻어둔 배추를,

1~2학년 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선생님들과 함께 속 넣기 작업을 한다.


핸드 스피커에서는 유행가가 흘러나오고,
조별로 모여 배추에 양념을 넣는 광경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양념의 매운 기운 속에서도
서로의 이야기가 오가고, 웃음이 피어난다.

KakaoTalk_20251204_103725309.png 배추 속 넣기 장면을 포착

이 순간은 단순한 음식 준비가 아니다.
이건 함께 사는 법을 배우는 시간이고,
흙과 땀과 계절이 어우러진 숭고한 노동의 축제다.


우리는 김장을 통해

흙과 땀의 정직한 결실을 배웠고,

함께 나누는 기쁨을 맛보았다.


배추 포기마다 정성껏 속을 채우는 그 순간,

우리는 교실을 넘어

유네스코가 인정한 위대한 문화유산의 일부가 되었다.


우리의 김장은, 그 자체로 한 송이 꽃이었다.

그리고 이 꽃은 내년 봄,

익어가는 김치통에서 따뜻한 연대와 사랑의 맛으로 다시 피어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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