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주빛
자꾸 깜빡거렸다
지난해부터
조리대 아래 수납장
접시 위, 달걀 네 알
까마득히 잊고 있다가
딸내미가 물어보면
금시초문인 듯
놀란 표정을 짓는다
도둑놈 소행인가 싶어
보건소 문턱을
이태 동안 넘었지만
아직 아니란다
괜찮단다
약을 드셔도 모르겠단다
통장 정리한다고 들고나가서는
동행한 둘째가
가지고 있단다
확인해 보자고
가방을 열면
문제의 통장이
배시시 웃고 있다
내 중 잘 쓰시던 스마트폰도
단축번호는 눌렀는데
신호만 뚜—뚜
허공으로 흩어진다
세월은
기억만 데려가고
연산은 남겨두어
사랑은 더하고
슬픔은 빼며
함께 살게 하셨다
막막한 레테의 강을
건너시기 전
조금이라도 붙잡고 싶어
통속에 들어가는 MRI에
부탁했다
어떻게든
오랫동안 곁에 두고 싶었다
이런,
거짓말 못하는 그는
이실직고했다
초기 치매다
올 것이 왔다
예상은 했지만
서둘러 찾아온
불청객이다
겁이 난다
조금은 서서히
안방에 들어서 달라고
당부를 건넨다
그녀의 곁을
오래도록
지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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