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엄마의 파김치가 특별한 이유-
밥은 사람을 기억합니다.
이 글은, 아이들이 키운 쪽파로 만든 파김치 한 줄기에서 시작된 이야기입니다.
우리 학교 급식실에는 ‘밥’이라는 이름으로 살아 있는 따뜻한 정이 있습니다.
엄마처럼, 딸처럼, 아들처럼 서로를 불러가며 쌓아온 시간.
이 작은 밥상 위엔 수많은 손의 사랑이 담겨 있습니다.
그 마음을 기억하고 싶어, 이 글을 씁니다.
점심시간이 조금 지난 어느 날, 식당에서 큰엄마가 나를 부르셨다.
“영양사님, 김치 간 좀 보세요~~”
순간, 며칠 전 막내 엄마가 쪽파를 정성껏 씻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 쪽파로 담근 김치가 막 완성된 모양이다.
하던 일을 멈추고 전처리실로 가보니, 커다란 25킬로 김치통에 파김치가 가득 담겨 있었다.
붉은 양념이 고루 배어 먹음직스럽게 반짝인다.
"학생들이 농사짓고, 다듬어 온 쪽파김치예요."
“우와, 정말 맛있어 보여요.”
“어서 맛 좀 보세요~~”
가장 가느다란 파 한 줄기를 꺼내 입에 넣었다.
파의 향이 입 안 가득 퍼지더니, 몸 전체로 스며드는 듯했다.
“정말 맛있네요!”
큰엄마가 환히 웃으며 이야기하셨다.
“아까 아이들도 파김치 담근다니까 얼마나 좋아하던지요~”
이번 김치는 특별하다.
학생들이 학교 채소포에서 직접 키운 쪽파로 담근 것이다.
파를 뽑고, 다듬고, 한 줄기씩 정성스레 손질해서 올려준 재료였다.
그 모습을 사진으로 남겨둘 걸 그랬다.
한 학생은 제법 능숙하게 손질했고, 또 다른 친구는 비스듬히 누워 쪽파를 가지고 장난을 쳤다.
그 모습이 참 귀엽고 정겨웠다.
신기한 건, 자신이 직접 키운 재료로 만든 김치는 아이들이 훨씬 잘 먹는다는 것이다.
특히 좋아하는 친구들도 많다.
우리 학교는 농업고등학교다.
식당에서 사용하는 쌀은 몇 해 전부터 학생들이 모내기부터 도정까지 함께한 쌀로만 밥을 짓는다.
채소는 많지는 않지만, 싱싱하고 건강한 것들만 학생들이 정성껏 올려준다.
믿고 쓸 수 있어 든든하다.
3월 말, 쪽파를 시작으로 서서히 상추 등 채소가 올라오고,
11월 말 김장을 마지막으로 한 해 농사가 마무리된다.
어느 해에는 배추가 남아 비닐하우스 안에 덮어두고, 겨우내 몇 포기씩 베어다가 배추나물로 먹기도 했다.
마치 시골 텃밭에서 야채를 따는 듯한, 그리운 풍경 속의 일상이었다.
우리 학교에서는 급식실을 ‘식당’, 영양사는 ‘영양사 선생님’, 조리사는 ‘큰엄마’, 조리원 선생님들은 나이순으로 ‘둘째 엄마’, ‘막내 엄마’라고 부른다.
참 정겹고 따뜻한 호칭이다.
집에서 엄마가 자녀를 위해 밥을 짓듯,
우리 엄마들도 학생들을 “우리 아들”, “우리 딸”이라 부르며 진심을 다해 끼니를 챙기신다.
다른 학교 이야기를 들으면 가끔 놀랄 때가 있다.
식단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욕을 하거나, 받은 음식을 그대로 잔반통에 버리는 경우도 있다는데,
우리 학교에선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잔반도 거의 없다.
설거지는 학생들이 돌아가며 직접 하고, 아침과 저녁 배식도 자율적으로 돕는다.
특히 식사당번이 된 학생은 아침 일찍 식당으로 와서 엄마들과 함께 식재료 손질을 거든다.
당근을 깎고, 감자와 양파를 다듬으며, 대용량 요구르트를 밧드에 나눠 담기도 한다.
그 와중에 엄마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눈다.
속마음을 털어놓기도 하고, 함께 웃기도 한다.
식사 준비가 끝나면 식사당번 학생들과 엄마가 가장 먼저 밥을 먹는다.
그 시간엔 어느 때보다도 솔직한 대화가 오간다.
그래서일까.
우리 학교에서 가장 인기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식당 엄마들’이다.
졸업한 뒤에도 엄마들을 뵙고 싶다며 찾아오는 졸업생들도 많다.
어버이날이 다가오면, 큰엄마의 자녀들이 묻는다고 한다.
“엄마, 학교 아들딸들은 잘해줘요?”
그러면 큰엄마는 웃으며 이야기하신다.
“그럼~ 우리 아들딸들이 얼마나 예쁜데.”
엄마들의 마음을 느낀 학생들은 어버이날마다 감사 잔치를 연다.
롤링페이퍼에는 형형색색 색펜으로 쓴 다양한 감사의 글이 가득하고,
예쁜 꽃다발과 자그마한 선물을 전하며 합창과 구호로 마음을 전한다.
세상 어디서도 쉽게 볼 수 없는, 아름다운 어버이날 풍경이다.
큰엄마는 오늘도 마음을 담아 파김치를 정성껏 버무리셨을 것이다.
“우리 아들딸, 맛있게 먹고 건강하게 지내길.”
김치통 뚜껑을 덮으며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셨을지도 모른다.
정성이 고스란히 배어 있는 그 김치.
그 마음이 식당을 가득 채운다.
그리고 그 사랑은, 매일 식당으로 달려오는
학생들의 밝은 얼굴과 꾹꾹 눌러 담은 식판 속에 살아 있다.
누군가는 이걸 단지 ‘급식 이야기’라 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제게 이곳은 삶을 배우고, 사랑을 나누고, 하루를 데우는 따뜻한 공간입니다.
아이들의 손끝과 엄마들의 마음이 버무려진 김치 한 포기,
그 안엔 밥상 공동체의 진심이 고스란히 녹아 있었습니다.
밥은 그냥 끼니가 아니라, 살아가는 법을 나누는 일입니다.
오늘도 저는 그 밥상을 지키며 배웁니다.
정년이 다가와도, 이 마음은 여전히 계속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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