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양사의 하루는 새소리로 시작된다

-조용한 시작, 마음으로 차려낸 하루

by 홍주빛

이 글은 우리 학교의 ‘나눔 날’을 중심으로, 한 영양사의 아침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정원, 새들의 노래, 그리고 마음을 담은 밥상으로 시작되는 하루를 전합니다.



이른 아침, 정원의 잎사귀마다 이슬이 맺혀 반짝인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문을 여는 순간, 차가운 공기가 얼굴을 스친다.
감나무 가지 위, 전깃줄을 따라 새들이 아침을 노래한다.
나는 얼른 휴대폰을 꺼낸다.
“잠깐만, 조금만 더…”
프레임 안에 남은 한 마리 새.
‘고마워, 오늘 아침의 기념이 되어줘서.’

영양사의 하루는 그렇게,
새들의 노래와 함께 시작된다.


조리실 안으로 들어서며 밝게 인사를 건넨다.

“엄마, 밝았습니다~!”

오늘은 한 달에 한 번 있는 나눔 날.
아픈 아이들을 위해 따뜻한 흰 죽을 준비하고,
다 치운 조리실은 잠시 고요하다.


‘나눔 날’은 1990년대, 북한의 식량난과 기아 문제에 관한 문화특강을 듣고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금식날’을 만든 것에서 시작되었다.

아침밥을 먹지 않고 그 식비를 모아, 도움이 필요한 이웃에게 마음을 전하는 날.
중간에 “너무 배고프다”는 의견이 나와 감자나 고구마를 먹어본 적도 있었지만,
결국 다시 원래대로 지켜가고 있다.

지금도 매월 셋째 수요일이면, 전교생은 조용히 한 끼를 비우며 이 날을 이어간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마음으로 지켜온 약속이기에 더 깊다.

올 4월에도 전교생이 회의를 통해 '나눔 날'의 의미와 형식을 다시 되새기고,
그대로 이어가기로 결정했다.

누군가의 하루를 따뜻하게 데우는 일.
그 마음을 지켜낸다는 건,
우리에게는 밥보다 소중한 한 끼를 나누는 일이다.


영양사의 하루는 그렇게 시작된다.


가운을 입고, 마스크를 쓰고, 위생장갑을 낀다.
아이패드를 챙기고 식재료 검수에 들어간다.
이제는 손글씨 대신 HACCP 시스템이 익숙해졌다.

식재료를 전달해 주는 사장님은 작년에 이어 올해도 함께하는 분.
정성껏 재료를 전달해 주시는 모습이 늘 든든하다.

오늘 중식 메뉴는 한우 조리떡국이다.
2kg의 한우를 검수하다가 문득 생각이 스친다.
‘어? 너무 적게 시킨 거 아니에요?’

옆에 있던 엄마에게 툭 던지듯 말하자, 웃으며 말로 다독여주신다.
“아니에요~ 오늘 메뉴에는 이 정도면 충분해요.”

이따금 헷갈리고 실수도 하지만,
그럴 때마다 웃으며 서로를 응원하는 이곳.
우리는 그렇게 학교 밥상을 함께 차려낸다.


아침 회의가 열리는 농업교사실로 향하는 길,
수선화와 봄꽃들이 햇살을 가득 품고 있다.

나무 계단 옆,
바위 하나가 마치 개구리처럼 계단을 오르려는 자세를 하고 있다.
그 모습이 재미있어 나는 혼잣말로 이름을 붙인다.
‘정겨운 개구리.’
오늘도 그 녀석을 바라보며 회의실로 들어선다.

계단을 오르고 싶어 하는 '정겨운 개구리'

회의를 마치고 강당으로 내려가 아침예배에 함께한다.
이 시간은 우리 학교의 중심추와 같다.

오늘은 2학년 ○○○군이 나왔다.

“사실 하나님이 정말 계시는 건지 잘 모르겠어요.”


그의 고백에 모두가 조용히 귀를 기울인다.

부모님은 신앙인이지만, 자신은 아직 확신이 없다고.
종교의 결속력이 정치보다 강하게 느껴진다고 말하며,
그가 느낀 혼란과 궁금증을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그리고 마지막엔 이렇게 말했다.

“그래도 저는, 성경을 다 읽어보며 하나님을 알아가보려 합니다.”


나는 마음속으로 조용히 기도한다.
‘그 고민이, 머무름이 아니라 만남으로 이어지기를.’
진심으로 자신을 들여다보는 한 사람의 시작이, 이토록 고맙다.


다시 식당으로 향한다.
오늘의 점심이 더 맛있기를 바라며.
엄마들과 함께 또 한 끼의 마음을 차려낼 시간이다.

체육관 옆 키 큰 나무 위, 이름 모를 새 두 마리가 앉아 있다.
“아름다운 봄이에요, 싱그러운 봄이에요, 행복한 하루예요~”
그들이 그렇게 노래하는 듯하다.


여러분의 아침은 어떠셨나요?
만약 숲 속 새들의 노래가 들리지 않는 아침이라면,
오늘은 마음속에서 조용히 흥얼거림 하나 꺼내어 시작해 보세요.
지금, 행복하기에 딱 좋은 하루가 열리고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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