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홍주빛
작년, 황토밭 이랑 끝에서
난생처음 고구마꽃을 보았다—
드문 보라,
넓은 초록잎 뒤에
빛이 눌려 있던.
올해는 잎 뒤에 숨은
들보라 한 점.
들추었던 잎을
다시 덮어주니
잎맥이 바람을 적시며
속삭였다.
“꽃 없이 열매 맺는 곡식이 있던가—”
마디 굵은 손끝,
흙먼지 틈에서
그 말이 묻어났다.
참깨의 흰 방울,
참외 노랑이
벌의 혀를 불러들이고,
동부는 속을 드러내며
내 숨을 훔쳤다.
나는
어떤 빛깔의 꽃일까.
질 무렵,
손가락에 스민 보라가
저녁까지 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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