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키자 Oct 22. 2019

마음껏 나를 싫어하세요

대학 1학년 때, 전라남도로 일주일간 답사를 떠났다.

일주일 내내 담양, 해남, 보성 등 구석구석 훑었다.

입학하고 3개월 남짓 지나서였다. 이제 갓 동기들과 친해지고 선배들 얼굴을 익던 때였다.

이제 갓 신입생인데 일주일간 친구들과 여행이라니, 더없이 맘이 콩닥였다.


별이 유독 반짝이던 4일 차 밤으로 기억한다.

한 학번 위 선배가 대뜸 그랬다. "인마 어장관리하지마. 다 보여"

이게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인가. 어장 관리라니.

40여 명의 동기들과 다 친하게는 지냈지만, 흑심은 없었다. 그 당시 학과보다 학교 밖 놀이에 더 골몰할 때였다. 엊그제 숙대생들과의 미팅 생각에 썸을 타냐 마냐 고민할 때였다.


뭔가 억울했다. "전혀 아닌데요. 사람 잘못 보셨습니다" 오해를 풀고 싶었다. 얄팍한 인간이 아니라고 항변하고 싶었다. 누구에게나 사랑받고 싶었다.(왜 그렇게 생각했을까? 어장관리는 능력남이어야 가능한 것인데...ㅋㅋㅋㅋ)


예전엔 모든 사람이 나를 사랑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를 잘못 보고 험담하는 사람들을 설득하고 싶었다.

"내가 얼마나 좋은 사람인 줄 아느냐. 왜 겪어보지도 않고 그러느냐. 나는 꽤 괜찮은 인간이란 말이야"

괜히 상처 받고 아파하고 또 속상했다.

거창한 이유가 없이, 내 모습을 잘 몰라준다는 게 이유였다.


지금은 아니다.

내버려 둔다. 모두가 나를 사랑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안다.

모두에게 사랑받아야 하는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그쪽에는 에너지를 안 쓰게 됐다.

나를 사랑하는 이들과 에너지를 온전히 나누는 것만으로도 벅차다. 시간이 없다.

그리고 쉽게 사람을 판단하는 이라면 굳이 관계 맺지 않아도 된다. 나랑 맞는 사람을 남기면 된다. 내 취향과 맞는 사람과 사귀면 된다.

나이가 들수록 취향이 맞지 않다는 것만으로 만나지 않게 된다. 인간이 본래 그렇다. 내가 좋은 것에 끌리는 게 자연스럽다. 그러니, 나 좋다는 사람들과 우리가 사랑하는 것들을 밤새워 이야기하면 된다.


아, 얼마나 행복한가.

매거진의 이전글 그는 왜 1년을 매일 8시간 동안 영어만 했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