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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키자 Jan 31. 2021

JYP 박진영이 1조 회사를 키운 특급 비법은

박진영은 10년 전에 이미 다 알고 있었다

[경제기자 홍키자] JYP 박진영이 1조 회사를 키운 특급 비법은


가수로 커리어를 시작한 프로듀서 박진영 씨는 어떻게 JYP엔터를 시가총액 1조3500억짜리 회사로 키울 수 있었을까요?


바로 '음악은 더 이상 과거처럼 소유하는 게 아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정확하게 꿰뚫었기 때문입니다.


음반 시장의 디지털 전환과 관련한 메가 트렌드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었다는 얘기예요. 흐름을 누구보다 먼저 읽고, 나아갈 방향을 명확히 캐치한 뒤 기존 비즈니스 모델을 새 모델로 송두리째 바꿨죠.


지금으로부터 12년 전인 2009년 1월, 박진영 PD는 프랑스 칸느에서 열린 세계적인 음악 컨퍼런스 '미뎀'과 함께 열리는 '미뎀넷'에서 기조 연설을 했습니다. 미뎀넷은 디지털 시대로의 전환점에서 음악계가 어떻게 대처 해야하는 지에 대한 방안을 고민하기 위해 만들어진 컨퍼런스였죠.


박진영 PD는 대담에서 MC로부터 질문을 받습니다.
"2001년에 직원들을 불러모아놓고 '우리는 음악을 만들지 않는다' 대신 '우리는 스타를 만든다'라고 하셨죠. 왜 그런 말씀을 한 겁니까?"


박 PD는 대답합니다.

"한국의 고속인터넷 보급률이 80%가 넘는다. 냅스터와 같은 서비스가 나왔을 때 한국의 음반 시장이 가장 큰 타격을 받았고, CD기반 음반 시장의 90%가 무너졌다. 우리는 비즈니스 모델을 바꿔야했는데, 디지털 시대에도 가장 바뀌지 않을 것은 바로 가장 아날로그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우리가 스타를 원한다는 것은 바뀌지 않는다. 그래서 인재를 찾아 나섰다. 춤과 노래, 연기가 되는 인재를 찾는 게 필요했다"


[유튜브] 10년 전에 미래 예측한 박진영


한국에서 재능 있는 아이들을 선발해 연습시키는 연습생 문화를 JYP가 선도한 이유를 알만한 대목이죠. 디지털 전환의 시대에 결국 바뀌지 않는 것이 무엇일까. 무엇을 해야하나. 기술이 발달하는 시대에도 변하지 않고 대중들이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그 지점에서 고민한 것이죠. 핵심이 무엇이냐? 의 통찰입니다.


한국 음반 시장을 망하게 했다는 냅스터는 미국의 온라인 음악 파일 공유 서비스에요. 1999년부터 2001년 7월까지 운영됐는데, 얘가 바로 mp3를 공유하게 만든 서비스였어요. 우리나라도 당시에 음악 mp3를 무료로 다운받는 곳이 있었죠. 그 당시에 한국에 유행했던 게, '소리바다' '파일구리' 등 p2p 공유 서비스였죠.


돈 주고 음반을 사 보는 문화에서, 무료로 음원을 다운받는 문화로 송두리째 바뀐거예요. 한국은 그 속도가 세계 어느 나라보다 빨랐죠.


아시다시피, '아이리버'라는 기업이 만든 mp3플레이어가 한국과 전 세계를 호령했죠. (저도 당시 중학교 시절에 아이리버 mp3플레이어 64메가바이트짜리를 13만원 주고 아버지가 사주셨던 기억이 납니다 ㅎㅎ)


전국민이 무료로 음악을 다운로드 받는데, 음반시장이 잘 될 턱이 있나요?

거기다가 2002년에 이미 고속인터넷보급률이 한국은 50%가 넘었어요. 2500만명이 쓰고 있었고요.


비(Rain)가 솔로데뷔했던 2002년의 사회 분위기가 딱 요런 분위기였죠. 그러니 음반시장의 90%가 망해버렸다는 얘기가 너무도 절묘하죠.


그런 사회적 배경 속에서 박 PD는 '스타 양성'에 올인했다는 얘깁니다.


미국의 냅스터의 출현, 고속인터넷의 보급, 음반 시장의 본질, 메가 트렌드 등 모든 것을 꿰뚫고 2001년에 '재능있는 인재 발굴과 양성'의 화두를 직원들에게 던진거예요.


4년 동안 죽어라 춤, 노래, 연기를 연습시킨 비(Rain)가 2002년에 데뷔했고요. 7년동안 연습시킨 원더걸스가 2007년에 데뷔했죠. 비가 노래도 하고 연기도 하는데는 다 이유가 있는 겁니다.


가수로 성공해서 인지도를 얻었을 때, 아시아를 공략하기 위해 출연시킬 드라마까지 이미 점 찍어 뒀던 것이죠. 그게 바로 <풀하우스>. 풀하우스는 아시아 전역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었고, 아시아 스타로 비가 거듭나게 되는 계기였죠. 그 뒤에 2007년에 매트릭스 만든 워쇼스키 감독의 영화에 출연을 성사시키면서 미국으로 넘어갔죠. 연기로요.


한국 -> 아시아 -> 미국의 로드맵이 있었던 것이고, 바뀐 음악 시장의 트렌드를 보고 연기까지 4년동안 연습시킨 계획이 그대로 맞아떨어진거죠.


물론 온라인 시장이 아직 무르익지 않았던 분위기 탓에 2009년 8월에 미국에 데뷔한 뒤 미국 시장을 노크하던 '원더걸스'는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2010년 1월에 선미가 학업을 이유로 활동 중단을 하겠다고 밝혔잖아요. 나중에 들리는 썰로는 미국 생활이 너무 고달팠다고 하고요.


저는 이 지점이 되게 아쉽다고 봐요.

딱 1년만 늦게 데뷔했으면 달라졌을텐데 하는 생각이 듭니다. 박 PD는 시장을 너무 정확히 꿰뚫은 탓에, 2007년부터 미국 진출하고 승승장구하던 비의 기세와 맞물려 미국 음악 시장을 뚫으려고 했던 것으로 보이는데요.


미국도 이제 시장이 무르익고 있었거든요. 무슨 시장이? 


동영상 시장이요. 2010년이 유튜브의 변곡점이 됐던 한해였거든요. 하루 조회수가 20억회를 돌파했던 시점도 2010년이었고요. 그 덕에 2011년엔 유튜브가 로고도 새로 바꿨죠. 로고의 변천사는 사업의 흥망과 관련이 있으니, 2011년부터 본격적인 유튜브 시대가 열리기 시작하죠.


원더걸스의 화려한 <노바디> 복장이 유튜브를 통해 더 알려지기 시작했다면, 앞선 <Tell me>부터의 완성도 높은 뮤비가 더 바이럴됐다면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방시혁 빅히트 대표는, 박진영 PD옆에서 미국생활을 온 몸으로 경험했잖아요. 그리고 늘 대화를 나눴을 것이고. 요런 디지털 전환의 모멘텀은 익히 꿰뚫고 있었겠죠.


그러니, BTS는 2013년 데뷔 이전인 연습생 시절부터 유튜브 등 SNS를 통해서 두터운 팬층을 만들어갔죠. 방 대표는 알았을 겁니다. 새로운 뉴 스타를 키우는 것이 이제는 일방적으로 키워져서는 안되고, 팬들과 일찍부터 소통을 통해서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사실을요.


SNS라는 뉴 디지털 전환의 맥을 또 짚어낸 것이죠.


2012년 12월이 데뷔 이전인데, 방탄은 그 때 이미 방탄tv 유튜브를 통해 팬들과 소통을 시작하거든요.


흔한 연습생의 크리스마스 Video Edit by 방탄소년단

https://youtu.be/fnZsn-So-AU


취재를 하다보면 종종 박진영 PD와 같은 분들을 만납니다. 그 누구보다 자신의 업의 본질에 대해 정확히 꿰뚫고, 메가 트렌드와 엮어낼 수 있는 사람들요. 생각할 게 많으니, 신발 끈 묶는 시간도 아까워서 신발 끈 없는 신발만 구매한다는 박 PD의 얘기가 일견 이해가 갑니다.


박진영 PD 만나보고 싶어요... 만나서 그 집사부일체에 나와서 슬쩍 보여준 본인이 전부 썼다는 'JYP엔터 업무매뉴얼' 얘기도 좀 듣고, 지금 보는 5년 뒤의 미래는 어떠한지 묻고 싶습니다 ㅎㅎㅎ


마지막은 보너스 클립!
'골든스테이지' 박진영&비 - 'When We Disco(Tango ver)' 외 3곡♪|JTBC 210110 

https://youtu.be/Qb8swQgs7bs


#홍키자 #유튜브 #콘텐츠 #방탄소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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