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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밀밀 Sep 01. 2021

너는 죽어서 보편이 된 걸까

애도할 준비


2019년 4월 29일


친구의 얼굴이 계속 떠오른다.


입관 전 마지막으로 봤던 얼굴. 분명 그전과 똑같은데 생명이 꺼져버린 밀랍인형 같은 얼굴. 그리고 화장터에서 본 친구의 유골.


나는 겁이 많은 사람이다. 새벽에 일어나 화장실에 가는 게 무섭고 어둠이 무섭고 귀신이 유령이 무섭다. 그런데 친구가 이제는 귀신이 유령이 돼버렸다. 이 세상 사람이 아닌 사람. 친구의 마지막 모습이 자꾸 생각나는 게 무섭다. 그런 생각을 하는 내가 싫다.


비상한 일이 벌어지는 때.

d는 그 말을 생각할 때마다 작은 유백색 단지를 생각했다. dd의 뼛가루를 담은 유골단지. 그것을 본 지도 일년이 넘었으나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그것은 d의 손안에 있었다. 두 손 안에. 그리고 그것이 매우 미지근할 거라는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러워 d는 눈을 감았다. 그 몸이 모두 그 작고 단순한 단지 안에 담겼다는 것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d에게는 박조배의 배낭 같은 것이 필요 없었다.

-황정은, <디디의 우산>


황정은의 소설을 읽는다. 소중한 사람은 죽어버렸고 남겨진 사람은 계속 생각한다. 소중한 사람에 대해 그 사람의 죽음에 대해. 하지만 생각하고 생각할수록 죽음은 아무 의미가 없다. 그저 없어졌을 뿐, 끝나버렸을 뿐이다. 아무것도 되돌릴 수 없느니 남겨진 사람은 자신을 미워한다. 자신에게 벌을 주듯 살아간다.


발리에서의 나날은 비현실적이다. 한국 생각을 할 때는 포털 사이트를 들여다볼 때 정도? 이곳의 풍경도 날씨도 일상도 모든 게 비현실적이라 여기서는 모든 걸 다 잊을 수 있다. 오늘이 무슨 요일인지 여기 온 지 얼마나 됐는지도 모르겠다.


오랜만의 휴식이 달콤하면서도 이렇게 내가 행복해도 되나 싶다. 그토록 소중하던 니가 떠났는데. 이제 나는 너와 어떤 기억도 만들 수 없는데.


친구에게 마지막으로 보냈던 영혼 없는 카톡을 떠올리고. 장례식장에 가장 먼저 도착했던 나를 떠올린다. 이렇게라도 나를 싫어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을 것 같아서.


친구의 얼굴이 계속 떠오를 때는 아이를 보는 게 힘들다. 마음속이 너무 복잡해져서 도무지 여유가 생기지 않는다. 아이에게 짜증을 내고 화를 내게 된다. 친구는 내가 이렇게 되기를 분명 원하지 않을 텐데.



2019년 5월 4일


사누르의 마지막 밤. 여행의 마지막 밤도 아닌데 아쉽고 쓸쓸한 마음이 든다. 사누르에서의 열흘은 너무 완벽하고 행복해서 비현실적이었다. 그동안 지내온 현실이 비현실처럼 느껴질 정도로. 숙소도 날씨도 바다도 식당도 카페도 사람들도. 모든 게 좋았다. 특히 열흘간 묵은 숙소와 사누르 바다는 오래오래 잊지 못할 것 같다.


4년 전, 포르투에 도착했을 때도 그랬다. 처음 보는 곳인데도 이곳을 오랫동안 그리워했다는 걸, 앞으로도 계속 그리워하리라는 걸 예감했다. 운명의 상대처럼. 사누르도 우리에게는 운명의 공간이었다.


망가진 유모차를 끌고 사누르 해변을 몇 번이나 왔다 갔다 했는지. 물이 얕고 맑아서 사람들이 목욕탕에 있는 것처럼 앉아있는 곳. 그래서 아이와 놀기 좋은 곳. 적당히 한적하고 적당히 여유롭고. 오늘은 물이 다 빠진 일몰 시간 바다를 처음으로 봤는데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파도가 화려하게 치거나 눈부시게 아름다운 색깔의 바다도 아닌데, 사누르 바다는 보고만 있어도 마음이 편안해진다.


마지막 저녁은 사누르 비치 야시장에 있는 해산물 식당에서 먹었다. 잘 차려진 레스토랑이 아닌 해변 노상이었는데 가격도 저렴하고 정말 맛있었다. 대만족 하면서 유모차를 끌고 집으로 가려는데 바다에 별이, 그렇게 많은 별은 정말 오랜만에 봤다. 아이는 두 손을 포개고 소원을 빌었다. 엄마 아빠 안 아프고 건강하게 해 달라고. 나도 고개를 들어 별을 보았다. 친구를 생각했다.


'잘 있지? 너도 별이 된 거지? 이제 그만 붙잡고 있을게. 여기는 만물에 신이 깃든 곳이래. 여기 있는 신들에게 너 그곳에서 잘 살게 해달라고 매일 빌었어. 나도 잘 지낼게. 어떤 게 잘 지내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렇게 행복해도 너무 미안해하지 않을게.'


아이는 피곤했는지 유모차에서 잠이 들었다. 머지않아 다시 와야지. 그때는 유모차 없이.



2021년 9월 1일


어떤 추억은 음악과 함께 재생된다. 다니엘 시저와 H.E.R가 부른 <Best Part>를 들으면 사누르의 마지막 날 밤이 생각난다. 원곡의 섬세함과는 거리가 먼, 어설프지만 사랑스러웠던 레스토랑 밴드의 공연이.


친구의 죽음에 대한 글을 쓰고 싶지 않았다. 롤랑 바르트가 어머니의 죽음 이후 쓴 <애도 일기>에 쓴 것과 비슷한 이유였다.


"나는 이 일들에 대해서 말하고 싶지 않다. 그러면 결국 문학이 되고 말까 봐 두렵기 때문에. 혹은 내 말들이 문학이 되지는 않을 거라는 사실에 대한 자신이 없기 때문에. 그런데 다름 아닌 문학이야말로 이런 진실들에 뿌리를 내리고 태어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친구에 대한 애도가 어설픈 감상이나 자기 연민, 자기혐오로 이어지는 게 싫었다. 이렇게 말하면 아마 친구는 옆에서 의미 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할 거다.


"홍여사(나는 고등학교 때부터 별명이 여사였다 ㅎㅎㅎ) 니는 생각이 너무 많다."


발리 사람들은 만물에 신이 깃들어 있다고 믿는다. 길가에 유난히 커다란 개가 많은데 식당 주변을 돌아다니기도 하고 바다에서 수영을 하기도 한다. 그래도 사람들은 개를 쫓지 않는다. 말 못 하는 개에게도 나무에도 꽃에도 자신들과 똑같이 신이 깃들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스무 살이나 나이 차이가 났지만 "마음이 맞았"던 두 사람. 고레에다 히로카즈와 키키 키린. <키키 키린의 말>에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쓴 키키 키린을 위한 추도사가 나온다.


"사람이 죽는 것은 그 존재가 보편화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어머니를 잃은 뒤 오히려 어머니의 존재를 온갖 것 속에서, 거리에 스쳐 지나가는 생판 모르는 사람들 속에서 발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며 슬픔을 극복하려 했습니다."


"사람이 죽는 것은 그 존재가 보편화하는 것"이라는 대목을 읽으며 발리의 신을 떠올렸다. 책상 한편에 친구와 내가 고등학교 때 등산을 가서 찍었던 사진을 올려둔다. 어쩌면 친구가 살아있고 언제든 만나고 연락할 수 있을 때보다 친구를 더 자주 생각한다. 모든 일상 순간순간에 너의 존재가 깃들어 있다고 믿으면서.


하늘나라에서도 친구는 특유의 사교성과 명랑함으로 잘 지낼 것 같은데, 역시나 내가 너무 생각이 많은 걸까. 이제야 너를 애도할 준비가 됐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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