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살 아이는 방콕에서 제일 겁없는 사람이었다
밤 비행기를 타고 온 다음 날 오전, 트리플 앱을 검색해 방콕 골목에 숨어 있는 브런치 카페를 찾아갔다. 150년 된 건물을 리모델링 해서 만든 카페 SARNIES에서 남편, 나, 아이 한 잔씩 음료를 시켰다. 달콤한 디저트도 곁들였다.
빈티지하면서도 그리너리한 힙한 카페. 아이에게 환하게 웃어주는 직원들을 보며 그제야 우리가 방콕에 왔음을 실감했다.
“방콕에도 이런 데가 있었구나.”
“작년에는 왜 이런 데 올 생각을 못 했지?”
“그때는 그럴 정신이 없었지.”
처음 아이와 방콕에 도착했을 때 멘붕을 잊을 수 없다. 깜짝 놀랄 소음과 시커먼 매연을 내뿜으며 무섭게 달리던 오토바이. 아이는 두 돌 가까이 살면서 아마 그렇게 많은 오토바이를 처음 봤을 거다. 서른 해 넘게 산 나도 처음이었으니까.
도로를 가득 메운 자동차와 언제라도 갑자기 튀어나올 것 같은 오토바이 사이를 유모차를 끌고 지나면서 왜 여기까지 애를 데리고 왔지 후회 또 후회했다.
분명 방콕은 아이를 데리고 가기 좋은 여행지가 아니다. 덥지, 습하지, 사람 많지, 정신없지, 거기에 엄청난 교통 체증까지. 좁은 인도에서 유모차 끌고다니는 것도 힘들다. 저렴하기로 유명한 방콕 길거리 음식도 어린 아이와 함께라면 그림의 떡.
하지만 지난해 방콕에서 일주일을 보내고 우리 가족은 방콕의 매력에 푹 빠졌다. 수많은 여행지 대신 2년 연속 방콕을 찾은 이유다. 그리고 이번 4박5일 여행에서 우리는 방콕을 더 사랑하게 됐다.
지난해 방콕에 왔을 때는 아이가 두 돌이 되기 전이었다. 유모차를 끌고 걸으면 숨이 넘어갈 것처럼 덥고 습했다. 아이는 수시로 안아달라고 떼를 썼다. 땀이 비오듯 흘러서 하루에도 몇 벌씩 옷을 갈아입어야 했다.
하루는 왕궁투어를 신청했다. 한국인보다 한국말을 잘 하는 태국인 가이드와 일행들의 뒤꽁무니를 따라 다닌 지 1시간도 안 돼서 우리는 중도하차를 선언했다. 넓고 사람 많은 왕궁 한복판에서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바닥에 철퍼덕 앉아 있는 내 사진이 아직도 남아 있다. 아이와 여행할 때 가장 중요한 원칙, ‘욕심 내지 말 것’에 대해 아직 잘 모르던 시절이었다.
두 번째 방콕 여행. 10월의 방콕은 4월보다 훨씬 아이와 여행하기 좋았다. 낮에는 햇빛이 뜨거웠지만 4월만큼 견디기 힘든 수준은 아니었다.
비행기에 탄 아이는 영상 보고 스티커 붙이기 하다가 “다 오면 깨워줘”하고 잠들었다. 며칠 전부터 했던 “나 비행기에서 이제 조용히 할 거야”라는 약속을 지키기라도 하듯이. 그래도 여전히 비행기가 무서운지 자면서도 손을 꼭 잡아달라고 했다.
매일 아이를 만나고 적지 않은 시간을 함께 보내지만 여행지에서는 아이가 크는 순간에 온전히 집중하게 된다. 아이의 변화와 성장이 더 극적으로 재편집된다. 같은 여행지에 왔다면 더욱 그렇다.
만 40개월 된 아이는 호텔 조식 먹으러 가서 혼자 접시 들고 다니고, 스마트폰 없이 엄마 아빠와 이야기 나누면서 밥을 먹었다. 무조건 직진이었던 아이는 이제 위험하다는 게 뭔 줄 알고, 엄마아빠가 졸졸 쫓아다니지 않아도 혼자서도 장난감과 색연필을 가지고 제법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됐다.
그런 아이가 예뻐서 카메라로 사진을 찍어주려 하자 아이는 반대로 손을 내밀었다. 자기가 엄마 아빠를 찍어주겠다고. 아이는 제 손보다 큰 카메라를 낑낑대며 들고 나와 남편을 앵글에 담았다.
아이가 크면서 우리 여행도 덩달아 커졌다. 지난해 방콕에 왔을 때는 호텔과 쇼핑몰에서 주로 시간을 보냈다. 모든 동선은 아이 위주였고 아이의 패턴에 맞춰 밤 8시면 잠들고 다음날 새벽 6시에 눈을 떴다.
이번 여행에서 남편과 나는 아이가 잠든 틈을 타서 방콕의 새로운 장소를 찾아 다녔다. 지난해는 엄두도 못 냈던 카오산 로드 밤 거리를 거닐고, 딸랏롯파이2 야시장에 가서 그 유명하다는 해산물 요리를 먹었다. 방콕 디자인 센터에 가서 책을 보고, 조용한 북카페에 앉아 글을 쓰기도 했다. 아이는 고맙게도 유모차에서 잘 자줬다.
물론 아이가 없는 것처럼 여행할 수는 없었다. 카오산 로드는 혼을 쏙 빼놓는 호객행위에 질려서 10분 만에 탈출했고, 야시장은 오후 5시쯤 가서 후딱 둘러본 다음 사람 많아지는 시간에 서둘러 밖으로 나왔다. 아이와 함께 여행을 다니면 남들과는 다른 시간에 남들과는 다른 동선으로 움직여야 한다.
방콕에서 우리 가족이 가장 사랑하는 곳은 호텔 수영장이었다. 방콕은 가성비의 도시다. 방콕에 다녀온 후 홍콩에 갔다가 방콕 두 배 가격에 방콕 절반 만한 호텔방을 마주하고 놀란 적이 있다. 싱가포르는 어떻고.
방콕에서는 1박에 10만원 대 가격으로도 깔끔하고 넓은 방, 친절한 서비스, 맛있는 조식을 즐길 수 있다. 쾌적한 수영장은 덤.
우리는 4박5일간 두 군데의 호텔에 머물면서 매일매일 수영을 했다. 빌딩숲 사이에서 BTS(방콕 지상철)가 지나가는 걸 바라보며 수영하는 건 색다른 경험이었다.
아이는 수영장에서 제일 겁없는 사람이었다. 가격대가 좀 더 높은 두 번째 호텔 수영장에는 0.8~1.8m 깊이의 풀이 있었다. 커다란 수영장 한쪽 끝에서 다른 한쪽 끝으로 갈수록 깊이가 깊어졌다.
다 큰 성인들도 수영장에 있는 기다란 스티로폼 막대를 두르고 둥둥 떠 있는데 아이는 팔튜브를 하고는 1.8m 깊이 풀을 거침없이 혼자 누비고 다녔다. 수영장 밖으로 나갔다 물 속으로 뛰어들었다를 반복했다.
어차피 물 속에 있는 건 똑같은데도 1.2m 구간을 지나가면 나는 자꾸만 위축되고 발버둥 치게 됐다. 물에 빠질까 두려워 다리에 힘이 들어갔다. 무릎이 아팠다.
아이는 이 물의 깊이를 이해하고 있을까. 너무 많이 안다는 건 겁이 많아지는 일일지도 모른다. 자꾸만 주저하고 멈칫하게 되는 일. 1m 깊이 언저리에 서서 나는 아이를 부럽게 바라보았다.
아이가 3살에서 4살이 되는 동안, 나와 남편의 삶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나는 이직을 했고 남편은 이직을 앞두고 있다. 여행을 왔는데 한국에 놓고 온 일들이 자꾸만 떠올랐다. 나는 또 도망치고 싶어졌다.
1년 사이 놀랄 만큼 훌쩍 큰 아이를 보며 생각했다. 내 삶은 어디로 가고 있는 건지 모르겠고 매일매일 지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지만 그래도 아이만큼은 무럭무럭 매일 자라고 있구나, 내가 마냥 의미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는 건 아니구나.
어른이 되니 더 이상 자랄 일이 없어진다. 자라기는커녕 대책없이 퇴보하는 느낌이 들 때가 더 많다. 그러니 어른들은 아이를 낳고 키우며 대리만족을 하는 걸지도 모른다. 그게 참 이기적인 발상이라 할지라도.
다행히 아이만 자란 건 아니었다. 나도 남편도 조금씩 자랐다. 지난해에도 왔던 길을 남편과 함께 유모차를 끌고 걸으며 말했다.
"방콕에서 유모차 끌기 나쁘지 않은데? 작년에는 왜 그렇게 힘들었지?"
"애도 그만큼 컸고 그 사이 우리도 경험이 많이 쌓였으니까."
“나는 우리가 매년 방콕을 찾는 게 우리를 하나로 묶어주는 단합대회 겸 포상휴가 같다는 생각을 한다. 방콕을 여행함으로써 우리는 우리만의 과거를 추억하고 우리만의 현재를 점검하고 우리만의 내일을 약속하려는 게 아닐까. 그동안 우리가 서로를 위해 알게 모르게 애써온 모든 것을 치하하고, 이제껏 잘 지내온 것처럼 앞으로도 잘 지내보자고 서로를 격려하고 응원하는 게 아닐까. 우리가 우리이기를 포기하지 않도록, 우리가 계속 우리일 수 있도록 온기를 불어넣고 활기를 북돋는 게 아닐까. 방콕을 찾는 건 우리에게 그런 의미가 아닐까.” 김병운 <아무튼, 방콕> p.138
방콕 여행 마지막 날, 쨍하게 맑은 하늘 아래 수영장에 몸을 담그니 몸이 적당히 따뜻해지면서 이내 시원해졌다.
햇살은 뜨겁게 내리쬐고 아이는 파란 수영복을 입고 남편과 장난을 치며 놀았다. 경쾌한 물소리와 아이의 웃음소리가 귀에 울려 퍼졌다. 우리가 사랑하는 방콕의 여름.
다음번 방콕에 올 때 아이는, 또 나는 얼마나 또 자라있을까. 우리는 그렇게 우리만의 “단합대회 겸 포상휴가”를 찐하게 보냈다.
2019년 다녀온 여행에 대한 기록입니다. 이 글은 ‘마더티브’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