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고살롱 시즌3 모집이 시작됐다. 나는 이 글을 제주에 있는 한 에어비앤비에서 쓰고 있다(마무리는 서울에서 ㅎㅎㅎ).
3개월 전에도 나는 제주에 있었다. 창고살롱 시즌2가 마무리될 때쯤이었다. 보름간의 휴가를 마치고 서울에 돌아간 후 첫 줌 회의. 창고살롱을 함께 운영하는 공동 창업자들에게 말했다.
생각보다 번아웃이 더 심각한 것 같다고,
아무래도 조금 쉬어가야 할 것 같다고.
안타까움 반, 당황스러움 반. 모니터 너머 나를 바라보던 두 사람의 눈빛이 생생하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쉬고 싶다고 쉴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내가 울면서 상태를 고백하던 날, 혜영님의 폭탄선언이 있었다. 남편의 갑작스러운 해외 발령으로 2년간 가족과 함께 베트남에 가야 한다고.
충격이 그리 크지는 않았다. 이미 우리는 100% 온라인, 100% 유연/재택근무 체제로 일하고 있었다. 출국 준비와 입국 후 적응 과정에서 공백이 있기는 하겠지만 그 후에는 괜찮지 않을까. 이미 나는 몸과 마음이 망가진 상태였다. 이 상황에서 폭탄 하나쯤 더 받아 든다고 해서 크게 나빠질 것도 좋아질 것도 없었다. 그냥 상황에 나를 맡기기로 했다.
밤 10시에 시작하는 멤버십 커뮤니티를 운영한다는 건 남들이 일할 때도 일하고 남들이 쉴 때도 일해야 한다는 걸 뜻한다. 창고살롱이 없었던 3개월. 밤 시간을 온전히 가족과 함께 보낼 수 있어서, 무엇보다 밤에 푹 잘 수 있어서 좋았다. 이게 사람 사는 거지 싶었다. 8월부터는 기획을 준비해야 하는데 좀처럼 에너지가 생기지 않았다. 나는 두려웠던 것 같다. 또다시 너무 잘하고 싶어질까 봐. 또다시 나를 갈아 넣게 될까 봐. 그러다 결국 나가떨어지게 될까 봐.
시즌3 주제는 진작부터 정해졌다. ‘멈추면, 알게 되는 것들’.
번아웃, 건강 문제, 임신, 출산, 가족 돌봄… 창고살롱에는 일과 삶의 변곡점에서 다음 방향을 고민하는 3040 여성들이 많이 모인다. 공통점은 다들 참 열심히 살아왔다는 것. 그리고 하고 싶은 게 참 많다는 것. 한 멤버는 말했다. 다른 곳에서는 내가 무슨 일을 벌이려고 하면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는데 창고살롱에서는 다들 해보라고 응원한다고.
으쌰 으쌰. 하고 싶은 것도 할 수 있는 것도 많다 보니 어느 순간 다들 무리하고 있는 게 보였다. 멤버들은 일주일에 한 번 있는 정규 살롱 이외에도 소모임 살롱에 몇 개씩 참여하고, 창고살롱 밖에서 다른 일을 또 벌였다. 일상을 성실히 살고 있는 한 멤버가 “창고살롱에 오면 내 자신이 나태하게 느껴진다”고 말하는데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미 레퍼런서 멤버들은 충분히 열심히, 잘 살고 있었다. 지속가능한 일과 삶을 위해 필요한 건 뭔가를 더하는 게 아니라 '잠시 멈춤'이었다.
멈춤은 살롱지기들에게도 필요했다. 시즌2를 진행하면서 살롱지기들 모두 크고 작게 건강 위험 신호가 왔다. 혜영님의 출국 소식을 들었을 때 충격이 그리 크지 않았던 건 어쩌면 이 멈춤이 또 다른 변화의 기회가 될 거라는 기대감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지금처럼 일하는 게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걸 모두 알고 있었으니까.
주제는 정했고 이제 프로그램과 세부 디테일을 짜야할 차례. 또다시 완벽하게 잘해야 할 것 같은 마음이 피어올랐다. 그럴수록 자꾸만 마음이 붕 떴다. 그때 창고살롱 프리시즌부터 시즌1, 2를 함께 해준 지영님을 만났다. 시즌2에서 ‘9번의 이직, 1번의 창업’이라는 제목으로 레퍼런서 살롱 발표를 하기도 했던 지영님은 최근 또 한 번의 퇴사를 하고 그동안 취미로 했던 미술 전시회를 준비하고 있었다. 전시 장소는 창고살롱 시즌1,2 멤버인 두란님이 운영하는 ‘고마워서 그래’ 오프라인 매장. 정말 못 말리는 레퍼런서 멤버들이다.
지영님은 말했다. 살롱지기들이 모든 걸 다 하려 하지 말고 최대한 레퍼런서 멤버들의 도움을 받으라고. 시즌3에서 뭔가를 획기적으로 바꾸고 시도하려 하지 말고, 할 수 있는 만큼만 조금씩 바꾸며 실험을 해보라고. 지영님의 이야기를 듣는데 그제야 현실에 발을 딛는 기분이 들었다. 내가 또 너무 욕심을 내고 있었구나. 미팅 후, 인성님과 시즌3 목표를 정했다.
-도움을 받자
-공력을 줄이자
그 후로는 일사천리였다. 스토리 살롱 작품을 정하고, 레퍼런서 살롱 연사 섭외를 시작했다.
-더 많이, 더 완벽하게 일하려다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건강 문제 때문에 나를 살리는 작은 습관을 하나하나 만들어가기 시작한 찬이님
-9개월의 백수 기간 동안 50개의 이력서를 쓰고 10번의 최종 면접을 보면서도 자기 주도권과 여유를 잃지 않기 위해 노력했던 지희님
-하버드 교육대학원을 졸업할 때까지 TO-DO로 가득 찬 삶을 살다 이제는 매일 아침 글을 쓰며 질문하는 삶을 살고 있는 현직 전업주부 윤승님
-좋아하는 일을 열심히, 잘하기 위해 창업을 했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번아웃을 겪은 후 나의 욕망을 정확하게 들여다보게 된 나.
이렇게 4명의 여성이 레퍼런서 살롱에서 각기 다른 ‘멈춤’의 경험과 의미를 들려줄 예정이다.
줌으로 진행한 사전 인터뷰 과정은 그 자체로 치유의 시간이었다. 시즌1 레퍼런서 멤버였다가 시즌3에 다시 합류하게 된 지희님은 말했다. 지난해 겨울, 퇴사하자마자 창고살롱과 함께 3개월을 보내면서 ‘창고살롱에서 만난 언니들처럼만 살아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창고살롱에서의 경험 덕분에 백수 생활을 조급해하지 않고 잘 보낼 수 있었다고. 시즌2 '공식 울보'였던 찬이님은 창고살롱이었기에 자신의 취약함을 마음껏 드러낼 수 있었다고 말했고, 미국에 있는 윤승님은 사전 미팅을 앞두고 구글 문서 한 가득 이야깃거리를 정리해 왔다. 다들 어찌나 풍성한 서사를 가지고 있는지. 레퍼런서 살롱을 4번밖에 할 수 없는 게 아쉬웠다.
이번 시즌에서는 멤버들이 주도하는 소모임 살롱을 대폭 확대했다. 서사 공유, 책모임, 워크숍, 리추얼… 시즌1,2에 참여했거나 시즌3에 참여 예정인 레퍼런서 멤버들이 직접 진행하는 소모임 살롱 라인업을 보는데 '밥을 안 먹어도 배부르다'는 말이 뭔지 알 것 같았다.
사실 어른이 된 후에는 하고 싶다는 마음만으로 뭔가를 시도해 보는 게 쉽지 않다. 성과를 내야 할 것만 같고 어설프면 안 될 것 같다. 이때 필요한 건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해 볼 수 있도록 찔러주는 동료다.
망하면 어때. 못 하면 어때.
여기서는 다 괜찮아. 한번 해보자.
창고살롱에서는 레퍼런서 멤버들이 소모임 살롱을 통해 자신의 경험과 취향을 공유하고, 가능성을 실험해 볼 수 있도록 적극 독려한다.
신기한 건 이거 한번 해보면 어떻겠냐고 쿡쿡 찔렀을 때 (피치 못할 사정을 제외하고는) 안 하겠다는 멤버는 거의 없었다는 것. 찬이님 레퍼런서 살롱 제목처럼 필요한 건 이미 다 우리 안에 있다. 살롱지기들의 역할은 기획을 좀 더 뾰족하게 다듬고 할 수 있다고, 해보라고 자신감을 불어넣는 것뿐이다.
참고로, 살롱지기들이 현실 감각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준 지영님은 시즌1,2 레퍼런서 은애님과 함께 ‘당신의 해시태그’라는 제목의 소모임 살롱을 워크숍 형태로 진행한다. ‘프로 일 고민러’ 두 사람의 콜라보가 궁금하다.
기획하고 진행하는 멤버의 수고를 고려해 소모임 살롱은 멤버십 비용 이외에 1인당 최소 1천 원~2만 원의 비용을 책정한다. 처음에는 멤버들에게 또 다른 부담이 되지 않을까 했는데 오히려 일방적인 재능기부와 노쇼를 막을 수 있어서 좋았다는 반응이 많았다. 이렇게 퀄리티 높은 소모임을 이 가격 내고 참여해도 되느냐는 목소리도 있었다. 소모임 살롱을 통해 자신만의 콘텐츠를 실험해 본 레퍼런서 멤버는 살롱IN살롱을 통해 외부 오픈 세션을 진행할 수도 있다(글쓰기 살롱을 비롯해 새로워진 살롱IN살롱은 시즌3 시작 후 모집 예정이다).
창고살롱 시즌1 멤버 가운데 시즌2도 함께 한 멤버는 60% 가까이 된다. 홍보 계획을 세우면서 시즌 1,2에는 창고살롱이 어떤 곳인지 알리는 데 집중했다면 시즌3에는 레퍼런서 멤버들의 서사를 더 많이 담으려 했다. 창고살롱에서는 레퍼런서 멤버 한 명 한 명이 주인공이다.
여기까지 써 놓고 보니 세 명의 살롱지기들이 해야 할 일은 정말 그리 많지 않을 것 같다. 레퍼런서 멤버들이 창고살롱 안에서 진솔하게 대화하고 뭐든 실험해 볼 수 있도록 신나게 판을 깔아야지.
아, 그리고 시즌3부터 창고살롱 정규 살롱은 밤 9시에 시작된다. 우리의 숙면은 소중하니까. 다시 보기 영상도 제공 예정.
자세한 시즌3 프로그램이 궁금하다면? 아래 클릭. 10월 10일까지 가입 가능하다.
*레퍼런서 멤버 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