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키운 여자들] <우리들> 속 선이와 지아
초등학교 운동장. 두 명의 아이가 자신의 팀에 들어갈 친구의 이름을 차례로 호명한다. 순서를 기다리는 아이들 사이로 선(최수인)이의 얼굴이 클로즈업된다. 똑단발 머리, 말간 얼굴. 이름이 나올 때마다 기대했다가 이내 실망했다가 끝내 자신의 이름이 불리지 않자 애써 체념하는 눈빛. 피구가 시작되자 선이는 금을 밟았다는 이유로 곧바로 아웃된다. 금을 안 밟았다 말해 보지만 아무도 귀담아 들어주지 않는다.
끊임없이 눈치를 살피면서도 아무렇지 않은 척 보이려 노력하는 눈. 나는 저 눈빛을 너무나 잘 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왕따를 당했다. 교과서를 소리 내어 읽을 때 내 목소리가 가식적이라 했던가. 잘난 척하는 것 같아 재수 없다 했던가. 그러다 제주도에서 한 친구가 전학을 왔다. 저 친구와 꼭 친해져야겠다 생각했다. 내가 누구인지 잘 모르는 친구와. 그럼 새롭게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영화 <우리들>의 11살 선이도 지아를 보며 비슷한 생각을 했을까. 방학식 날 전학 온 지아(설혜인). 선이와 지아는 방학 기간 동안 서로의 집을 오가며 단짝 친구가 된다. 함께 그림 그리고, 방방이 타고, 놀이터에서 놀고, 볶음밥 만들어 먹고, 손톱에 빨간 봉숭아 물을 들인다. 선이는 이 방학이 영영 끝나지 않았으면 싶다.
자신을 따돌리는 보라(이서연)가 지아와 같은 학원에 다닌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 선이는 세상이 끝나버린 것 같은 얼굴이 된다. 2학기 개학 날 선이네 반에 정식으로 전학 온 지아는 갑자기 선이를 모른 척한다. 심지어 둘만 알고 있는 비밀을 보라에게 알려주며 선이를 따돌리는 데 동참한다.
지아에게도 사정은 있다. 부모님이 이혼했다는 이유로 이전 학교에서 심하게 따돌림당했던 지아는 선이와 친구라는 이유로 또다시 왕따가 될까 두렵다. 약육강식. 지아는 보라와 친구가 되기 위해 선이를 버린다.
애들 일 있을 게 뭐 있어. 학교 가고 공부하고 친구들하고 놀고 그럼 되는 거지.
선이 아빠의 대사와 달리 아이들의 세계는 매일이 일이고 매일이 전쟁이다. 어제의 친구는 오늘의 적이 되고, 내가 살아남기 위해 친구의 약점을 공격해야 한다.
아이들의 세계는 투명해서 더욱 잔인하다. 어른들이라면 사회적 체면 때문에 뒤에서 몰래 할 말과 행동을 아이들은 앞에서 대놓고 한다. <우리들>은 아이들, 특히 여자 아이들 사이의 미묘한 공기와 감정 변화, 말의 뉘앙스를 세밀하게 포착한다. 그저 초등학생의 일상을 그렸을 뿐인데 보는 내내 그토록 공포스러울 수 없다. 아는 맛이 더 무섭다.
▲ 지아(왼쪽)와 선이(오른쪽). 선이는 이 방학이 영영 끝나지 않았으면 싶다. ⓒ (주)엣나인필름
4학년 이후 왕따를 당하지 않을 만한 아이가 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공부를 열심히 했지만 아는 척하지 않았고, 책을 읽을 때는 최대한 목소리를 낮게 깔았고, 실없는 사람처럼 많이 웃었다. 그렇다고 멍청하거나 우습게 보이지 않으려 애썼다. 제주도에서 전학 온 친구를 비롯해 단짝이라 부를 수 있는 친구들이 생겼고 친구가 되고 싶다며 다가오는 아이들도 나타났다.
늘 불안했다. 쉬는 시간, 점심시간, 과학실이나 미술실로 이동할 때, 체육복을 갈아 입고 운동장에 갈 때, 새 학기 시작하는 날, 소풍 가는 날. 언제라도 다시 혼자가 될까 겁났다. 내 몸 어딘가 '왕따당했던 애'라는 낙인이 찍혀 있을 것 같았다. 잿빛 원피스를 입은 신데렐라처럼, 원래의 내 모습을 들키는 순간 사랑받지 못할까 두려웠다.
반에서 가장 공부 잘하고 운동 잘하는 보라는 자기보다 공부를 잘하는 전학생 지아가 싫다. 이제 보라는 지아를 따돌린다. 자기 방어 기제, 질투, 오해. 영화 속에서 아이들이 누군가를 따돌리는 이유는 우스울 만큼 사소하다. 그럼 선이는? 영화를 보면서 나도 모르게 선이가 왕따당하는 이유를 찾고 있었다. 촌스러워서, 가난해서, 휴대폰이 없어서, 공부를 잘 못 해서, 운동을 잘 못 해서, 눈치가 없어서, 늘 동생을 데리고 다녀서.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누구를 따돌려도 괜찮은 이유가 될 수 없었다. 따돌림은 폭력이다. 왕따를 당할 만한 아이는 없다. 영화를 보면서 알게 됐다. 나는 내가 왕따 당할 만해서 왕따 당했다고 믿고 있었다는 걸. 그때의 나를 오랫동안 붙들고 미워하고 부끄러워하고 있었다는 걸. 선이의 말간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기 괴로웠다.
흔들리는 눈빛으로 말을 아끼던 선이는 이제 한 대 맞으면 한 대 때리는 사람이 되기로 한다. 봉숭아 물이 옅어진 손톱에 매니큐어를 덧칠하고, 지아가 자신에게 그랬던 것처럼 지아의 치부를 반 아이들에게 폭로한다. 한 대 맞으면 한 대 때릴수록 선이도 지아도 더욱 외로워진다.
니가 먼저 나한테 달라붙었잖아. 왕따 주제에. 하여튼 왕따 같은 짓만 골라서 해요.(지아)
너도 예전 학교에서 아주 심한 왕따였다며. 거짓말하는 애를 누가 좋아해. 왕따 당할 만하네.(선이)
왕따 피해자였던 두 사람은 왕따 포비아를 가감 없이 드러내며 따돌림 방조자이자 가해자가 된다. 혐오는 공포의 다른 얼굴이다. 그토록 두려워하던 존재가 되어버린 아이들의 심정은 어땠을까. 지금의 기억은 아이들에게 어떤 상처로 남을까. 아프고 시렸다.
▲ 자기 방어 기제, 오해, 질투… 영화 속에서 아이들이 누군가를 따돌리는 건 대단한 이유가 아니다. ⓒ (주)엣나인필름
친구 관계가 이전만큼 어렵지 않아진 건 이 관계가 내 삶의 모든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되면서부터였다. 이제 나는 모든 사람이 나를 사랑해 줄 수 없다는 것도, 내가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을 필요가 없다는 걸 안다. 나를 지키기 위해 기꺼이 미움받을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도.
그럼에도 여전히 카톡 메시지 하나, 인스타 댓글 하나에서 행간을 읽으며 끊임없이 타인의 시선을 의식한다. 소외되거나 미움받는 느낌이 들 때면 어김없이 4학년 교실로 돌아간다. 어른이 되었다 믿었는데 11살의 나는 불쑥불쑥 서른여덟 살의 나를 옴짝달싹 못 하게 만든다.
영화에는 피구하는 장면이 세 번 나온다. 마지막 피구 장면. 지아가 금을 밟았다며 나가라고 말하는 아이들에게 선이는 명확하고 단호하게 말한다.
한지아 금 안 밟았어! 내가 다 봤어!
자전적 경험을 바탕으로 영화를 만들었다는 윤가은 감독은 "내가 어렸을 때 성취하지 못했던 일종의 판타지, 마음은 먹었지만 내지 못했던 용기를 내어 한 발짝 나아가는 선택"을 선이가 내렸으면 하는 마음으로 이 장면을 만들었다고 한다.
상처를 겪으면서 어른이 된다는 이야기를 의심하는 편이다. 상처는 상처로 남는다. 그걸 가지고 어떻게 살 것인가가 문제다. 선이는 상처가 있지만 그 상처를 딛고 뭔가 새로운 행동을 하길 바랐다. - 윤가은 감독 <시사IN> 인터뷰
지아는 곧바로 공을 맞고 아웃된다. 선이 홀로 서 있던 선 밖에는 이제 선이와 지아 두 사람이 어색하게 함께 서 있다. 서로에게 큰 상처를 준 두 사람은 다시 친구가 될 수 있을까. 몰래 갖다 버리고 싶었던 11살 나를 다시 만나고 싶어졌다. 선이와 지아 덕분에.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