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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밀밀 Dec 06. 2021

엄마, 한 가지 마음만 생길 땐 어떡해?

마실 때문에 아이와 싸운 날

“오늘은 진짜 최악의 날이야!” 


하원 시간, 아이가 굳은 표정으로 나온다. 눈도 안 마주치고 씩씩대며 현관으로 뛰쳐나간다. 


이유는 뻔하다. 다른 친구들이 마실(공동육아 어린이집에서는 하원 후 혹은 주말에 친구 집에 놀러 가는 것을 마실이라고 부른다)한다고 해서. 아이는 눈치를 많이 보는 편이다. 분위기를 늘 살핀다고 해야 할까. ‘또바기 특파원’이라 부를 정도로 친구들 사이의 관계는 물론이고 선생님들끼리 하는 이야기까지 유심히 관찰해 집에 와서 미주알고주알 전해준다.


“나도 OO이처럼 인기 많았으면 좋겠다.” 

“내가 먼저 놀자고 안 하면 친구들이 먼저 놀자고 안 해.” 


아이는 당연히 친구들 마실 소식에도 민감하다. “코로나 시대에 왜 마실을 해!” 마실 소문 내면 다른 친구들이 속상하다고 알려준 후로는 마실을 공개적으로 하는 친구들에 대한 분노까지 커졌다. 이제는 하원 시간에 아이 표정이 안 좋으면 누군가 또 마실한다는 소리를 들었구나 바로 안다. 


“엄마랑 놀면 재미없는데. 아, 나도 마실하고 싶다.”

“날날아, 너도 이번 주에 마실했잖아. 모든 친구들 마실에 같이 갈 수는 없는 거야.” 


타일러 봐도 아이의 마음은 쉽게 누그러지지 않는다. 문제는 내게 인내심이 별로 없다는 것. 온종일 신경을 유난히 많이 썼던 날이라 그랬을까. 재택근무 끝나자마자 어린이집으로 출근했는데 아이가 또 씩씩대고 있다. 신발장 앞에 서 있는데 마실을 가기로 한 두 친구도, 데리러 가기로 한 아마의 표정도 난처해 보였다. 울면서 뛰어가는 아이를 보는데 참을 수 없이 화가 났다. 대체 그놈의 마실 때문에 난리 치는 게 몇 번째인지. 



그놈의 마실 때문에…


그날은 아이에게 불같이 화를 냈다. 어떻게 모든 마실에 다 갈 수 있냐고. 너도 마실 가면서 다른 친구들 마실에 왜 맨날 화를 내냐고. 이렇게 마실 때문에 계속 화내면 앞으로 마실 절대 안 할 거라고. 


아이가 친구 관계를 너무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것도, 마실 때문에 속상한 마음을 표출하는 과정에서 다른 사람들이 불편해지는 상황도 싫었다. 아이의 예민함은 나와 남편을 너무 많이 닮았다. 누군가에게 피해 주는 걸 끔찍하게 싫어하는 성격은 아이의 감정보다는 다른 사람들이 겪었을 불편함, 궁극적으로는 나의 난처함을 먼저 생각하게 만들었다. 


2차 백신 접종을 맞고 송장처럼 누워있던 남편은 눈치를 보며 일어나 나와 아이를 달랬다. “엄마랑 서로 미안하다고 말하고 화해해”하는데 도저히 마음이 안 풀렸다. 아이가 나한테 뭘 미안해해야 할까. 나는 왜 이렇게 화가 나는 걸까.


며칠 후, 담임 교사와 면담을 했다. 교사는 말했다. 아이 잘 키우는 게 중요하냐고. 아이한테 이기는 게 중요하냐고. 옳고 그른 것을 따지려 하지 말고 감정적으로 먼저 공감해 주라고. 마실 때문에 속상하다고 하면 무조건 아이 편들어주면서 마음부터 읽어주라고. 안 그럼 나중에 엄마한테 아예 이야기 안 하는 날이 올 수도 있다고. 



“나는 여러 마음이 있어”


잠들기 전 아이와 침대에 나란히 누워 이야기를 나눴다. 


"친구들이 마실 한다 그러면 속상해?"

"응. 속상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해. 나도 마실하고 싶어져. 참고 싶은데 잘 못 참겠어."

"맞아. 속상하지. 속상할 수 있어. 근데 모든 친구들이랑 마실할 수는 없잖아. 어쩔 수 없을 때도 있어."

"근데… 내 머릿속에 마실하고 싶은 마음만 있는 건 아니야. 참고 싶은 마음도 있어. 나는 여러 마음이 있어." 

"맞아. 사람은 여러 마음이 있어." 


질투하는 마음, 비교하는 마음, 속상한 마음, 서운한 마음, 인정받고 싶은 마음. 아이에게 있는 수많은 마음이 내게도 똑같이 있다. 아이와 내가 다른 점이 있다면 마음을 숨기고 괜찮은 척, 쿨한 척하는 법을 알게 됐다는 것 정도일까. 세상에 내 마음대로 안 되는 일, 어쩔 수 없는 일이 훨씬 많다는 걸. 체념이 나를 지키는 법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서른여덟 살 내게도 어려운 일을 여섯 살 아이가 무슨 수로 알까. 


옆에 누워 있던 아이가 물었다.


“근데 엄마, 한 가지 마음만 생길 때는 어떡해?”

“한 가지 마음이 생길 때도 있지. 엄마도 그럴 때 있어.”


여전히 아이는 마실 소식을 들을 때마다 분노하고 부러워한다. 아이가 마실하는 다른 친구 때문에 속상하다고 할 때면 있는 힘껏 그 친구를 함께 욕해준다(미안해…). 


“진짜 나쁘다! 엄마가 찾아가서 혼내줄까?”


그럼 아이는 잠시 생각하다 말한다. 


“아니… 그렇게는 하지 마. 내가 이해해 볼게.”



이 글은 합정동 공동육아 '또바기 어린이집' 소식지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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