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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밀밀 Jun 10. 2022

잊지 마 운전은 눈치야

도로 위의 호구와 흉기 사이에서

아침에 일어났는데 등에 묵직하게 담이 걸렸다. 처박아둔 폼롤러를 꺼내 급히 등 스트레칭을 했다. 등이 뻐근하다. 회사 다닐 때 몇 달에 한 번씩 꼭 목, 어깨, 등 쪽에 담이 걸렸다. 그런데 지금 나는 백순데? 백수가 왜 등에 담이 걸렸을까? 이게 다 운전 때문이다.


이번 황금연휴는 내 초보 운전 역사에 길이길이 남을 며칠이었다. 4일에는 서울에서 양평까지 3시간, 6일에는 원주에서 서울까지 3시간을 운전했다. 하도 긴장해서 미어캣 자세로 운전대를 잡고 있었더니 근육이 놀란 모양이다.



2022. 6. 4 서울에서 양평까지


공동육아 어린이집 모꼬지를 갔다. 코로나 때문에 2년 만에 열린 모꼬지였다. 아침 텃밭에 들러 상추와 당근을 수확해 양평으로 향했다. 오전 8시 반쯤 출발했는데 황금연휴 첫날이라 길이 엄청나게 막혔다. 가도 가도 내비게이션 시간이 안 줄어. 서울 시내 벗어나는 데만 한참 걸렸다.


길이 막힐 때는 앞차와 간격을 적절히 조절하는 게 어렵다. 남편이 오늘은 엑셀만 적절히 밟으면서 간격 맞추는 연습을 해보자 그랬는데 엑셀은 개뿔, 브레이크를 얼마나 많이 밟았는지 종아리가 아팠다.


그래도 이날 끼어들기 연습만큼은 제대로 했다. 지금까지는 옆 차선에 뒤에서 오는 차가 안 보여야 마음 편히 끼어들 수 있었다. 끼어들기를 못 했다는 말이다. 내 차선과 옆 차선도 헷갈리고 뒤차가 어느 정도 왔는지 가늠도 안 되고. 끼어들기가 두려웠다. 자꾸 주저하게 됐다.


하지만 막히는 도로에서는 여기서 못 끼어들면 몇십 분을 더 가야 했다. ‘무조건 끼어들어야 한다’는 의지가 생겼다. 슬금슬금 눈치 보면서 깜빡이를 켜고 타이밍을 살펴 자동차 머리를 밀고 들어갔다. 들어갈 때는 과감하게! 끼어들기를 몇 번 해보니 내 앞에 끼어드는 차에 관대해졌다. 평소에 남편이 끼어드는 차 다 받아주는 것 보고 ‘도로 위의 호구’라고 놀렸는데 어떤 심정인지 알 것 같았다. ‘그냥 끼워주자. 어려운 일도 아닌데’ 하면서 끼워주는데 뒤에서 빵!!! 남편이 이렇게 계속 끼워주는 것도 교통 흐름을 방해할 수 있다고 했다. 잊지 말자. 운전은 눈치다.


3시간이나 운전할 생각은 없었는데 중간에 멈추면 시간이 더 늘어날 것 같았다. 다행히 아이가 3시간 내내 뒤에서 자줬다.



2022. 6. 6 원주에서 서울까지


원주 시가에 갔다가 서울에 오는 길. 내가 운전을 하겠다고 했다. 첫 밤 운전이었다. 밤이라 차가 별로 없을 테니 괜찮지 않을까 했는데 웬걸, 깜깜한 밤에 운전하니 더 무서웠다. 앞차 빨간 불빛이 나를 노려보는 것 같았다. 밤이라 얇은 점퍼를 입고 탔는데 땀이 뻘뻘 났다. 평소 추위를 잘 타는 편이라 에어컨 바람을 싫어하는데 찬바람이 간절했다. 남편이 왜 그리 운전할 때 에어컨을 트는지 알게 됐다. 또다시 역지사지의 순간.


차가 많을 때는 많아서 긴장되더니 차가 없으니 차들이 아주 쌩쌩 달렸다. 천천히 달리니 뒤에서 빵. 남편이 너무 천천히 달리는 것도 교통의 흐름을 방해할 수 있다고 했다. 명심하자. 운전은 물 흐르듯이. 내가 초보라 그런가. 빠르게 달리고 있으면 꼭 실수를 할 것만 같아서 나도 모르게 브레이크로 발이 간다. 내가 너무 지레 겁을 먹는 걸까. 삐끗할 것만 같아 불안하다.


이제 끼어들어야 할 시간. 양평에서 끼어들기 마스터했다고 생각했는데 빠르게 달리는 차 사이로 끼어들기는 또 다르네? 깜깜해서 옆 차선 뒤차와의 거리를 더 모르겠고, 너무 빨리 달리니 무섭고, 이놈의 점퍼는 왜 입고 온 거야(초보는 운전 도중 옷을 못 벗습니다…)


한 번은 오른쪽 차선에 끼어들어야 하는데 내 기준으로 오른쪽 앞쪽 차량과 뒤쪽 차량 거리가 꽤 멀었다. 앞쪽 차량은 나보다 저 멀리 앞에 뒤쪽 차량은 나보다 조금 뒤에 있었다. 남편이 “밟으면서 끼어들어”라고 해서 세게 밟으면서 끼어들었는데 뒤차가 빵!!! 알고 보니 남편은 속도를 내면서 길게 비스듬히 옆으로 끼어들라고 한 건데 나는 액셀을 밟으면서 옆 차 바로 앞쪽으로 꺾어서 들어간 거였다(죄송합니다…). 깜짝 놀라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나는 너무 놀라서 “네가 밟으라 그래서 밟았잖아!!!”라고 남편에게 소리를 질렀고, 남편은 “잘못 말했다”고 미안해하면서도 “끼어들기할 때 휙 꺾지 말고 비스듬히 들어가라고 내가 몇 번이나 말했어!”라고 응수했다. 한동안 차에는 정적이 흘렀다.


그 후에도 몇 번이나 죽을 고비가 있었다. 도로를 잘못 타서 내부 순환로를 처음 가봤는데 차선이 왜 이렇게 좁아? 회전목마도 아니고 왜 이렇게 뺑글뺑글 돌아? 멀미나게 달리는데 뒤차가 계속 클락션을 울렸다. 남편이 말했다.


“네가 차선 계속 못 지키니까 술 취한 줄 알고 빵 하는 거야. 클락션이 꼭 항의의 표시로만 울리는 게 아니라 안전을 위해서 울리기도 해.”


아… 내가 말로만 듣던 그 도로 위의 흉기인가. 그냥 운전대를 버리고 도망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내부 순환로는 왜 이렇게 길어.


드디어  근처에 왔다.  도로에 있다 동네로 오니 처음 운전할 때는 그렇게 무서웠던 길이 아늑하게 느껴졌다. 이래서 사람은  물에서 놀아야 하는구나. , 나는 놀지는 못했지. 주차는 남편에게 맡기고 집에 가자마자 바로 뻗었다. 밤새 뒤에서 누가 쫓아오는 꿈을 꿨다.


(도로 위에서 저 때문에 놀라신 분들 죄송합니다무럭무럭 자라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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