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포구청을 향해서
5월 13일 금요일
여권 찾으러 마포구청까지 갔다가 끼어들기를 못해서 집으로 돌아왔다. 3차선으로 들어가서 우회전해야 하는데 3차선에 못 들어감 ㅠㅠ 유턴해서 집으로 갔다가(시작점까지 가야 함 ㅎㅎㅎ) 재도전하려 했는데 비보호 좌회전 구간에서 타이밍 놓쳐서 뒤에서 트럭이 빵. 에어컨을 못 켜서 더운데 문 열면 옆에 차 소리 들려서 무섭고. 땀이 뻘뻘. 내가 안쓰러워 보였는지 다음 신호에서는 맞은편 차가 먼저 가라고 양보해줬다. 오늘은 집으로 가야지.
5월 14일 토요일
남편과 아이가 공동육아 어린이집 아빠 캠핑 가는 날. 캠핑장 가기 전, 텃밭에 들러서 상추를 따가기로 했다. 텃밭 갈 때 내가 운전하겠다고 했다. 강변북로 진입까지는 괜찮았는데 쌩쌩 달리는 차 사이에서 끼어들기는 더 어렵잖아 ㅠㅠ고장 난 아바타처럼 남편이 들어가라고 신호 보내주면 들어가고 그마저도 놓치고. 멘탈이 탈탈 털렸다. 가족끼리 운전 가르쳐 주는 거 아니라는데 그래도 남편은 차분하게 잘 알려주는 편이다(점점 짜증이 섞이는 것 같기는 하지만...). 남편이랑 아이는 캠핑 가고 혼자 상암에서 집으로 오는 길. 따릉이를 타고 가면서 마포구청 가는 길을 시뮬레이션했다. 이럴 때 보면 나 정말 집요하다.
그날 저녁 엄마들 모임에서도 운전 이야기를 했다. 지금은 능숙하게 운전을 잘한다고 생각했던 운전 선배들의 실수담을 들으면서 처음부터 운전을 잘하는 사람은 당연히 없다는 걸 다시 깨달았다. 3차선 끼어들기가 어려웠다고 하니까 엄마들은 집에 있는 블록을 들고 와서는 함께 작전을 세워줬다.
“내가 여기서 끼어들어서 가겠다는 절박함을 보여주는 거예요. 뒤차에 신호를 보내는 거죠. 정 안 되겠다 싶으면 창밖으로 나 좀 먼저 가겠다고 손을 내밀어요. 그럼 웬만하면 비켜줘요. 세상이 생각만큼 그렇게 각박하지 않더라고요. 다들 초보가 어땠는지 아니까.”
공동육아 어린이집을 다니면서 제일 좋은 점은 ‘그럴 수도 있다’고 말해주는 사람들이 곁에 있다는 것이다. 아이에게도, 어른에게도 올챙이 시절을 기억하며 올챙이를 응원해주는 사람들이 있어서 든든하다. 합정동 또바기 어린이집 상시 모집 중!
5월 16일 월요일
드디어 결전의 날. 오늘은 마포구청 간다! 머릿속으로 계속 시뮬레이션을 해보며 심호흡 후후. 오늘은 여권 받고 오자! 언덕 넘어 사거리에서 차선 바꾸기는 급할 수 있으니 언덕 올라가기 전에 미리 차선을 바꿔놓기로 작전을 짰다. 진작부터 3차선으로 갈아탔는데 주차된 차량이 있네? ㅋㅋㅋ 황급히 다시 2차선으로 갔다가 3차선으로 이동. 이렇게 천천히 갈 때는 차선 바꾸는 게 오히려 쉽다. 무사히 마포구청 주차장까지 갔다. 아직은 전면주차밖에 못해서 차를 사선으로 박아놓고 업무를 보고 나왔다.
차를 빼서 다시 돌아가야 하는데 후진해서 차 빼기는 안 해봐서;: 몇 번이고 후진했다가 차 돌렸다가 ㅋㅋㅋ 다행히 다른 차 안 긁고 빠져나왔다. 주차장에 차가 많이 없어서 천만다행. 돌아가는 길을 잘 몰라서 걱정했는데 오늘은 그래도 내비를 좀 신경 쓰면서 집까지 왔다. 그전에는 내비에서 하는 소리 하나도 안 들림. 지난번에 망했던 비보호 좌회전도 나름 능숙하게 해서 뿌듯. 겁도 많고 순발력도 없지만 내게는 꾸준함과 집요함이 있다. 매일 조금씩 나아진다는 생각으로 도저언!
5월 17일 화요일
이번에는 남편이 마포구청에 가야 해서 내가!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몇 번 가본 길이라고 자신감이 붙었다. 거침없이 운전하는데 남편이 브레이크 왜 제때 안 밟냐고, 점점 브레이크를 잘 안 밟는 것 같다고 했다. 이렇게 거만해지는 건가. 아직 그럴 실력은 아닌데.
언덕 넘어 사거리로 가면서 어제 헷갈렸던 구간에 대해 질문했다. 사거리에서 신호 받고 직진하는데 오른쪽에서 차들이 들어오면 우리가 먼저야? 저 차가 먼저야?(필기시험 90점 맞았는데 하나도 기억이 안 난다). 남편은 원래는 신호를 받고 직진하는 차량이 먼저지만, 그래도 오른쪽에서 오는 차량이 많이 진입해 있으면 비켜줘도 괜찮은데 내 뒤에 있는 차량 입장에서는 신호 받고 가는데 앞에서 서버리면 교통 흐름이 끊길 수도 있다고 했다. 아, 그래서 어제 뒤에서 빵 한 거구나.
“이게 엄청난 눈치 싸움이야. 도로의 흐름이 물 흐르듯 흘러가도록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판단해야지. 운전을 하다 보면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능력을 키울 수 있는 거야.”
거만한 말투는 영 거슬리지만 남편 말처럼 운전이랑 사회생활이랑 참 비슷하다. 어디에서 리스크가 튀어나올지 모르니 끊임없이 눈치 보며 서로에게 맞춰야 한다. 눈치 많이 보고 민폐 끼치기 싫어하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엄청난 감정 노동이다. 또다시 마포구청 주차장. 이번에는 전면 말고 후진해서 주차를 했다. 여전히 뒤차와의 간격은 어느 정도여야 할지, 핸들을 얼마나 돌려야 할지, 언제 일자로 풀어야 할지 감이 없다. 이것도 연습해야겠지.
무사히 여권을 찾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어제보다 훨씬 덜 긴장됐다. 생명줄처럼 핸들을 잡고 있던 손에 힘이 덜 들어갔다. 남편이 여의도 회사까지 데려다 달라고 해서 “가는 것까지는 할 수 있는데 혼자 돌아오지를 못한다”고 ㅋㅋㅋ 점점 반경을 넓히다 보면 여의도까지 진출할 날도 곧 오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