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퇴사7] 일과 육아의 기쁨과 슬픔
남편이 주말에 출근한 날. 집에 있기 싫다는 아이 손을 잡고 동네를 산책했다. 아직 해가 지기 전이었다. 말이 산책이지 차가 있건 말건 무조건 직진 또 직진하는(feat. 바닥에 드러눕기) 아드님 덕분에 멘탈이 너덜너덜. “날날아, 엄마 손!”“날날아, 위험해!”“날날아, 이러면 엄마 집에 갈 거야!” 몇 번이나 샤우팅 했는지 모른다.
이제 그만 들어가야지 할 때쯤 환하게 불 켜진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통유리창 너머로 슬쩍 들여다보니 20대로 보이는 청년들이 둥글게 모여 열띤 회의를 하고 있었다. 왁자지껄 뜨거운 에너지가 창밖까지 전해지는 것 같았다. 인생의 모든 가능성이 열려있고 뭐든 시도해볼 수 있는 세계. 유리창 너머는 다른 세상 같았다. 나는 아이의 작고 여린 손을 꼭 잡았다.
육아휴직이 끝나고 복직하기 전 사실 많이 고민했다. 회사에 돌아간다면 또다시 퇴사 생각을 하고 있지 않을까. 회사는 여전히 회사일 것이고, 나는 답답하고 화나고 소진될 것이다.
하지만 대안이 없었다. 1년이 넘는 출산휴가와 육아휴직 기간 동안 오직 육아만 했다. 미래에 대한 모색 같은 건 꿈도 못 꿨다. 내가 돌아갈 곳은 회사밖에 없었다. 어떻게든 육아에서, 집에서 탈출하고 싶었다.
육아만 하는 동안 내 자존감은 바닥까지 떨어져 있었다. 모든 게 처음이었고 내 맘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었다. 복직할 때만 해도 돌아갈 곳이 있다는 현실에 감사한 심정이었다.
일과 육아를 함께 하려면 에너지를 안배해야 했다. ‘월급 받는 만큼만 일하자, 너무 열심히 하지 말자’ 다짐했다. 남편은 어땠을까? 아이가 태어났으니 더 열심히 일해야 한다고 다짐했을 것이다.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우리의 마음가짐은 처음부터 달랐다.
복직 초기에는 다시 업무에 적응하는 것만으로 정신없었다. 밤 9시에 아이와 함께 잠이 들었다. 조금 시간이 지나자 일에 대한 욕망이 다시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늘 뭔가를 시도하고 성취하는 데서 삶의 의미를 찾는 사람이었다. 인정욕구도 강했다.
늘 퇴사를 꿈꿨지만 그건 일이 싫어서가 아니었다. 경직된 조직을 벗어나 내가 하고 싶은 일, 잘할 수 있는 일을 제대로 해보고 싶었다. 그렇다고 지금 하고 있는 회사 일도 대충하고 싶지는 않았다.
복직 3개월. 야심차게 새로운 기획을 시작하고 밤잠과 점심시간을 아껴가며 열심히 일했다. 하고 싶은 아이템이 정말 많았다. 잠을 못 자도 피곤하지 않았다. 머릿속에는 온통 일 생각뿐이었다. 오랜만에 살아있는 기분을 느꼈다.
얼마 가지 않아 아이는 독감에 걸렸다. 한동안 출근하지 못했고 내 몸까지 탈이 나면서 결국 구상했던 기획을 대폭 축소해야 했다. 아이와 집안에 갇혀있는데 속상해서 눈물이 났다. 직장맘인 팀장 선배는 너무 급하게 생각하지 말라고 했다. 지금도 충분히 잘 하고 있다고. 아이가 좀 더 크면 괜찮아질 거라고.
임신했을 때 ‘문학이란 무엇인가’라는 강좌를 들은 적이 있었다. 일주일에 한번, 퇴근 후 저녁 시간. 매주 1~2권의 책을 읽고 와서 문학평론가의 수업을 들었다. 번역가와 소설가가 초대 손님으로 온 적도 있다. 시험을 위한 것도 아니고 커리어를 위한 것도 아닌, 어디에도 쓸데없는 그 시간이 참 좋았다.
아이가 태어난 후 가장 그리운 시간을 꼽으라면 저녁 7시 30분. 직장인들이 뭔가를 배울 수 있는 수업이 가장 많이 열리는 시간이다. 아이 저녁 챙겨주고 목욕 시켜주는 시간. 길을 지나가다 듣고 싶은 강좌 포스터가 보이면 아쉬운 마음에 사진을 찍어 놓기도 했다.
엄마가 되자 나는 시간거지가 되었다.
오전 8시~오후 5시 회사 근무
오후 5시 30분 아이 어린이집 하원
오후 9시 아이 취침
내게 주어진 시간은 아이가 잠든 사이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그 시간을 쪼개 책을 읽고 글을 쓰고 기획을 고민했다. 하지만 이내 지치기 시작했다. 아이는 통잠을 자지 않았다. 이앓이, 코감기, 가려움증, 그냥 기분이 안 좋아서. 잠 못 자는 이유도 여러 가지.
아이는 자다 자주 깼고 예민한 나는 같이 깨서 한동안 잠들지 못했다. 수면부족-만성피로 무한반복. 체력이 점점 떨어지면서 아이가 잘 때 같이 잠드는 날이 많아졌다. 다음 날 아침이면 자괴감으로 눈을 떴다.
그나마 이런 일상이라도 반복되면 괜찮았다. 아이가 아프거나 전염병에 걸리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엄마가 되어서도 여전히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은데, 이러다 '엄마'밖에 되지 못하는 건 아닐까 두려웠다.
“일반적으로 예전의 부모들은 아무리 본인이 상황이 힘들더라도 자녀의 모습 앞에서 충만함을 느끼고 이런 말을 하곤 했다. "너를 안 낳았으면 어쩔 뻔했을까 싶어." 자녀를 너무 사랑해서라기보다 2세를 키우는 것만큼의 가치 있는 일이 그리 많지 않다고 여겼기 때문에 자주 등장한 말이리라.
이런 표현이 최근 달라졌다. 많은 부모들이 진지하게 ‘만약 너를 안 낳았으면 내 인생이 어떻게 달라졌을까’를 고민한다. 내가 결혼을 하지 않았다면, 출산하지 않았다면, 둘째는 욕심 부리지 않았다면 자신의 삶이 지금과는 분명 달랐을 것이라 확신한다. 틀린 추론은 아닐 거다. 1인분 부양조차 힘든 사회에서 결혼과 출산은 억울하다고 느낄 만하다. 결혼과 출산에 그리고 육아에 쓰인 돈을 자신에게 투자했다면? 아, 그럼 나는 어떤 사람이 되었을까.” 오찬호, <결혼과 육아의 사회학> p.292
제 몸 하나 건사하며 살아가기 어려운 시대. 오찬호는 <결혼과 육아의 사회학>에서 결혼하고 아이 낳고 사는 게 너무 큰 대가를 감수해야 하는 ‘억울한 일’이 되어버렸다고 말한다. 자기 자신이 중요한 요즘 여성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아이를 낳지 않았다면, 하는 생각. 나도 해봤다. 아이의 존재를 잠시나마 지워보는 상상을. 아이가 없었다면 지금보다 더 많은 것을 공부하고 더 많은 곳을 여행하고 더 많은 것을 경험하며 살 수 있지 않았을까.
즉각적인 성과를 내는 삶에 익숙한 내게, 아이 키우는 일은 그저 똑같이 반복되는 날의 연속처럼 느껴졌다. 신생아 시절에는 특히 더 그랬다. 먹고, 자고, 똥 싸고, 울고, 웃고... 그러다 보면 하루가 다 갔다. 어서 집을 탈출해 사회적 성취감을 느끼고 싶었다.
그 사이 아이는 놀라울 만큼 빨리 자랐다. 단 하루도 같은 날이 없었다. 제 몸 하나 가눌 줄 모르던 핏덩이가 어느새 이렇게 커서 쉴 새 없이 뛰어다니고 말한다. “아빠 좋아, 엄마 좋아, 빠방이 좋아, 다 좋아~” 반달눈 만들며 환하게 웃는다. 저 무해한 웃음. 사과 깎아주니 맛있게 먹으며 “엄마도 머거~” 하나 건넨다.
주방용 집게를 들고 “날날이가 모기 잡을 거야! 모기 잡을 수 있어!” 뛰어다니는 아이. 요즘 유행하는 ‘가성비’로 따진다면 아이 키우는 것만큼 성취감이 큰 일이 또 있을까. 가끔씩 경이롭다. 나처럼 나밖에 모르던 사람이 한 생명을 키워내고 있다는 게.
나는 알고 있다. 이 시간은 다시 오지 않는다는 걸, 순식간에 지나간다는 걸. 언젠가 이 시간을 사무치게 그리워하게 되리라는 걸. 그럼에도 나는 왜 이 시간만으로 만족하지 못하는 걸까.
아이 키우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줄 알았다. 회사 일, 돈 버는 일이 더 큰 일, 중요한 일인 줄 알았다. 어린이집 보육교사의 돌봄 노동이 평가절하 되는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엄마들이 집에서 어떤 보수도 안 받고 해오던 노동이니까.
아이를 낳고서야 알게 됐다. 아이 키우는 일은 결코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며, 아무나 해서도 안 된다는 걸. 육아는 분명 어마어마하게 가치 있는 일이다. 나는 그런 일을 하고 있다.
하지만 육아에서 나는 결코 주어가 될 수 없다. 주어는 늘 아이, 나는 누구누구의 엄마일 뿐이다. 그것도 영원한 조연. 적어도 일에서는 내가 주어가 될 수 있다(이 또한 환상일지도 모르지만). 일도 포기할 수 없는 이유다.
이렇게 중요한 일과 육아를 함께 할 수는 없는 걸까. 퇴사 일주일 전, 나는 많이 지쳐있었고 더 이상 걸을 힘조차 없었다. 광화문 거리를 산책하며 직장맘 선배에게 물었다. 속으로 울음을 삼키며.
“일도 하고 육아도 하고 제가 하고 싶은 일도 하면서 살고 싶어요. 제가 너무 욕심이 많은 걸까요?”
누구도 아빠가 일을 열심히 한다고 해서 욕심이 많다거나 이기적이라고 하지 않는다. 일도 하면서 육아도 열심히 하는 아빠가 있다면 ‘딱하다’, ‘안 됐다’는 시선을 보낼 것이다. 그건 그만큼 아내가 애를 제대로 안 보고 있다는 소리니까.
반면 일과 육아 모두 해내려는 엄마에게는 욕심 많은 여자, 이기적인 여자, 독한 여자라는 꼬리표가 붙는다.
나는 일과 육아가 주는 기쁨과 슬픔, 모두 느끼며 살아가고 싶다. 이게 정말 그렇게 큰 욕심일까.
[엄마의 퇴사] 기자 9년차, 엄마 3년차. 직장맘으로 사는 일상은 매일이 장애물 넘기다. 죽도록 노력하는데 회사에도 아이에게도 늘 미안하기만 하다. 엄마에게 일과 육아 중 하나만 선택할 것을 요구하는 시대. 일도 육아도 적당히 하며 살 수는 없을까? 일하는 엄마로 살면서도 나를 지키고 싶었던 어느 엄마의 퇴사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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