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퇴사8] 왜 남편의 커리어만 저토록 견고한 걸까
아이가 낮잠에 든 사이, 남편은 회사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고 급히 출근했다. 토요일 오후였다 “아빠가 없어졌어.” 잠에서 깬 아이는 서럽게 울었다. “아빠 일하러 갔어. 엄마 있잖아. 엄마랑 놀자.”
아이에게 설명하면서도 스스로 어이가 없었다. 매일 밤 아빠를 찾는 아이에게 하는 말. “아빠 일하러 갔어.” 갑자기 사라진 아빠의 행방을 묻는 아이의 질문에도 “아빠 일하러 갔어.”
대체 무슨 대단한 일을 하길래 남편은 이렇게까지 일하는 걸까. 주말에 또다시 남편을 소환하는 회사는 또 뭐고. 아빠가 지구를 지키러 갔다고 아이에게 거짓말이라도 해야 할까.
매일 저녁 혼자 온전히 아이를 보는 것, 육아노동이 주말까지 이어지는 것. 물론 힘들다. 나를 정말 화나게 하는 건 왜 남편의 커리어는 저토록 견고한가라는 의문이다. 여기서 방점은 남편의 커리어’만’.
남편은 노동 강도가 세기로 유명한 업계에서 일한다. 프로젝트 단위로 일하기 때문에 널널할 때도 있지만 일이 빡셀 때는 살인적인 과노동이 이어졌다. 매일 새벽 3~4시에 퇴근하는 건 기본이고 주말에도 출근했다. 주 120시간 일한 적도 있을 정도다.
남편도 힘들 것이다. 오전 8시-오후 5시 근무를 하는 나는 오전 7시 30분쯤 집을 나선다. 퇴근 시간이 정해져있지 않은(당일에도 언제 퇴근할지 알 수가 없다) 대신 출근 시간이 느슨한 남편은 아이 등원을 책임진다. 새벽 4시에 퇴근하는 날에도 3시간 정도 눈 붙이고 아이를 돌봐야 한다. 소파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남편에게 아이를 맡기고 출근할 때면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때로는 원 없이 일하는 남편이 눈물나게 부러웠다. 오후 5시, ‘애데렐라’인 나는 뒤도 안 돌아보고 퇴근한다. 편의점 들를 시간도 없이 버스로 달려가 오후 5시 30분 아이 어린이집 도착. 바로 육아 출근.
공식적 근무 시간은 오후 5시까지지만 어디 회사 일이 그런가. 시간 안에 끝나지 않는 일, 욕심내서 더 해보고 싶은 일이 생기기도 한다. 30분만 더 일하다 갈까 하다가도 엄마를 애타게 기다릴 아이를 생각하면 마음이 급해졌다.
내 시간의 변수는 늘 남편이었다. 언론사에서 일하는 나는 야간이나 주말에 당직을 서야 한다. 당직 일정을 짤 때마다 남편 스케줄을 수없이 확인했다. 남편 회사에서 갑자기 급한 일이 생기면 당장 애 봐줄 사람이 없었다. 내 당직 일정을 급히 바꿔야 했다. 남편 퇴근 시간을 알 수 없으니 저녁 회식이나 MT는 꿈도 못 꿨다. 뭐라고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늘 눈치가 보였다. 동료들에게 미안했다.
남편의 야근은 육아에도 영향을 미쳤다. 아이는 예민해서 자주 깼다. 자다가도 아빠를 찾았다. 남편이 늦게 오면 나 혼자 아이를 밤새 신경 써야 했다. 새벽에 자다 깨 남편이 안 들어와 있으면 잠이 확 달아났다. 자도 잔 것 같지 않았다. 다음날 출근하면 몸이 천근만근.
아이가 없던 시절과 똑같이 일할 수는 없다. 하지만 남편의 불안정한 스케줄까지 감당해야 하는 상황은 큰 스트레스였다. 개인주의자인 나는 내 삶을 내가 콘트롤 하며 독립적으로 살고 싶었다. 아이는 아직 어리니 어쩔 수 없다고 치자. 남편의 퇴근 시간에 내 일상이 좌지우지 되는 상황은 도무지 견디기 어려웠다.
남편과 나는 둘 다 1984년에 태어났다. 생일도 열흘밖에 차이가 안 난다. 둘 다 서울에 있는 대학을 나왔고, 안정적인 직장에 다닌다. 커리어에 대한 욕심도 많다. 그런데 아이가 태어난 후 우리의 삶은 전혀 달라졌다.
아이가 아프거나 어린이집에 보낼 수 없는 긴급 상황이 생기면 급히 휴가를 내는 사람은 늘 나였다. 아이 키우면서 회사 다니는 엄마를 배려해주는 회사 분위기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런 일이 계속 반복되자 마음속에서는 불만이 차올랐다. 왜 늘 희생해야 하는 건 엄마인 걸까.
아무리 아이 문제가 중요하다고 해도 갑자기 업무를 하지 못하게 되면 남은 팀원들이 내 업무를 고스란히 떠안아야 한다. 부서 업무 계획에도 차질이 생기는 것은 물론이다. 안정적으로 일할 수 없는 직원을 환영하는 회사는 어디에도 없다.
민폐직원이 된 심정으로 회사를 다니는 나와는 달리 남편은 꾸준히 커리어를 쌓고 있었다. 연봉이 올랐고 우수사원상도 받았다. 어느새 나는 남편을 질투하고 있었다. 이건 불공평했다.
물론 남편 나름대로는 최선을 다 하고 있었다. 남편이 알고 있는 대부분의 남자들은 육아를 도와주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 도와주는 것마저도 제대로 안 하는 경우가 많다. 그들에게 육아는 주말에만 잠시 체험하는 이벤트다. 애는 당연히 엄마가 보는 거니까.
그런 사람들에 비하면 육아와 가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어린이집 등원까지 시켜주는 남편님은 칭찬 받아 마땅하다. 친정 엄마는 말했다. "너희 남편 같은 남편이 어디 있냐. 복 받은 줄 알아."
하지만 그건 세상 사람들의 기준일 뿐이다. 나는 아이를 같이 만들었으면 함께 책임지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한 사람의 일방적인 희생을 요구해서는 안 된다고.
누군가는 말한다. 육아라는 가치있는 일에 왜 ‘독박’이라는 말을 쓰냐고, 내 새끼 보는 게 왜 희생이냐고. 육아가 가치 없다는 게 아니다. 단지 여자와 남자라는 이유로 왜 그 책임의 크기가 압도적으로 달라지는지 궁금할 뿐이다.
남편으로 일주일간 지방으로 출장 갔을 때였다. 남편이 없으니 내가 등하원을 모두 맡아야 했다. 부서에 양해를 구하고 재택근무를 하게 됐다. 새벽같이 일어나는 아이와 놀아주고 밥 먹이고 어린이집 보내고 나면 씻지도 못한 채 재택근무를 했다. 하원 시간 직전까지도 일을 하다가 아이를 데리러 갔다.
그 와중에 남편은 일하느라 계속 연락이 안 됐다. 그곳에서도 남편은 3~4시간씩 자며 일하고 있다고 했다. 더 이상 이렇게 살 수는 없었다.
“그 회사 계속 다닐 거면 나랑은 그만 살자.”
급기야 나는 해서는 안 될 말을 하고 말았다.
[엄마의 퇴사] 기자 9년차, 엄마 3년차. 직장맘으로 사는 일상은 매일이 장애물 넘기다. 죽도록 노력하는데 회사에도 아이에게도 늘 미안하기만 하다. 엄마에게 일과 육아 중 하나만 선택할 것을 요구하는 시대. 일도 육아도 적당히 하며 살 수는 없을까? 일하는 엄마로 살면서도 나를 지키고 싶었던 어느 엄마의 퇴사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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