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과 선택의 총합
응? 모슬포? 숙소에서 미리 보내준 추천 맛집 리스트를 보고 깜짝 놀랐다. 내가 예약한 곳은 분명 조천점이었는데. 황급히 예약 내역을 확인해 보니 과거의 내가 조천점이 아닌 사계점에 예약을 해둔 게 맞다. 여기에서 사계점까지는 대중교통으로 거의 2시간 거리. 지난주 정신없는 상태에서 예약하느라 지점을 헷갈린 것이다. 어쩔 수 있나. 취소할 수도 없고 그냥 가보는 거지. 그래도 조천점 가기 전에 미리 발견해서 다행이다. 어쩔 수 없음을 유연하게 받아들이기, 지난여름 미국 여행에서 배운 것인데 아직 여행 약발이 남아 있구나 내심 반갑다.
8월 말 이후 브런치에 글을 쓰지 못했다. 그사이 한 달 조금 넘게 미국-캐나다 북미 여행을 다녀왔고, 돌아오자마자 이사를 했고, <나를 키운 여자들> 책 개고 작업을 했다. 그리고 외주 취재하러 제주에 왔다. 출장은 1박 2일인데 하루 더 머물면서 혼자만의 시간을 갖기로 했다. 버스를 한 번 갈아타고 1시간 넘게 자다 깨다 했더니 정류장에 도착했다. 숙소까지 또 15분. 캐리어를 덜덜 끌고 칼바람을 맞으며 논길 옆 비포장 도로를 걸었다. 바다를 볼 줄 알았더니 드넓은 논밭과 산방산만 눈에 들어온다.
모처럼 혼자가 됐다고 들떴지만 특별히 뭔가 한 건 없다. 동네 서점에 가서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을 사 와서 조금 읽었고 맥주 한 캔 마시며 넷플릭스로 <작은 아씨들>과 <스트리트 맨 파이터>를 봤다. 작은 아씨들을 보느라 정신이 혼미해진 상황에서 스맨파에서 비의 ‘Domestic(팔각정)’을 수십 번 반복해 들었더니 머리가 아팠다. 집에서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왜 여기까지 힘들게 버스 타고 캐리어 끌고 와서 하고 있을까 한심했다. 두통을 달래며 겨우 잠에 들었다.
다음날 아침, 또 캐리어를 덜덜 끌고 칼바람을 맞으며 카페로 갔다. 이놈의 캐리어는 왜 들고 왔을까, 다음번에는 꼭 운전해서 와야지 다짐하면서. 카페에 들어갔더니 커피콩 볶는 냄새와 함께 재즈 음악이 공간을 가득 메운다. 창밖으로 듬직한 산방산이 보였다. 친절한 주인장은 커피 맛을 자세히 소개해 주면서 정성스레 커피를 내려줬다.
의자에 앉아 커피를 받아 들고 음악에 귀 기울이는데 갑자기 모든 게 다 괜찮아졌다. 수많은 경우의 수를 떠올렸다. 지난주 숙소를 잘못 선택하지 않았다면, 숙소를 잘못 선택한 사실을 좀 더 빨리 알았다면, 차를 렌트해서 왔다면, 혼자가 아니라 일행과 함께 왔다면, 카페가 아니라 해변에 갔다면, 이 카페가 아니라 다른 카페에 갔다면, 구수한 커피가 아니라 산미 있는 커피를 택했다면, 오늘 날씨가 이렇게 맑지 않았다면… 수많은 우연과 선택이 겹쳐져 지금 이 순간이 만들어졌다는 생각을 하자 지금이 애틋하면서도 어쩐지 마음이 홀가분했다.
인생을 잘못 살았다고 생각했을 때 모든 것이 내 탓이고 내 책임인 것 같았다. 반대로 참 잘 살고 있다고 느끼는 날에는 내가 잘해서 지금의 행복이 있다며 우쭐해졌다. 온 우주의 중심에 내가 있었다. 내 잘못 때문에 관계가 무너졌다고 느꼈던 날, 앞으로 어떤 관계도 맺기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던 날, 친구가 그런 말을 했다. 그 사람이 너 때문에 힘들었다면 너도 그 사람 때문에 그만큼 힘들었을 거야. 혼자 맺는 관계는 없고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니까. 그때 알았다. 모든 걸 내 탓으로 돌리는 태도는 책임감이 아니라 나 이외의 어떠한 삶의 변수도 인정하지 않는 오만이었다는 것을.
지금까지 삶을 온전히 내 선택과 노력의 총합이라 볼 수 있을까. 셀 수 없이 많은 우연, 운, 타인, 사회적 환경, 날씨, 시간, 공간… 셀 수 없는 변수가 뭉치고 뭉쳐 지금이 지금이 되었다. 나 또한 그 수많은 변수 중 하나일 뿐이다.
카페에서 나와 공항으로 가는 정류장으로 향했고 서울에서 이주해 왔다는 중년 여성 분을 만나 대화를 나눴다. 이 정류장이 아닌 저 정류장이었다면, 이 시간이 아닌 다른 시간이었다면, 이분이 아닌 다른 분이었다면, 내가 먼저 길을 묻지 않았다면, 이분이 내게 말을 걸지 않았다면… 머릿속으로 경우의 수를 재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