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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밀밀 Nov 26. 2022

시간과 에그타르트

단정하고 다정하게

남편과 평일 데이트는 오랜만이었다. 아이 어린이집 등원시키고 버스를 타고 평창동으로 향했다. 예전부터 가고 싶었던 미술관에 가기로 했다. 중간에 버스 접촉 사고가 나서 버스를 두 번이나 갈아탔지만 괜찮았다. 우리에게는 시간이 있으니까. 손을 꼭 잡고 버스에 나란히 앉아 창밖을 바라보는 것도 오랜만이었다. 겨울이 금세 올 줄 알았더니 아직 가을이 여기 있었다. 매년 보는 가을 풍경인데 올해는 유난히 색이 선명하다. 제법 찬 바람이 부는데 춥기보다는 청량했다.


언덕을 올라 낑낑대며 미술관까지 갔는데 맙소사. 휴관이었다.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 “뻘짓을 해야 나중에 기억에 더 남지”라며 경사길을 내려와 또 다른 언덕을 낑낑대며 올라 미술관 근처 칼국숫집으로 향했다. 골목 곳곳 오래된 고급 주택을 보면서 김수현 작가 드라마에 나오는 대사 ‘평창동입니다아’를 떠올렸다. 이런 집에 살면 그런 세속적이면서도 우아한 말투가 나오는 걸까. 빨갛고 노랗게 물든 창밖을 보면서 먹은 칼국수에서는 조미료를 쓰지 않은 깊은 맛이 났다. 면도, 만두도 보들보들했다.


밥을 먹고 나와 평창동에서 세검정까지 또 한 시간쯤 걸었을까. 겨우 작은 카페 하나를 발견했다. 그런데 여기 카페 맞나. 문을 열고 들어가자 어쩐지 어수선한 느낌이다. 직원은 아직 카드 단말기 연결이 안 돼서 현금이나 계좌 이체로 결제를 해야 한다고 양해를 구한다. 남편은 아이스 아메리카노, 나는 플랫화이트를 주문하면서 에그타르트도 함께 시켰다. 그러자 직원이 조심스러운 얼굴로 묻는다.


“혹시 시간 있으세요?”


점원은 지금 에그타르트를 새로 굽는데 나오려면 20분 정도 걸린다고 기다려 줄 수 있냐고 묻는다. 아직 일이 손에 익지 않아 어설프지만 친절함만큼은 최고치인 얼굴, 권태가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 새로 시작하는 이의 간절한 얼굴을 모른 척할 수 없었다. 언젠가는 나도 그런 얼굴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남편과 잠시 시선을 교환한 후 웃으며 말했다.


“네. 시간 있어요. 기다릴게요.”


해야 할 일이 쌓여 있을 때면 마른걸레처럼 마음속에서 인류애가 소멸되곤 했다. 집중해서 일하고 싶은데 사무실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면 짜증이 났고 업무와 관련 없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듣는 게 시간 아까웠다. 동료가 나만큼 열심히 하지 않는 것처럼 보여도, 나보다 더 일을 잘하는 것처럼 보여도 신경 쓰였다. 정해진 일에서 조금만 변수가 생겨도 잔뜩 날카로워졌다. 저녁 시간에도 일 생각을 떨치지 못한 날이면 남편과 아이가 하는 말이 하나도 귀에 안 들어왔다. 누가 등 떠밀어 일하는 것도 아닌데 내가 제일 힘든 사람, 내가 제일 불쌍한 사람처럼 느껴졌다. 온통 내 안에 나, 나, 나만 가득했다. 타인을 헤아릴 틈이 없었다.


물론 일이 많고 시간이 없어도 ‘내가 제일 힘들어’라고 말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는 그런 사람이 못 된다. 사람은 두 분류로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자기가 배고프면 남 배고픈 것 신경 안 쓰고 바로 음식으로 손이 가는 사람과

-배고픔을 참고 다른 사람이 먼저 먹기를 기다리는 사람.


나는 전자다. 허겁지겁 배를 채우고서야 ‘아, 다른 사람들도 배고프겠구나’라며 부끄러움이 밀려오는 사람.


남편은 쉬는 동안 내가 많이 관대해진 것 같다고 말했다. 여유가 생긴 것 같다고. 쉼의 시간을 보내면서 나는 조금은 다정한 사람이 되었다. 당장 성과를 내야 할 일도 타인과 씨름을 해야 할 일도 없으니 참지 못할 만큼 화가 날 일도 도저히 용서 못할 일도 자연스레 사라졌다. 마음속을 가득 채우고 있던 미움과 억울함이 서서히 옅어졌다. 그제야 타인이, 세계가 눈에 들어왔다. 숟가락을 들기 전에 ‘아, 다른 사람들도 배고프겠구나’라고 먼저 생각할 수 있게 됐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을 맞닥뜨려도 ‘그럴 수도 있지’ 체념이 아니라 용인할 수 있게 됐다. 이런 내가 나는 훨씬 마음에 든다. 이런 내가 훨씬 편하다.


그래서 일을 어떤 식으로 다시 시작할지 고민이 깊다. 삶에서 일이 차지하는 비중이 늘어나면 또다시 예전처럼 일이 삶을 뒤덮지 않을까, 다정함을 잃게 되지 않을까. 여전히 내게 일은 중요하지만 나의 성취를 증명하고 누군가에게 인정받기 위해 애쓰는 일에는 마음이 심드렁해진다. 이제 나는 타인에게 사랑받는 사람이 아니라 내가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나라는 사람의 본질은 달라지지 않을지 모르지만 나를 어떤 그릇에 담느냐에 따라 내가 조금은 더 단정하고 다정한 사람이 될 수 있을지 모른다. 요즘 내가 바라는 것은 아름다운 것에 투명하게 감탄할 수 있는 마음을 갖는 것이다. 삶의 찰나에 깃든 아름다움을 눈치채고 만끽하기 위해서는 내 마음이 우선 단정해야 한다. 꼬이거나 뒤틀려 있지 않아야 한다. 단정함은 체력과 시간에서 나온다. 갓 구운 에그타르트는 바삭하고 부드러웠다. 그리고 따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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