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기', '속성' 아님
6세가 되면서 같은 방에 한글을 읽고 쓰는 아이들이 하나둘 늘었다. 날날이는 자신감 없는 목소리로 “나만 한글 몰라" “나는 한글 쓸 줄 모르는데"라는 말을 종종 했다. 6세 하반기 면담에서 담임 교사 그래는 나와 뿡뿡에게 날날이가 스스로 잘 못한다고 생각하면 의기소침해지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집에서 한글 공부를 조금씩 시켜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제안의 배경에는 그림 그리기가 있었다. 미국 여행 내내 달리는 차 안에서 종이접기와 그림 그리기를 할 정도로 창작 활동을 좋아하는 날날이는 6세 상반기까지만 해도 그림 그리기를 매우 힘겨워 했다. 선을 긋고 동그라미를 그리는 것도 자신 없어 했다. 섬세한 소근육 발달이 느렸던 탓도 있지만 ‘나는 그림 못 그려’라는 생각 때문에 그림에 대한 두려움이 컸던 것 같다. 터전과 가정에서 폭풍 칭찬과 동기 부여(“잘 그리고 못 그리는 그림 같은 건 없어. 자유롭게 그리면 돼.”“이 그림 진짜 멋지다! 역시 날날이는 예술가라니까.”) 해준 덕분에 점점 그림에 흥미와 자신감이 생겼지만 그 과정이 꽤 지난했다.
‘잘 하지 못할 것 같다', ‘잘 못해서 놀림받을 것 같다’는 생각 때문에 시도조차 안 하는 아이를 옆에서 지켜보는 건 아마 입장에서 괴롭고 답답한 일이었다. 아이의 모습에서 타인의 시선에 민감한 나와 뿡뿡이 오버랩 되기도 했다. 담임 교사 그래는 다른 친구들이 한글에 점점 익숙해질수록 날날이가 그림에 그랬던 것처럼 한글에도 ‘나 못해'라는 생각을 갖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나와 뿡뿡도 같은 생각이었다.
날날이가 스스로 한글을 배우고 싶다고 말할 때까지 일단 기다렸다. 드디어 때가 왔다. 자, 이제 슬슬 한글을 가르쳐 볼까… 했지만 한글 가르치기는 상상 이상으로 쉽지 않았다. 아이 한글 가르치다 (아이 말고 아마가) 가출할 뻔했다는 선배 아마의 말은 사실이었다. 날날이는 방금 배운 것도 기억 못 했고 ‘못 하겠다’, ‘하기 싫다’며 몸을 배배 꼬았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멀쩡히 잘 놀았던 애가 갑자기 물 마시고 싶고 갑자기 배 아프고 갑자기 졸리다고 했다. 그때마다 열이 차올랐지만 나는 성숙한 어른이므로 입꼬리를 올리며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날날아, 처음이니까 모르는 게 당연해. 우리 조금만 더 해볼까?”
“날날아, 한글 알면 얼마나 좋은 줄 알아? 여기 있는 책도 다 읽을 수 있어.”
그러거나 말거나, 5분 경과 시점부터 날날이는 온몸으로 하기 싫음을 표출했다. “우리 한글 공부 할까?” 웃으며 시작했던 공부는 “이게 엄마 아빠 좋으라고 하는 거야? 그렇게 하기 싫으면 하지마!”라는 막장 클리셰 범벅으로 마무리됐다. 한글이 이렇게 어려울 일인가. 나는 혼자 다 알아서 배웠던 것 같은데.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 한다'고 한글을 몰랐던 시절이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인내심 레벨이 좀 더 높은 뿡뿡에게 임무를 넘겼다. 그러나 자칭 타칭 ‘동기부여의 왕’도 한글 공부 앞에서는 반도의 흔한 꼰대일 뿐이었다. “다른 애들은 다 한글 아는데 너만 모를 거야?”“너 이러면 나중에 학교 가서 힘들어!” 인신공격과 협박에 날날이는 눈물을 쏟았다. 한글이 뭐라고,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으면서 한편으로는 이런 식으로 해서 내년에 학교 생활은 잘 할 수 있을까 걱정되고 불안했다.
날날이가 한글에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한글을 읽고 쓰고자 하는 욕구와 그것을 배우는 과정은 별개였다. 살은 빼고 싶지만 식단과 운동은 하기 싫은 것과 비슷하달까. 아이와 한글 때문에 한바탕 씨름하고 나면 자괴감이 밀려왔다. ‘한글 해야 하는데(그런데 하기 싫은데…)’라는 부담감만 잔뜩 안은 채 이건 공부를 하는 것도 안 하는 것도 아닌 상태를 반복하다 보니 어느덧 7세 상반기가 끝나 있었다.
앞부분만 새까만 수학의 정석처럼 ‘기적의 한글 학습’ 책 1권은 앞부분만 너덜너덜했고, 책장에는 우리의 혼란함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몇 가지 다른 종류의 교재(역시 앞부분만 풀다 만…)가 꽂혀 있었다. 여전히 날날이는 ‘가방'을 읽지 못했다. ㄱ와 ㅏ를 몇 번이나 했는데,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학교 가기 전에 한글을 뗄 수 있을까.
그즈음 초등학생 두 아이를 키우는 친구를 만났다. 친구에게 한글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았다. 친구는 무슨 마음인지 안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우리 애들은 둘 다 한글 때문에 고생했어.”
“둘 다? 둘째는 보통 혼자 알아서 배운다던데.”
“첫째보다야 나았지. 더 빨리 가르쳤으니까. 그런데 우리는 둘째도 알아서 깨우치지는 않았어.”
친구는 말을 이어갔다.
“한글 배우는 게 어려운 애들도 있는 거야. 그냥 집에 책 있잖아. 교재 하나 정해서 하루 한 장이라도 매일 매일 해. 아직도 가방을 못 읽는다고? 앞에 했던 것 확인하지 말고 진도를 계속 빼. 여름부터 시작하면 겨울 올 때쯤에는 기적처럼 한글을 깨우치게 될 거야.”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며 알게 됐다. 한글을 가르치기 싫어했던 마음 한편에는 날날이가 혼자 알아서 잘하기를 바라는 욕심, ‘다른 아이들보다 뒤처지면 어쩌지’라는 두려움이 있었다는 것을.
신생아 때 날날이는 어마어마한 등센서를 가진 아이였다. 바닥이나 침대 위에 내려놓기만 해도 잠에서 깼다. 온오프라인 육아 선배님들의 말씀을 따라 온갖 방법을 동원했지만 등센서는 꺼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결국 내가 택한 방법은 아이가 잠들면 굳이 내려놓으려 하지 않고 그냥 배 위에 올려놓고 재우는 것이었다. ‘이 아이는 누워서 자기 힘든 아이'라는 것을 받아들이자 신기하게도 훨씬 마음이 편해졌다. 잠든 아이를 배 위에 올려놓고 영화도 보고 책도 읽고 밥도 먹었다. 아이의 등센서는 시간이 흐르자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이번에 한글 공부를 하면서도 ‘다른 아이들은 안 그렇던데 왜 날날이는…’이라는 마음이 우리를 더 갈팡질팡하게 만들었다. 양육자가 이랬다저랬다 선을 정하지 못하니 아이는 더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아이가 7살쯤 되면 육아 베테랑이 될 줄 알았는데 아이가 한 살 한 살 먹을 때마다 매번 초보 양육자로 돌아간다.
집에 돌아와 뿡뿡에게 친구가 했던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때부터 우리는 이 닦듯이 한글 공부를 하기로 했다. 여기에서 이 닦기의 방점은 ‘꾸준히'가 아니라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지 않는 것’에 있었다. 날날이는 시작이 쉽지 않은 아이, 천천히 배우는 아이라는 것을 받아들였다. 날날이보다 인생의 경험이 많은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은 그런 날날이를 어떻게 잘 도울 것인가였다.
목표를 크게 세우지 않고 친구 말처럼 교재 하나를 정해서 하루 두 장씩(물론 빼 먹은 날도 많다ㅎㅎㅎ) 뿡뿡과 번갈아가며 날날이와 함께 한글을 공부했다. 뭐든 시작이 어렵다더니 그토록 어렵던 1권을 떼고 2권, 3권으로 갈수록 날날이는 갈수록 한글에 재미를 느꼈다. 배운 것이 쌓일수록 배움을 받아들이는 속도도 빨라졌다.
뒤집기도 못하던 아이가 걸음마를 하고 걷고 뛰게 된 것처럼, ‘가’를 읽는 것도 힘들어하던 날날이는 어느 날은 받침이 들어간 글자를 읽고 또 어느 날은 이중 모음을 읽었다. 아이가 자신만의 속도로 조금씩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나와 뿡뿡에게도 뭉클한 경험이었다.
‘단기', ‘속성'이라는 말에 익숙한 나는 시행착오 없이 쉽고 빠르게 배우는 것을 좋은 것이라 여겨왔다. 아이가 크는 과정에서도 최대한 걸림돌이 없기를 바랐다. 소중한 내 아이가 돌부리에 넘어지고 다치고 우는 모습을 차마 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삶에서 의미 있다고 생각되는 경험은 잘 정돈된 매끈한 도로가 아니라 어디가 길인지조차 혼란스러운 울퉁불퉁한 길에서 모두 얻었다. 무릎이 깨져서 피가 나기도 하고 중간에 포기할까 고민하며 잠시 쉬기도 하고 그럼에도 툭툭 털고 일어나 딱 한 발만 더 발을 내딛는 과정을 통해 우리는 한 뼘씩 자란다.
이제 나는 날날이가 넘어지지 않기를 바라지 않는다. 대신 나는 날날이가 넘어진 자리에서 어깨를 내어줄 수 있는 어른, 날날이가 일어나려 할 때 옆에서 손을 잡아주는 어른이 되어주고 싶다. 그러기 위해 내 마음의 그릇을 더 넓고 깊게 만들어야 할 것이다. 한글 맞춤법과 띄어쓰기만큼이나 아니 그 이상으로 어려운 일이 될 것이다.
어느덧 7세 겨울, 날날이는 친구들 이름으로 삼행시를 짓고 카톡 메시지를 몰래 훔쳐보고 가로세로 낱말 퍼즐을 풀고 떠듬떠듬 책을 읽는다. 앞니가 몇 개나 빠져서는 “있었어요”를 “잇, 엇, 어, 요”라고 또박또박 발음하는 날날이를 보면서, 우리가 언젠가 이 순간을 오래오래 그리워하게 되리라 예감했다. 어설프고 서툴던,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처음을. 친구가 말한 기적이 무엇이었는지 이제야 알 것 같다.
이 글은 서울 마포구 합정동 공동육아 '또바기 어린이집' 소식지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