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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밀밀 Jan 09. 2023

70대 아빠 취업 분투기

아빠는 일을 구할 수 있을까

일흔두 살 아빠는 구직 중이다. 지난해 아빠는 허리 디스크 수술 때문에 직장을 그만뒀다. 사실 아빠가 정확히 어떤 일을 했는지, 딸인 나도 잘 모른다. 지난 20년간 아빠가 했던 일은 대개 그런 일이었다. 3D 업종이라 불리는 위험하고 힘든 일. 사회적으로 구체적인 이름이 붙여지지 않는 일. 


공사장과 공장을 거쳐 지난 몇 년간 아빠가 재래시장에서 했던 일은 상대적으로 덜 위험하고 덜 힘들었다. 그래서 허리 디스크가 점점 심해지는 상황에서도 아빠는 쉽사리 일을 그만두지 못했다. 다시는 이만한 일자리를 구하기 힘들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 사이 아빠는 두 번의 시술을 받았는데 허리 통증에는 전혀 차도가 없었다. 시술 후 충분히 쉬는 시간을 갖지 못했고 일터에서 허리 숙이며 무거운 짐을 계속 들어야 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결국 허리가 아파 걷는 것도 잠자는 것도 힘든 지경이 돼서야 아빠는 일을 그만두고 수술을 받기로 했다. 그때 아빠 나이 일흔 하나. 아빠는 수술을 받는 것보다 일을 할 수 없는 사람이 된다는 것에 절망했다. 


찢어지게 가난했던 시골 8남매 중 차남. 초등학교 졸업이 최종 학력인 아빠는 10대 때부터 반세기 넘게 일을 하고 돈을 벌었다. 일을 하지 못하고 돈을 벌 수 없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곧 아빠에게는 쓸모없는 사람이 된다는 것과 동의어였을 것이다. “내가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체력만큼은 자신 있었던 아빠가 건강을 잃은 후 가장 많이 했던 말이었다. 마음은 여전히 젊은데 몸과 마음의 시차는 무참히 어긋났다. 


다행히 수술이 잘 됐고 필라테스를 꾸준히 한 덕분에 몸 상태는 점점 나아졌다(당연히 아빠는 돈 내고 운동할 사람이 아니므로 나와 남편이 재활 치료를 위해 필라테스 이용권을 끊어줬다). 몇 년간 독한 진통제를 달고 사느라 바닥까지 떨어졌던 면역력이 서서히 돌아왔고, 통증 때문에 더 심해졌던 짜증과 예민함도 눈에 띄게 줄었다. 


아빠가 일을 그만두자 엄마는 2인 가구의 유일한 가장이 되었다. 아빠는 “당신은 밖에서 일하니 집안일은 내가 하겠다”며 모든 살림을 도맡았다. 아빠는 아침에 누룽지 끓이는 것을 시작으로 삼시 세끼 밥상을 차렸다. 운동하고 집안일하면 하루가 훌쩍 갔다. 아빠는 집안일로 자신의 쓸모를 찾는 듯했다. 


몸 상태가 호전되자 아빠는 다시 일을 하고 싶어 했다. 엄마의 월급, 아빠의 국민연금으로 넉넉지는 않아도 생활이 가능했지만 아빠에게 일은 선택이 아니라 꼭 해야만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빠는, 나이가 너무 많았다. 특별한 기술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어느 날 통화에서 엄마는 인력 사무소에서 금방이라도 일을 구해다 줄 것처럼 연락이 왔다가 그 후 연락이 없는 상황이 반복된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연락이나 제때 해주면 기다리지나 않지. 우째 그렇노." 엄마의 목소리에 시름이 깊었다. 


살갑지 못한 딸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귀여운 손자를 보여주는 것뿐이었다. 아이 겨울 방학을 맞아 날날이와 함께 부산 친정에 다녀왔다. 오래 있으면 분명 서로 힘들어질 테니 딱 2박 3일만. 아빠에게 아이를 맡기고 친구를 만나고 돌아온 저녁, 아빠는 다음 날 새벽 일찍 일하러 나가야 한다고 했다. 무슨 일이냐 물어도 아빠는 대답을 안 해줬다. 살갑지 못한 아빠와의 대화는 늘 그런 식이었다. 


다음 날 아빠는 배낭에 컵라면을 챙겨서 새벽 4시에 집을 나섰다. 엄마에게 아빠가 무슨 일을 하러 가는 거냐 물었다. 


“여기 옆에 아파트 경비 자리가 났는데. 정규직은 아니고 그냥 며칠 땜빵. 조건이 너무 안 좋아서 안 갈라카다가 인력 사무소에서 그래도 처음으로 일 준 건데 거절을 못 하겠는기라. 거절했다가 그다음에 일 안 줄 수도 있으니까.” 


처음 해보는 일을 앞두고 아빠는 밤새 한숨도 못 잤다고 했다. 긴장되는 일이 있으면 잠을 못 이루는 건 아빠를 닮았다. 나를 닮은 아이를 보는 것이 억장이 무너지는 일이라면, 나를 닮은 부모를 볼 때면 심난해진다. 나의 미래도 부모를 닮아 있을 것 같아서. 나도 아빠처럼 일흔이 넘어도 긴장 때문에 잠을 못 이루는 사람으로 늙어갈까. 


출근한 아빠와 통화한 엄마는 날이 추워서 힘들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아빠 목소리가 밝은 것 같다고 했다. 오랜만에 일을 해서 기분이 좋은 걸까. 저녁이 되자 엄마는 차로 아빠에게 전기담요와 이불을 갖다 줬다. 


새벽 4시에 집을 나선 아빠는 다음 날 새벽 5시가 돼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이렇게 24시간 근무를 하고 24시간 쉬는 방식으로 3번을 일한다고 했다. 그렇게 해서 받게 되는 돈은 하루 13만 원. 인력 사무소 수수료를 떼면 아빠가 손에 쥐는 일당은 11만 원 정도였다. 


24시간을 일하는데 어떻게 13만 원을 받는 거지? 최저임금도 안 되는 것 아닌가 해서 자료를 찾아봤다. 아파트 경비원 근무 형태는 대부분 24시간 맞교대제인데 이 시간 동안 점심, 저녁, 야간 등 휴게 시간이 주어지고 휴게 시간은 임금에서 제외된다. 


문제는 이 시간 동안 경비원들이 ‘휴게’를 할 수 없다는 것. 집에 갈 수도 없고 휴게 공간도 제대로 마련돼 있지도 않다. 휴게 시간이 사실상 대기 시간인데 임금은 책정되지 않는 것이다. 야간 근로가 주로 고령인 경비원들의 건강을 위협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이런 열악한 일자리조차 노인들은 구하는 게 쉽지 않다. 아빠처럼 나이가 많다면 더욱더. 


경비원의 노동 환경에 대한 기사를 읽다 지난해 읽었던 이순자 작가의 ‘실버 취준생 분투기’가 생각났다.


“솔직히, 라고 말해놓고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중략…그동안 무엇 하느라 노후 준비를 하지 못했냐고 문책을 당할 것만 같았다. 그동안 나는 무엇을 했을까?” - 이순자 '실버 취준생 분투기' 중에서


‘실버 취준생 분투기'에는 황혼 이혼을 하고 예순 넘은 나이에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분투했던 한 여성의 절절한 사연이 담겨 있다. 청소, 요리, 아이 돌봄, 요양보호 등 노년 여성에게 주어지는 돌봄 노동은 하나같이 임금은 턱없이 낮고 노동 강도는 높다. 


일이 너무 고돼서, 감정 노동이 힘들어서, 부당한 업무 지시를 받아들일 수 없어서, 성추행을 당해서. 이순자 작가는 일을 시작했다 그만뒀다를 반복한다. 상식이 통하는 일자리 구하기가 왜 그리 어려운지, 고용주들의 온갖 갑질을 겪으며 이순자 작가는 점점 “본래의 나를 잃어가는 것 같"다고 고백한다.


거실에서 아빠가 짐을 푸는데 누군가에게서 전화가 걸려온 소리가 난다. 아빠는 “아 그게 거기 없습니까”라고 거듭 확인했다. 뭔가 일에 착오가 생긴 모양이었다. 아빠는 힘없는 목소리로 "미안합니다"라고 말하며 전화를 끊었다. 거실에 정적이 맴돌았다. 


아빠가 샤워를 하고 잠시 눈을 붙이는 동안 나는 서울 집으로 돌아갈 짐을 쌌다. 아빠는 잠을 못 자 벌게진 눈으로 거실로 나오더니 "오늘 가는 거가"라고 물었다. 아빠는 다시 방에 들어가 5만 원짜리 두 장을 들고 나오더니 날날이 손에 쥐어줬다. 설날에 못 보니까, 세뱃돈이라고. 애한테 무슨 돈을 그렇게 많이 주냐고 물어도 소용없었다. 남에게 아쉬운 소리 하기 싫어하는 것도, 지독히 고집이 센 것도, 나는 아빠를 닮았다. 아빠가 일을 하고 싶은 이유에는 날날이도 포함돼있을 것이다. 


며칠 후 통화에서 엄마는 아빠가 결국 일을 하다 감기에 걸렸다고 했다. 일흔두 살 아빠는 일을 구할 수 있을까. 


아빠와 함께 본 부산 바다. 그래도 맛있는 밥 한 끼는 함께 먹었다@홍밀밀




저의 첫 에세이집이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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