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퇴사10] 갑작스런 등원거부, 진실을 알기 두려웠다
아이는 생후 10개월부터 가정형 어린이집에 다녔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오후 4시가 지나면 하원했다. 오후 5시 30분쯤 아이를 데리러 가면 아이는 혼자 있거나 다른 친구 1~2명과 함께 엄마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린이집 현관문에는 아이들이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낮은 안전바 같은 것이 설치돼있었다. 띵똥, 초인종이 울리면 모든 아이들이 그 안전바에 옹기종기 매달려 엄마를 기다렸다. 자신의 엄마가 온 줄 알고 기대했다가 아니면 서럽게 울며 엄마를 찾기도 했다.
오늘 아이는 몇 번이나 저 안전바에 매달렸을까 생각하면 가슴이 저려왔다. 아이 혼자 남아있는 것도 가슴 아팠지만 우리 엄마는 언제 오냐며, 잘 알지도 못하는 나를 따라가겠다고 엉엉 우는 다른 아이를 보는 것도 차마 못할 짓이었다.
대한민국 보통 회사의 근무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어린이집 법정 운영시간은 오전 7시 반부터 오후 7시 반까지다. 하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은 오후 5시 이전에 하원한다(‘전업맘’들은 아이 맡길 수 있는 시간이 제도적으로 제한돼있다).
그 시간을 맞추려고 직장에 다니는 엄마들은 조부모의 도움을 빌리거나 돈을 주고 하원도우미를 쓴다. 그럴 수 없는 엄마들은 나처럼 늘 죄책감에 시달린다. 그러다 회사를 그만두기도 한다.
내 새끼를 소외시키지 않기 위한 노력이 다른 아이를 소외시키는 기이한 상황. 하원 시간이 두려웠다. 버스에서 내려 어린이집 가는 데까지 5분. 발은 빠르게 움직이고 있지만 마음속으로는 발길을 돌려 도망치고 싶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어린이집 운영에는 일하는 엄마에 대한 고려가 없었다. 갑자기 공사를 한다며 며칠 문 닫을 때도 있었고, 역시 갑자기 일찍 하원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부모참여수업도 수시로 있었다. 그때마다 호출되는 건 엄마인 나였고 도저히 시간을 낼 수 없어 우리 아이만 선생님 무릎에 앉아 부모참여수업을 들은 적도 있다.
가장 큰 위기는 어린이집에 다닌 지 1년쯤 됐을 때 찾아왔다. 만 0세반에서 만 1세반으로 올라간 지 두 달. 징검다리 연휴를 맞아 아이와 함께 부산 친정에 며칠 가 있는데 담임 선생님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개인 사정으로 어린이집을 갑자기 그만두게 됐다는 것이다. 이미 전날 대체 교사가 와서 인수인계를 했고 연휴 끝나면 자신은 없을 거라고. 아이와 작별 인사도 못 하고 헤어져서 죄송하다는 내용이었다.
어안이 벙벙했다. 새로운 반에 이제 막 적응했는데 또 새로운 교사라니. 그것도 이렇게 갑자기. 게다가 아이는 한 달만 지나면 다른 어린이집으로 옮길 예정이었다. 그래도 지난 1년간 워낙 잘 다녔던 아이니 괜찮으리라고 생각했다. 큰 오산이었다.
새 교사가 오고 나서 아이의 등원거부가 시작됐다. 아이는 아침마다 어린이집에 가지 않겠다고 통곡하며 새로운 선생님에게 심한 거부반응을 보였다. 등원을 담당하는 남편은 아침마다 한바탕 전쟁을 치렀다. 대체 아이가 왜 그런 걸까. 갑자기 낯가림이 시작된 걸까. 그때가 두 돌이 되기 전. 아직 아이가 말을 못 하니 너무나 답답했다.
아이의 생활을 알 수 있는 건 어린이집 수첩밖에 없었다. 수첩을 펼치면 매일매일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무엇을 잘못했는지 지적하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하원할 때는 ‘다른 애들은 안 그런데’라며 비교를 하기도 했다. 지금껏 겪었던 다른 교사들과는 너무 달랐다.
원장에게 이야기 해볼까 하다가 이내 관뒀다. 어린이집을 보내는 부모는 늘 ‘을’ 입장일 수밖에 없다. 괜히 교사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가 아이에게 안 좋은 영향이 갈까 두려웠다.
설령 교사에게 문제가 있다고 해도 어떻게 할 건가. 치명적인 문제가 아닌 이상 아이를 어린이집에 안 보낼 수는 없었다. 어린이집이 없으면 회사를 다닐 수 없으니까. 대안이 없었다. 나도 남편도 진실을 알기 두려웠다.
그러던 어느 날, 하원 하러 갔는데 아이 발뒤꿈치에 상처가 나 있었다. 피가 난 흔적이 있었다. 보통 아이가 다치면 어린이집에서 바로 연락이 왔는데, 새로운 담임 선생님은 아무 연락도 없이 이미 퇴근한 상황이었다. 교사 연수를 받으러 갔다고 했다. 자세히 살펴보니 다른 곳에도 상처가 있었다. 원장은 아이가 놀다가 다치는 걸 봤는데 어린이집에 행사가 있어서 다들 정신이 없었다고, 연락을 못했다고 사과했다. 다른 곳은 왜 다쳤는지 모르겠다고.
다음 날, 급히 휴가를 내고 아이를 집에 데리고 있었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지 않았는데 담임교사는 등원 시간을 한참 넘긴 오후 5시가 지나서야 전화가 왔다. 아이가 아프냐고. 더 이상 이 어린이집을 신뢰할 수 없었다.
어쩌면 모든 게 오해였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너무 민감하게 반응했는지도. 교사가 서툴렀던 걸 수도 있다. 너무 바쁘고 정신이 없으니까. 아직 말도 못하는 어린 아이 5명을 혼자 보는 상황은 분명 힘들 테니까. 보육교사의 처우가 오죽 열악한가.
하지만 어린이집 폭행·비리 사건이 연이어 발생하는 상황에서 마냥 편한 마음을 가지기는 어려웠다. 아이를 안전하게 믿고 맡길 보육 시설을 찾는 게 너무나 어려운 사회. 부모는 늘 불안하다.
밤새 고민한 끝에 나는 한 달 무급휴직을 신청했다. 지금 중요한 건 아이였다. 아이가 가장 약자니까. 내가 보호해야 했다(얼마 후, 같은 반에 있던 다른 아이도 비슷한 이유로 퇴소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회사에 앉아 컴퓨터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는데 계속 눈물이 났다. 아이가 안 됐고, 내가 안 됐고, 또 다시 민폐 직원이 된 것 같아 속상했다. 남은 일을 떠안아야 할 팀원들에게 너무나 미안했다. 벌여놓은 일은 또 어쩌고.
회사에서는 내 사정을 이해해줬다. 원래 아이 키우다 보면 언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거라고. 직장맘인 팀장은 이왕 이렇게 된 거 쉬어간다 생각하라 했다. 미안해하지 말라고. 그 마음이 고마워 난 또 한바탕 눈물을 쏟았다.
다른 회사였다면, 나는 아마도 그때 회사를 그만뒀을지 모른다. 나는 운이 좋았다. 하지만 다른 엄마들도 그저 운이 좋기를 바랄 수는 없다.
많은 엄마들이 어린이집 문제 때문에 회사를 그만둔다. 아이가 다니는 유치원이 비리유치원 명단에 오르는 것보다 그 유치원에 아이를 맡기지 못할까봐 더 두렵다는 엄마들. 국가가 돌봄을 책임지지 않는다면 여성들은 일과 육아 사이에서 계속 궁지에 내몰릴 수밖에 없다.
정부에게 묻고 싶다. 이래도 저출산이 문제냐고.
[엄마의 퇴사] 기자 9년차, 엄마 3년차. 직장맘으로 사는 일상은 매일이 장애물 넘기다. 죽도록 노력하는데 회사에도 아이에게도 늘 미안하기만 하다. 엄마에게 일과 육아 중 하나만 선택할 것을 요구하는 시대. 일도 육아도 적당히 하며 살 수는 없을까? 일하는 엄마로 살면서도 나를 지키고 싶었던 어느 엄마의 퇴사 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