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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밀밀 Jan 07. 2019

남편을 구출하고 싶었다

[엄마의 퇴사11] 회사 노예 남편의 어린이집 적응기

아이를 공동육아 어린이집에 보내기로 했다고 하자 주변 사람들은 걱정했다. 부모가 신경 쓰고 참여해야 할 일이 많아서 맞벌이 부부에게는 쉽지 않을 거라고.


부모협동조합 형태로 운영되는 공동육아 어린이집은 부모가 조합원이 되어 어린이집 운영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부모의 품도, 비용도 일반 어린이집에 비해 많이 들지만 먹거리와 보육의 질을 믿고 맡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양질의 공공보육시설이 턱없이 부족한 나라에서 부모들은 자구책을 찾는 수밖에 없다.


아이는 생후 24개월이 되는 6월 새로운 어린이집에 입학할 예정이었다. 어린이집 적응기간은 기본 2주. 상황에 따라 더 걸릴 수도 있다고 했다. 한숨이 나왔다. 나는 이미 아이 독감 때문에 1월부터 일주일 휴가를 통으로 쓴 상황이었다. 앞으로도 급하게 휴가 쓸 일이 많을 텐데 2주나 휴가를 낼 수는 없었다. 그만큼 휴가가 남아 있지도 않았고.


열심히 머리를 굴리다 보니 뭔가 이상했다. 왜 나만 어린이집 적응을 시켜야 하지?


 




엄마만 있는 어린이집


어린이집과 관련된 모든 일의 주체는 엄마였다(이미지 출처 : unsplash)


어린이집과 관련된 모든 일의 주체는 엄마였다. 남편은 등원, 나는 하원을 담당했는데 선생님은 엄마인 나와만 소통했다. 아이가 어린이집 오기 전에 어떤 상태였는지, 그 시간에 이미 출근한 나는 알지 못한다. 그런데도 선생님은 내게만 연락했고 나는 남편에게 연락해서 알게 된 내용을 다시 선생님에게 전달했다. 물론 선생님 입장에서는 한 사람과만 소통하는 게 효율적이었겠지만.


어린이집 수첩은 늘 내가 챙겼고 모든 전달 사항은 내가 숙지했다. 면담도 선생님과 이야기하기 편한 내가 갔다. 매일 등원을 시켰지만 남편은 선생님과 거의 대화를 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 회사 계속 다닐 거면 나랑 그만 살자”고 선포한 후, 상황의 심각성을 깨달은 남편은 약속했다. 워라밸을 지킬 수 있는 다른 직장을 알아보겠다고. 하지만 이직이 어디 그리 쉽나요. 나는 한 가지를 더 요구했다. 6월에 육아휴직 내고 어린이집 적응시키라고. 안 그럼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른다고.


아이가 처음 가정형 어린이집 갈 때는 내가 육아휴직 기간이라 어린이집 적응을 시켰다. 낮잠과 점심시간 등 생활패턴을 겨우 맞췄더니 아이는 계속 감기에 걸려왔다. 안정적으로 어린이집 생활을 하기까지 한참 걸렸다. 두 번째 적응 기간은 남편이 주도적으로 참여했으면 했다. 남편은 무슨 자신감인지 알겠다고 했다. 걱정 말라고.


6월이 다가올수록 불안해졌다. 남편 회사 직원이 2000명인데 육아휴직 냈다는 남자 직원은 찾기 어려웠다. 누가 육아휴직 냈다고는 하던데(그 후 어떻게 됐는지 모른다)라는 풍문이 돌 뿐이었다. 전통적으로 남성이 압도적으로 많은 직군이었고 밤샘과 과노동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회사였다. 워라밸이 뭔지도 모르는 회사에서 과연 육아휴직을 받아줄까.


육아휴직 복직 후 나는 늘 남편의 회사 스케줄에 모든 걸 맞췄다. 아이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가장 먼저 달려가는 사람도, 휴가를 내는 사람도 늘 나였다.


처음에는 남편 회사는 아이 때문에 시간을 내는 게 어렵고, 우리 회사는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회사 문화가 달라서라고. 시간이 흘러 생각해보니 단지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다. 나는 엄마니까, 육아에 대한 1차적 책임은 내게 있다고 나도 모르게 생각하고 있었다. 육아는 당연히 엄마 아빠 함께 하는 거라고 말해온 내가 말이다.


한편으로는 커리어에 올인 할 수 없는 나와 달리 남편이라도 돈을 안정적으로 벌어야 하지 않겠냐는 현실적 고려도 있었다. 육아 때문에 커리어에 차질이 생겨버린 나와는 달리 남편은 꾸준히 커리어를 쌓아가고 있었다. 연봉도 나보다 훨씬 많았다. ‘나는 이미 망했으니 너라도 살아남아라’는 심정이랄까.


 




쓸 수 있을까, 육아휴직


나는 남편을 돈만 벌어오는 사람으로 만들고 싶지 않았다(이미지 출처 : unsplash)



'육아휴직 안 내면 끝'이라고 초강수를 뒀지만 속으로는 계속 걱정됐다. 괜히 회사에 밉보이는 것 아닐까. 설마 잘리지는 않겠지. ‘그냥 내가 회사에 사정 이야기 해볼까’ 소리가 목끝까지 차올랐다.


그러다 이내  마음을 고쳐먹었다. 회사 상황에 계속 맞추다 보면 우리는 계속 이런 식으로밖에 살 수 없다. 아이가 나와 남편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시간은 길어야 10년. 그 시간 동안 아이와 많은 시간을 보내며 추억을 쌓고 싶었다. 나뿐만 아니라 남편도 함께. 이번 육아휴직이 그 계기가 됐으면 했다. 언제까지 남편의 커리어를 지키기 위해 나와 아이가 희생할 수는 없었다.  


한동안 남편의 야근이 몇 달씩 이어질 때는 '그냥 남편을 없는 사람이라 생각하자' 다짐했다. 남편에게 아무런 기대를 하지 말자고. 그래도 우리 남편은 등원이라도 시켜주니 그게 어디냐고 위안 삼았다. 적어도 맘카페에 등장하는 남편들보다는 낫지 않냐고. 맘카페에서는 남편을 밖에서 돈이나 벌어오고 집에서는 잠이나 자는 사람, 철없는 큰 아들 취급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게 정신건강에 좋다고.

 

“‘이게 사는 걸까?’ 혼자 아이를 보는 괴로움보다 가족을 이루고 아이를 낳았는데, 이렇게밖에 살지 못한다는 사실이 견딜 수 없었다. 생명을 키우기 위해 부부가 합심해 시간 내고 정성을 들이는 일이 왜 불가능할까? 숨이 막히고 몸이 굳어지곤 했다. ‘다들 그렇게 살아.’ 아니,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 신나리, <엄마 되기의 민낯> p.228(e북)


그런데 남편을 포기하려 할수록 비참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남편을 돈만 벌어오는 사람으로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건 내게도 남편에게도 아이에게도 너무 슬픈 일이었다. 남편을 구출하고 싶었다. 남편은 내 배우자이기 이전에 나와 가장 가까운 친구이기도 하니까. 더불어 남편의 용기가 다른 아빠들에게도 힘을 주기를 바랐다.


그러기 위해서는 남편의 커리어에 어느 정도 지장이 생기는 것도 감수해야 했다. 그로 인한 경제적 부담도. 생각해보면 고작 1달 육아휴직인데 남편도 나도 매우 비장했던 것 같다.


결과적으로 남편은 육아휴직을 쓰지 못했다. 대신 직장 상사는 유연근무를 제안했다. 2주간 업무를 최소화 하면서 집에서 일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어이가 없었다. 법으로 정해져 있는 육아휴직을 왜 못 쓰냐며, 다시 가서 이야기하라고 했다.


남편은 곤란해 했다. 회사에서는 나름 자신을 배려해준 거라고. 육아휴직 하면 월급도 줄어드는데 어쩌면 다행 아니냐고. 어린이집 적응 기간은 무슨 일이 있어도 책임지겠다고 말했다. 나는 물러섰다. 남편에게 투사가 되라고 강요할 수는 없었다. 남편으로서는 그게 최선이었다.


남편은 우수사원상을 받아서 얻은 휴가까지 더해서 3주간의 어린이집 적응기간을 무사히 마쳤다. 아이와 나란히 손잡고 등원해 나들이 가고 점심 먹고 낮잠 자는 과정을 함께 했다.  


그 후 육아에서 나와 남편의 관계는 완전히 역전됐다. 아이는 완전 아빠 껌딱지가 됐다. 아이는 엄마보다 아빠를 더 좋아한다. 어린이집 하루 일과는 어떻게 흘러가는지, 아이는 어린이집에서 어떤 모습인지, 어린이집 어디에 뭐가 있는지, 어린이집 사정을 나보다 훨씬 잘 알게 됐다. 어린이집 다른 아이들과도 많이 친해졌다.  


남편이 다시 출근하기 전날 밤, 남편에게 물었다. 어땠냐고. 남편은 말했다.


 

“힘들었는데... 이제 아들의 사랑을 얻었지.”



사람들은 말했다. 남편이 일 열심히 한 죄밖에 더 있냐고. (나같은 아내를 만난) 남편이 불쌍하다고. 남자가 육아할 수 없도록 하는 사회가 문제 아니냐고. 물론 사회구조를 개선하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개인이 구조에 균열을 내지 않는다면 사회는 결코 바뀌지 않는다.


남편이 남은 육아휴직을 꼭 쓸 수 있기를 바란다.  



[엄마의 퇴사] 기자 9년차, 엄마 3년차. 직장맘으로 사는 일상은 매일이 장애물 넘기다. 죽도록 노력하는데 회사에도 아이에게도 늘 미안하기만 하다. 엄마에게 일과 육아 중 하나만 선택할 것을 요구하는 시대. 일도 육아도 적당히 하며 살 수는 없을까? 일하는 엄마로 살면서도 나를 지키고 싶었던 어느 엄마의 퇴사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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