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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밀밀 Apr 18. 2023

그래서 번아웃을 극복했냐고요?

1년 안식년, 그 후

1년의 안식년 끝에 저는 번아웃을 극복했을까요.


얼마 전에 자기 전에 갑자기 가슴이 답답하고 막 두근두근 뛰더라고요. 잠이 잘 오지 않고요. 그때 ‘또?’라는 좌절감보다는 ‘이건 신호다'라는 담담한 마음이 들더라고요.


첫 번째 회사 다닐 때 아침에 일어나서 목이 안 돌아가는 날이 몇 달에 한 번씩 있었어요. 잔뜩 긴장된 상태로 하루종일 모니터를 들여다보고 있으니 목, 어깨 쪽 근육이 경직돼서 급기야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 된 거죠. 남편이 손을 잡아줘야 침대에서 몸을 일으킬 수 있을 정도였어요. 몸을 왼쪽, 오른쪽으로 돌리는 것도 어려워서 눈물이 줄줄 났죠.


도수치료도 받아보고 한의원에 가서 침도 맞아보고 정형외과 가서 신경주사도 맞고. 몇 번이나 그렇게 고생을 하고 나서는 목이 안 돌아가는 상황이 되기 전에 먼저 ‘감’이 오더라고요. ‘아, 이러다 또 목이 안 돌아가겠구나' 하고요. 그때부터는 목이 안 돌아가는 지경이 되기 전에 자세를 바로 잡고, 중간중간 쉬어주고, 운동을 하려고 해요. 무엇보다 수시로 목과 어깨에서 힘을 빼려고 합니다.


번아웃도 비슷한 것 같아요. 몇 번의 번아웃을 세게 겪고 나서 이렇게 나를 몰아붙이다가 또다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오리라는 걸 이제는 알아요. 그 상태가 ‘이러다 그냥 말겠지’ 정도가 아니라 얼마나 괴로운 상태가 될 수 있는지도요.


무엇보다, 뭔가에 집착하게 되고 자꾸만 반응을 기다리고 또 다른 자극을 찾게 되는 상황의 반복이 내게 행복을 가져다주지 않는다는 걸 이제는 알 것 같아요. 내가 좋아하는 일을 미워하지 않고 즐겁게 하기 위해서는 의식적으로, 습관적으로 빈틈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도요. 물론 아는 것과 실천은 늘 별개의 문제지만요.


최근에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를 읽었어요. 높은 신분으로 태어나 인정받는 삶을 살던 싯다르타는 자아의 속박에서 벗어나 모든 것에서 초탈한 상태가 되기 위해 수행을 계속하는데요. 정신적 가치를 추구하는 사문이 되어 고행을 하기도 하고, 세속의 세계에 들어가 욕망을 추구하고 물질적 풍요로움을 누리기도 해요. 그러다 모든 것의 부질없음을 깨닫고 강물에 몸을 던지려 하는 순간, 싯다르타는 윤회를 경험하게 돼요.


백발의 노인인 싯다르타는 ‘젊고 기쁨에 가득 찬 어린 아이' 같은 상태가 되는데요. 위로 계속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역행하게 된 상황에 기막혀하던 싯다르타는 흐르는 강물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렇게 혼잣말을 할 때 그의 시선은 강물 쪽으로 향하였는데, 강물 역시 밑으로 내려가고 있는 것을, 언제나 밑으로 흘러 내려가면서 노래 부르고 흥겨워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 사실이 아주 마음에 들어서 그는 강물에 다정하게 미소를 보냈다.”


이 대목을 읽으면서 왜 계속 위로 올라가는 것만을 성장이라 생각했을까 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밑으로 내려가면서 더 넓어지고 깊어질 수도 있는데도요. 집착과 불안이 찾아올 때마다 계속 내려놓고, 한 템포 쉬어가려 연습하려 해요. 그렇지 않으면 제가 원래 갖고 있던 익숙한 습관이 저를 뒤덮을 테니까요.


아무튼 이 글을 쓰게 된 것은 제가 <좋은 생각> 5월 호에 글을 실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인데요 ㅎㅎㅎ


청탁 메일에서 ‘번아웃을 극복한 과정'에 대해 써달라고 했는데 ‘내가 번아웃을 극복했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번아웃을 극복한 과정은 쓰지 못했고 지난 1년의 공백의 시간이 제게 어떤 의미를 가져다줬는지 써봤습니다. 잡지는 온오프라인 서점에서 구입하실 수 있어요.



귀여운 일러스트:) @좋은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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