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읽는 여자] 어느 도파민 중독자의 고백
내 책상 위에는 일명 ‘뽀모도로 타이머'라고 불리는 손바닥보다 작은 타이머가 올려져 있다. 일정 시간을 설정해 두면 시간이 줄어드는 것이 시각적으로 보이고 설정 시간이 끝나면 알람이 울리는 타이머다. 시간을 직관적으로 인식할 수 있어서 집중해서 작업할 때 도움을 주는 ‘갓생템'이다. 어느 프리랜서 번역가는 40분 동안 집중해서 일하고 20분 동안 쉬는 루틴을 하루 8번 반복하는 방식으로 일한다는데 나는 40분은 무슨. 야심 차게 타이머를 맞췄다 집중력이 희미해져서 시간을 확인해 보면 겨우 10분 정도 지나 있다. 유리 같은 집중력을 가진 나는 무슨 딴짓을 하느냐. 숨 쉬듯 SNS에 접속한다.
애증의 인스타그램을 제치고 요즘 가장 많이 들어가는 앱은 X(구 트위터). 대중문화를 사랑하는 케이팝 프로텍터로서 덕질하고 있는 최애의 새로운 떡밥이 올라왔는지 수시로 점검하고, 에스파 ‘수퍼노바' 뮤비 해석을 읽고, 민희진과 뉴진스의 미래에 대해 고민하다 보면 10분이 뭐야. 시간이 그렇게 빠르게 흐를 수가 없다. 케이팝은 왜 이리 매일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떡밥이 끊이지 않으며 트위터에는 왜 이리 촌철살인 글발을 가진 사람이 많은지.
익명의 누군가와 연결되어 재미있고 흥미로운 소식을 소비할 때마다 도파민이 마구 분출되는 듯했다. 명색이 콘텐츠로 밥 먹고 사는 사람인데 대중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흐름을 파악해야 한다는 자기 합리화는 덤. 하지만 ‘SNS는 10을 얻으러 들어갔다 90을 잃고 오는 곳’이라는 말처럼 즐거움에는 괴로움도 수반됐다. 먼저 현생에 지대한 지장이 생겼다. ‘(트위터 보다가) 내가 지금 이럴 때가 아닌데-(트위터 보다가) 현실에서 할 일을 해야 하는데-(트위터 보다가) 나는 왜 이리 자제력이 없을까'라는 욕망과 자책의 무한 루프가 반복됐다. 영원히.
트위터에는 유용한 정보, 통찰력 있는 해석도 있었지만 도를 넘는 분노와 조롱도 빠르게 확산됐다. 어떤 날은 타임라인을 따라가기만 할 뿐인데 인간에 대한 환멸이 느껴지면서 ‘내가 이걸 왜 보고 있나'라는 현타가 왔다. 이 자극이 결코 달콤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또 다른 자극, 새로운 자극을 갈망했다. 트위터 앱을 삭제했다가 다시 앱을 설치하기를 반복했다. <도둑맞은 집중력>으로 독서 모임을 하고 스마트폰을 멀리 치워두고 뽀모도로 타이머를 구입해도 효과는 아주 잠깐뿐. 현실이 불안하고 무료할 때마다 나는 손쉽고 익숙한 자극으로 도망쳤다.
박미소 작가가 쓴 <다이어트, 배달 음식, 트위터>는 쾌감과 죄책감을 동시에 안겨주는 길티 플레저에 대한 고백을 담은 책이다. 알코올 중독 경험에 대한 책을 내기도 했던 그는 “쾌감을 좇다가 죄책감에 몸부림치는 유형의 인간"이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왜 자꾸 이러는 걸까? 왜 나 자신을 통제하지 못할까? 이유는 이미 알고 있다. 트위터를 그만두기로 결정하긴 했지만 현실에서 도피하려는 내 성향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기에 결국 의존 대상만 바뀌었다. 인스타그램 앱을 지우면 페이스북을 할 거고, 그것마저 지우면 검색 포털 사이트에서 쇼핑 카테고리를 미친 듯이 스크롤할지도 모른다.- 박미소, <다이어트, 배달 음식, 트위터>
음식, 다이어트, 쇼핑, SNS… 박미소는 책에서 자신의 중독 경험을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적당히 하고 멈춰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알면서도 “끌림의 행동과 후회의 연쇄 반응"을 되풀이하며 “매번 지는 싸움”을 반복했던 과정에 대해. 저자의 몸부림이 안타까우면서도 ‘나만 이렇게 사는 게 아니구나'라는 안도감이 들었다. ‘민간인 사찰을 제발 멈춰주세요!'라고 외치고 싶을 정도로 구구절절 공감하면서 읽었다. “왜 참지 못했을까"라는 후회와 자책에서 벗어나, 작가는 보다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오늘날의 즐거움에는 왜 대개 죄책감이 동반되는 걸까?”
<나 혼자 산다>에서 ‘팜유 패밀리'는 먹방과 바프(바디 프로필 촬영)라는 모순된 미션을 동시에 소화한다. 이는 양가적인 사회적 요구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의 삶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과식과 탐식을 부추기는 콘텐츠는 넘쳐나지만 자기 관리라는 명목으로 절식과 다이어트를 해야 하고, SNS를 통해 적극적으로 퍼스널 브랜딩을 하고 트렌드를 읽어야 하지만 SNS에 과몰입하지 않는 갓생을 살아야 한다(SNS에서 가성비 갓생템 정보를 얻고 SNS에 갓생 인증을 올리면서).
‘좋아 보이는 것', ‘당장이라도 더 나은 나를 만들어줄 것처럼 보이는 것'에 대한 정보는 필요 이상으로 쏟아지고, 기술의 발전은 쇼핑을 하고 SNS에 접속하는 행위를 지나치게 매끄럽고 쉽게 만든다. 그럴수록 자기 절제는 더욱 어려워진다. 애초에 이건 일개 개인이 이길 수 없는 게임일지도 모른다.
박미소는 자본주의가 구축한 소비문화 속에서 길티 플레저의 유혹은 불가항력적이라고 지적한다. 사회와 무관한 개인은 없기에 우리의 욕구와 충동은 온전히 개인에게서 파생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죄책감은 개인의 몫으로 남는다. 박미소는 고백한다. “대다수 중독자는 쾌락주의자가 아니라 자학을 거듭하는 사람들"이라고. 자학이라는 말이 슬프고 아팠다.
유혹은 모습을 달리해서 계속 몰려올 것이다. 눈치 채지 못하는 사이 유혹의 속도도 강도도 점점 거세질 것이다. “바다를 떠날 수 없는 이상, 파도를 타는 방법을 궁리해야 할 뿐"이라는 박미소의 말처럼, 약도 주고 병도 주는 길티 플레저의 바다에서 우리는 파도를 타며 살아가야 한다. 파도타기는 자포자기와 자학에서 벗어나 바다와 나의 성질을 이해하는 것부터 시작된다.
*<엘르 코리아> 디지털판에 '여자 읽는 여자'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3주에 한 번 글을 싣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