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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육자 29명과의 인터뷰

'나의 엄빠일지'를 마치며

by 홍밀밀
“나에게는 내가 엄마라는 사실이 심장 중심에 있기 때문에 글을 쓰기 위해 해야 할 일들을 할 때면 가끔은 내가 끔찍한 엄마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괴물이라고 느껴진다.” -클레어 데더러 <괴물들>


‘나의 엄빠일지’ 마지막 원고를 마감하던 날, 여행 중이었던 나는 아이를 남편에게 맡겨두고 글을 쓰기 위해 홀로 카페에 나와 있었다. 전날에는 다른 원고를 마감하느라 아이와 카페, 식당, 서점을 전전하면서 글을 썼다. 여행지에서의 하루를 마치고 잠들기 전, <괴물들>을 읽었다. 글쓰기가 아이들만큼이나 중요한 스스로를 ‘괴물’이라고 느끼는 여자들의 이야기에 책이 닳도록 밑줄을 긋고 귀퉁이를 접었다.


아이가 10살이 되었지만 여전히 나는 ‘육아’와 ‘일’ 사이에서 갈등한다. 지금은 집중육아기 때만큼 아이가 엄마를 절대적으로 필요로 하지 않고, 그때의 나만큼 ‘나를 찾는 것’이 절실하지 않다. 그럼에도 ‘엄마’와 ‘나’라는 두 가지 역할을 어떻게 조율하며 살아갈 것이냐는 유형과 난이도가 실시간으로 바뀌는 문제 같다. 어떤 날은 이만하면 충분히 잘 살고 있다 싶다가도 어떤 날은 모든 게 다 잘못된 것 같아 마음이 성마른다.


스크린샷 2025-10-21 오전 8.13.47.png '나의 엄빠일지' 홈페이지 화면


다행히 내게는 지난 2년여의 시간 동안 정답이 없는 문제에 대해 조언을 구할 수 있는 동료들이 있었다. 지학사와 협업한 ‘나의 엄빠일지’ 인터뷰 시리즈를 통해 29명의 인터뷰이를 만났다. 2023년 7월 영차와 니노 부부에게 ‘자영업자 부부가 아이와 나란히 공존하는 법’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것을 시작으로, 주말마다 아이와 백패킹을 떠나는 아빠, 중증 장애아를 키우는 엄마, 아이 넷을 키우는 전업주부 아빠, 두 아이와 함께 석사유학을 떠난 엄마, 싱글대디 아빠, 자립준비청년 엄마, 로컬 크리에이터 아빠, 책방지기 엄마, 청소일 하는 아빠, 축구하는 엄마 등 다양한 이력과 서사를 품고 있는 엄빠들을 인터뷰했다. 전업주부, 자영업자, 마케터, 프리랜서, 군인, 배우, 개그맨, 경찰… 직업군도 다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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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샷 2025-10-21 오전 8.20.31.png 시간과 마음을 포개준 인터뷰이들


‘나의 엄빠일지’를 통해 만난 엄빠들은 어떻게 하면 ‘좋은 양육자’가 될 것인지뿐만 아니라 개인의 성장을 고민하는 사람들이었다. 인터뷰에서는 양육법보다는 양육자로서의 삶과 나의 삶이 공존하기 위해 무엇을 포기했고, 무엇에 집중했고, 어떤 선택을 내렸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싶었다.


하나의 정답이 아닌 ‘되어감’의 과정은 누군가의 삶에 구체적인 도움이 될 수 있다. 7년 전, 동료들과 함께 <마더티브>를 만들었을 때부터 내가 추구하는 콘텐츠의 방향성은 같다. 양육자들에게 ‘이렇게 해야 한다‘가 아니라 ’이렇게도 살아갈 수 있다’는 레퍼런스를 보여주는 것.


마지막 인터뷰이는 아이와 16년째 미술관에 다니고 있는 기록을 <리나랑 미술관>이라는 제목의 책으로 펴낸 강은정 @mm_lina 님이었다. 은정님은 아이와의 미술관 데이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다려주기’라고 말했다. 미술관을 처음부터 끝까지 제대로 봐야 한다는 강박을 내려놓고, 아이와 엄마의 속도에 맞춰 미술관을 즐기는 것. 양육자로 살아가면서도 명심해야 할 태도이다. ‘나의 엄빠일지’ 마지막 아웃트로는 이렇게 썼다.


563E25DB-4813-4B25-A748-D430CF55041A_1_105_c.jpeg @지학사 '나의 엄빠일지' 이민정


“리나 엄마로 살아오면서 은정씨가 가장 잘한 일로 꼽는 것은 동물원에서, 미술관에서 아이를 기다려준 순간들이다. 책 <리나랑 미술관>에는 미술관에서 시간을 보내는 리나의 수많은 뒷모습이 담겨 있다. 아이의 등 뒤에서 수없이 셔터를 눌렀을 은정씨의 모습이 겹쳐져 마음이 뭉클해진다. 아이와 엄마의 속도는 자주 어긋난다. 하지만 서로 발을 맞추며 같은 방향을 향해 걸어갈 때, 우리의 이야기는 더 자주 겹쳐지고 포개질 수 있다. 은정씨와 리나가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 #리나랑미술관 해시태그에는 어떤 장면이 기록될지 궁금하다.”


소중한 시간과 마음을 포개어준 인터뷰이 분들, 유쾌하고 든든한 동반자였던 민정님, 한곁 같은 신뢰를 보내준 전략마케팅팀 남우 팀장님과 은영님 모두 감사했어요.



<리나랑 미술관> 저자 강은정님과의 인터뷰

'나의 엄빠일지' 인터뷰 시리즈

인터뷰 비하인드



프리랜서 에디터로 일합니다. 문의 및 제안은 hong69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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