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전 알았다면 좋았을 것들] 일이 삶을 잠식할 때
목에서 쇠맛이 날 것 같은 날이 있다. 한껏 좁아진 목구멍을 비집고 독하고 날 선 말이 나오려 하는 날. 얼굴은 아무렇지 않은 척 웃고 목소리는 들떠있지만 가슴은 사정없이 쿵쾅댄다. 이 말을 해도 될까, 안 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입에서 나오는 말을 막아보려 해도 목소리는 이미 목구멍을 떠난 후다.
그날도 그랬다. 모든 게 다 지긋지긋하다고, 나는 할 만큼 했다고. 힘들게 함께 고생해온 동료들에게 못된 말을 쏟아부었다. 내가 말을 하는 건지 주인을 알 수 없는 말이 내 입을 빌려 나오는 건지. 한껏 높아진 목소리에서 쇳소리가 났다. 마주 앉은 팀원들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렇게 진심인 듯 진심 아닌 진심 같은 독설을 내뿜고는 마음이 무거웠다. 상처 받았을 동료들이 마음에 걸렸다. 나는 왜 이것밖에 안 되는 걸까, 앞으로 나는 뭘 해야 하나 머릿속이 복잡했다.
후회와 두려움이 뒤섞인 오후, 아이와 키즈카페에서 놀고 있는데 오래된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계절이 벌써 3월인데 친구는 뒤늦은 새해인사를 했다. 잘 살아? 난 잘 살지. 무미건조한 안부 인사를 주고받았다.
사실은 그동안 퇴사했고 지금은 어떻게 살고 있어, 말을 할까 말까 잠시 고민했다. 메시지를 길게 썼다 결국 지우고 영혼 없는 답장을 했다. 다음에 이야기하면 될 거라고 생각했다. 상황이 좀 더 정리된 후에. 여유가 좀 더 생긴 후에. 다음에. 우리에게 시간은 많으니까.
그러고 끝이었다. 정말로 끝. 한 달 후 친구는 세상을 떠났다. 더 이상 나는 친구를 볼 수 없다. 어떤 연락도 주고받을 수 없다. 다음은 없었다.
친구와 마지막으로 나눈 카톡을 몇 번이고 들여다본다. 뭐가 그렇게 사는 게 바빠서 이 따위 답장밖에 못 했던 걸까. 뭐 그리 대단한 일을 하며 산다고.
퇴사 후 단 하루도 마음 편히 푹 쉬어본 적이 없었다. 늘 정신없고 여유 없었다. 증명하고 싶었다. 언론사 이름과 기자라는 직업을 빼도 내가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아니라는 걸.
퇴사 3개월쯤 되자 몸이 한두 군데 다시 고장 나기 시작했다. 회사 다닐 때부터 고질병이었던 목 어깨 통증이 다시 시작됐다. 마음도 고장 났다. 늘 불안을 달고 살았다.
아이가 아파 어린이집에 보낼 수 없는 상황이 될 때면 불안감은 더 커졌다. 이러다 애 보느라 일도 못 하고 집에만 있게 되는 건 아닐까. 아무도 안 찾아주는 사람이 되면 어쩌지. 세상에서 잊힌 존재가 되는 게 두려웠다. 아픈 아이가 원망스럽고 바쁜 남편이 원망스러웠다.
그렇게 열심히 일하면서도 ‘무슨 일 하세요?’라는 질문 앞에서 늘 초라해졌다. 말로는 새로운 일의 유형, 새로운 롤 모델을 만들겠다 했지만 나조차도 내가 하는 일을 당당히 ‘일’로 인정하지 못했다. “일을 하기는 하는데... 제가 예전에는 어떤 일을 했는데...” 자꾸만 설명이 구차해졌다.
일을 잘하고 싶었다. 우리는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일하며 보내고 있고, 그 시간이 내게 의미 있고 효능감을 주는 시간이기를 바라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유능한 사람, 일을 통해 성장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퇴사를 한 것도 회사를 다니기 싫어서가 아니라 일을 더 잘하고 싶어서였다.
나만이 할 수 있는 일, 나만 잘할 수 있는 일을 만들고 싶었다. 그게 중년이 되고 노년이 되어서도 내 무기가 되어줄 거라고 생각했다. 평생직장이 사라진 유병장수 시대, 인생은 너무 길고 막막했다. 인생 이모작이 아니라 3모작 4모작을 대비해야 했다. 그러려면 지금부터 부지런히 움직여야 했다.
삶에서 일의 비중이 점점 커질수록 다른 것들은 방해물처럼 느껴졌다. 창업 후에는 일과 삶이 전혀 분리되지 않았다. 가족여행 가서도 나는 기획안을 떠올리고 수익모델을 고민하고 있었다.
일도 육아도 하고 싶어서 퇴사했지만 어느새 육아는 지루한 일, 시간 아까운 일처럼 느껴졌다. 어린이집에 아이를 데리러 가는 시간이 점점 늦어졌다. 집에 데리고 와서도 빨리 아이가 잠들기만을 기다렸다. 그즈음 아이와 나눈 대화들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남편이 야근할 때면 너무 화나고 억울했다. 내 시간을 빼앗아가는 것 같았다. 남편도 새벽까지 야근하랴, 아침에 아이 챙기느라 지치고 힘들었을 텐데. 남편을 배려할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아이가 없었다면, 남편이 없었다면 더 잘 일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 적도 있다.
일과 삶이 분리되지 않았을 때, 일이 내 삶의 모든 것이 되었을 때, 일은 삶을 잠식해버렸다. 결국은 소중한 사람들과 삶을 잘 꾸려가기 위해 일하는 건데, 일 때문에 소중한 사람을 챙기지 못했다.
일은 때때로 일하고 있는 나 자신을 소외시키기도 했다. 사람들은 무슨 일을 하느냐로 그 사람이 누구인지를 판단한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처음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이 무슨 일을 하는지, 혹은 했는지 가장 궁금하다. 일은 중요한 정체성이다.
그 일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거나 만족할만한 성과를 못 냈을 때, 타인의 인정을 받지 못했을 때, 내 삶 자체가 의미 없어진 것 같은 기분을 자주 느꼈다. 일이 곧 나도 아닌데 말이다. 나는 일하는 사람이기도 했지만 엄마이자 아내였고 딸이었고 누군가의 친구였고 무엇보다 내 자신이었는데.
“그때 내가 왜 하루하루 더 즐겁게 걷지 못했을까. 다시 오지 않을 그 소중한 시간에 나는 왜 사람들과 더 웃고 떠들고 농담하며 신나게 즐기지 못했을까. 어차피 끝에 가서는 결국 아무것도 없을 텐데. 내 삶도 국토대장정처럼 길 끝에는 결국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인생의 끝이 ‘죽음’이라 이름 붙여진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무’라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루하루 좋은 사람들과 웃고 떠들며 즐겁게 보내려고 노력하는 것뿐일 테다.” 하정우, <걷는 인간> p.39(e북 기준)
얼마 전 일의 무게가 너무 버거워 몸도 마음도 아프다는 친구를 만났다. 나는 친구에게 말했다.
“가볍게 살아. 니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에 너무 힘 빼지 마. 너무 애쓰지 마. 니가 할 수 있는 일에 몰두해. 인생 생각보다 그렇게 안 길지도 몰라. 당장 내일 죽을 수도 있어. 너도. 나도.”
지금도 친구와 마지막 카톡을 주고받던 봄날로 수십 번, 수백 번 돌아간다. 내가 해결할 수 없는 일을 붙들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아등바등하며 다른 사람을 괴롭히고 나를 괴롭히고 소중한 사람들을 챙기지 못했던 날에 대해.
두 번 다시는 나를, 내 사람들을 그런 상황에 밀어 넣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일이 삶을 집어삼키지 않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