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사업계획서를 썼다
혼돈의 한 달이었다. 스트레스 때문에 달다구리를 과다복용했더니 얼굴은 보름달, 옆구리는 묵직. 사진 속에 내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이 후덕하고 초췌한 사람 누구?
늘 잠이 고팠고 자면서도 애를 보면서도 오직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어떻게 하면 돈 벌 수 있을까. 정확히는 어떻게 하면 콘텐츠로 돈 벌 수 있을까.
친정엄마는 말했다(브런치 단골 출연자^^)
“니같이 돈 욕심 없는 애가 돈을 어떻게 벌겠노. 돈도 돈 욕심 있는 애가 버는 거야.”
돈 다루는 일을 하는 남편은 말했다.
“돈 욕심 없다는 사람이 제일 무서운 거라고 했어. 돈 욕심 없는 사람은 돈에 미친 사람이라고.”
마더티브는 수익창출을 목표로 하는 콘텐츠 스타트업이다. 하지만 아직 사업자 등록도 하지 않았고 구체적으로 어떻게 돈을 벌지에 대한 고민을 치열하게 해 본 적도 없었다(한 달 전까지는). 그저 ‘우리가 만들고 싶은 좋은 콘텐츠 만들면서 돈도 벌면 좋겠다’는 나이브한 마음이었다.
퇴사한 나를 포함해 마티 멤버 모두 언론사에서 일했지만 한 번도 돈 버는 경험을 해본 적이 없었다. 돈은 광고부서에서 버는 거고, 나는 고고하게 기사 쓰고 편집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콘텐츠와 돈을 철저히 별개로 봤다. 무릇 언론인이란 그런 거 아닌가. 회사 홈페이지 중간중간 뜨는 광고를 볼 때면 눈살을 찌푸렸다. 내 월급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생각도 못한 채.
나는 진보 매체에서 일하고 있으니 월급을 적게 받아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돈 벌기 위해 쓰기 싫은 기사 안 써도 되니까. 소신 지키며 일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했다. 다행히 나는 돈 욕심도 별로 없었다(정확히는 돈 개념이 없었다).
내가 ‘선비의식’에 멈춰있는 동안 미디어 시장은 급변하고 있었다. 의미 있고 재미도 있는 콘텐츠를 만들면서 돈도 버는 콘텐츠 스타트업이 하나 둘 생겨나고 있었다. 이제는 콘텐츠 만드는 사람도 수익 모델을 함께 고민해야 했다. 그래야 지속 가능한 콘텐츠를 만들 수 있으니까.
당장 나만 해도 그렇다. 퇴사 후 1년은 수익에 대한 고민 없이 퇴직금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이렇게 계속 돈 못 버는 상황이 계속된다면 마더티브를 접고 재취업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
서론이 길었다. 한 달 전, 두 번째로 ‘마더티브 사업계획서’를 쓰게 되는 일이 있었다. 지난해 투자심사에서 보기 좋게 떨어진 후로 두 번째였다. 이 상황을 정확히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이번에도 일종의 투자심사였다.
목적과 비전/ 시장 문제 및 상황/ 해결 방안/ 강점
까지 쭉쭉 써 내려갔다. 지난번보다 확실히 명확해졌다. 우리가 어떤 독자들을 타게팅하는지 그들이 갖고 있는 어떤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고 싶은지. 마더티브를 처음 만들 때는 우리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려고 했다면 이제는 우리가 타게팅으로 하는 독자가 어떤 이야기를 듣고 싶은지 좀 더 주목하게 됐다(이 과정이 정말 쉽지 않았다).
자 이제 수익 모델. 지난번 사업계획서는 이 내용을 거의 빈칸으로 냈다(주절주절 쓰기는 했지만 우리도 확신이 없었다). 이번에는 제대로 해보고 싶었다. 에디터 주영이 BM(Business Model)이라는 말을 쓰는 순간 다들 ‘오! 있어 보여~’하며 감탄했다. MB밖에 모르던 사람들이 BM이라는 말을 쓰다니!
남편에게 애 맡기고 모이고, 키즈카페에 애들 데리고 모이고, 남편에게 도우미 일당 지급하고 애들 데리고 집에서 모이고, 스카이프도 하고... 있는 시간 없는 시간 모두 끌어 모아 회의, 또 회의를 했다. 성과지표를 만들고 매출목표를 세웠다. 손에 쥐어본 적도 없는 돈이 벌써 우리 돈이 된 것 같았다. 우리 사업계획서를 본 남편은 말했다.
“나 그럼 이제 회사 그만두고 집에서 애 보고 살림해도 되는 거야?”
하지만 숫자를 만들면 만들수록 공허한 느낌이 들었다. 물론 지속 가능한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서는 돈을 벌어야 한다. 돈 버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저 큰 숫자를 만들기 위해서는 우리의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올인해야 한다. 당연히 아이와 함께 보내는 시간은 줄어들 것이다.
당장 사업계획서 만들고 투자심사받았던 지난 한 달을 떠올려봤다. 할 일은 많은데 애는 봐야 하니 영혼 없이 아이와 시간을 보냈다. 아이에게 짜증 내는 일이 많아졌다. 시간, 시간이 부족했다.
9년 가까이 다니던 안정적인 회사를 떠나 마더티브를 만든 이유는 일도 하고 애도 보기 위해서였다. 나에게는 일도 중요하지만 아이와 함께 있는 시간도 소중했다. 여기에는 개인적인 경험도 반영돼있다. 나는 10살 이후 더 이상 엄마를 따라다니지 않았다. 엄마 아빠랑 같이 있는 시간보다 혼자 있는 시간이 좋았다. 10년, 딱 10년이 내가 엄마 아빠를 절실히 필요로 했던 시간이었다.
내 아이가 나와 같으리라는 보장은 없지만 적어도 10년 동안은 아이와 시간을 충분히 보내고 싶었다. 아이는 어제가 다르고 오늘이 다르다. 아이가 새롭게 하는 말을 기록하고, 아이가 커가는 모습을 세심하게 지켜보고 싶었다. 그러면서 내 일도 놓고 싶지 않았다. 다른 멤버들의 고민도 비슷했다. 우리는 마더티브를 통해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 보고 싶었다.
사람들은 말했다. ‘사업’은 그렇게 하는 게 아니라고.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High Risk High Return). 자신의 모든 걸 걸고 오르막길을 올라야 한다고. 그렇게 안 하면서 돈 벌 생각을 하냐고. 신기하게도 그 말을 한 사람들은 모두 남자였다.
"마더티브는 결혼과 육아를 하면서도 나를 지키고 싶은 여성들에게 위로와 공감,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려고 합니다. 나아가 결혼과 육아가 더 이상 나를 잃어버리는 불행한 일이 되지 않도록 결혼과 육아의 패러다임을 새롭게 써보려고 합니다."
사업계획서에 썼던 마더티브의 목표를 들여다본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그냥 미들 리스트 미들 리턴만 해도 괜찮은데. 그런 사업은 세상에 없는 걸까. 나는 천천히 오래, 평지를 달리는 사람이 되고 싶다. 한 손에는 남편, 한 손에는 아이의 손을 잡고.
결국 우리는 사업제안을 철회했다. 아직은 때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좀 더 콘텐츠를 쌓고 내실을 다지면서 우리만의 방식으로 사업을 해나가려고 한다. 나를 지키면서. 조금 천천히 가더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