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여행] 우붓 ‘젤리 사건’의 전말
나는 민폐 끼치는 걸 극도로 싫어한다. 공공장소에서 시끄럽게 떠들거나 남에게 어떤 식으로든 피해를 주는 건 아이를 낳기 전이라면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되는 순간, 나는 내 의지나 노력과 상관없이 자주 민폐를 끼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세 돌 아이와 함께 하는 여행은 민폐의 연속이다. 비행기 탈 때부터 아이가 혹시 시끄럽게 떠들거나 앞좌석을 발로 차지 않을지, 갑갑하다며 복도를 뛰어다니지 않을지 노심초사다. 비행시간이 길어지면 영상도 달다구리도 무소용이다. 아이가 너무 울어서 화장실에 40분간 갇혀 있었다는 어느 엄마의 심정이 이해 갔다.
택시에는 카시트가 없다. 아이는 안전벨트를 계속 탈출하려 한다. 탑승시간이 길어지면 몸이 배배 꼬인다. 자리에서 일어나 방방 뛰다가 거꾸로 뒤집었다가... 아무리 꾸짖고 주의시켜도 그때뿐이다. 운전기사에게 미안하고 행여 사고가 날까 걱정된다. 나와 남편은 아이를 붙들며 고장 난 라디오처럼 “sorry”를 무한 반복한다. 택시만 타면 뒷목이 뻐근하고 속이 쓰리다.
특히 식당에 가면 나는 초긴장+초예민 상태가 된다. 아이가 두 돌 때쯤 됐을 때 파타야로 여행을 간 적이 있다. 그때만 하더라도 식당에서 아이에게 영상 보여주는 부모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냥 식사예절을 가르치면 되지, 저 어린애한테 벌써부터 스마트폰이야.
석양이 아름다운 바닷가 야외 레스토랑. 아이는 자꾸만 식탁 위로 올라가 저지레를 쳤다. 아이와 식탁이 동시에 위험한 상황. 우리는 ‘개념 있는’ 부모이므로 아이에게 “올라가지 않아요” “무서운 아저씨가 이놈~ 하면서 온다” 부드럽게 말하며 아이를 훈육하려 했다. 물론 아이에게는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아이가 두 돌이 안 됐을 때였다.
아이를 식탁에서 내려놓자 아이는 바닥으로 돌진해 뛰었다(그때나 지금이나 아이는 걷지 않는다. 오직 런!!!). 안으면 발버둥을 쳤다. 한껏 교양 있던 남편과 내 목소리 데시벨은 점점 높아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이의 저지레는 더 심해졌다.
진땀을 빼다 주위를 돌아봤다. 우리 옆 테이블에는 아무도 없었다. 바로 근처에 있던 외국인 가족은 우리에게서 멀찍이 떨어진 테이블로 어느 순간 이동해 있었다. 남편과 나는 당혹감에 얼굴이 벌게졌다.
그제야 왜 식당에 있는 모든 아이가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는지 이해가 갔다. 그때부터 우리는 아이와 식당에 가면 무조건 영상을 틀어준다. 물론 영상을 틀어준다고 아이가 쥐 죽은 듯 조용해... 질 리가 있나.
잘 보다가 몇 번씩이나 “이거 보기 싫어! 딴 거!”하며 짜증 내고, 메뉴를 고른 순간부터 내 밥은 왜 안 나오냐며 수십 번씩 물어본다. 주스를 엎지르고 수저를 떨어뜨리기도 한다. 밥을 다 먹은 순간부터는 어서 나가자고 난리를 친다. 나는 속이 부글부글 끓는다. 먹던 음식이 그대로 체할 것 같다. 오늘도 대낮부터 맥주를 벌컥벌컥 마신다.
가끔은 정말 억울하다. 저도 정말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애가 제 맘대로 안 된다니까요. 어딘가 써 붙여 두고 싶기도 하다. 아 나도 정말 우아하게 여행하고 싶다.
그날도 유모차를 끌고 우붓의 좁고 울퉁불퉁한 길을 걷고 있었다. 그냥 걸어도 힘든 길이었다. 우붓은 오토바이 천국이다. 언제 어디서 오토바이가 튀어나올지 몰랐다. 유모차는 남편이 끌었지만 땡볕 아래 좌우를 살피며 유모차 에스코트하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요리를 좋아하는 남편이 우붓에서 꼭 가고 싶었던 곳이 있었다. 질 좋은 나무 도마와 그릇을 저렴하게 파는 상점. 남편이 그릇을 구경하는 사이 아이는 상점을 휘젓고 다녔다. 이것저것 만져보더니 길쭉한 나무젓가락을 꺼내 결투를 신청한다(혈압...). 엄마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는 완전 신이 났다. 나는 아이를 쫓아다니며 제압을 시도했다. 행여나 물건을 망가뜨리지나 않을지 신경이 곤두섰다.
아이는 평소에도 에너지가 넘치지만 에너지가 하이퍼 상태가 될 때가 있다. 흥분이 흥분을 부르는 극도의 초흥분 상태. 그럴 때는 도저히 제어가 안 된다. 내가 잡을 수도 없게 빠른 속도로 전력질주를 하고 저지레를 치고 다닌다. 그럼 나는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게 될까 봐 또 속이 바짝바짝 탄다. 지금이 바로 그런 상태였다.
남편을 가게에 두고 아이와 밖으로 나왔다. 웬걸. 애가 그 무거운 문을 열고 또 들어간다... 나는 점점 말을 잃어갔다.
‘화내지 말자. 애한테 화내 봤자 무슨 소용이 있나. 애들은 아직 전두엽이 덜 발달돼서 그렇다고 하니까… 그냥 참자. 어른인 내가.’
타깃은 어른인 남편으로 옮겨갔다. 남편은 내 눈치를 보고는 얼른 계산해서 아이를 데리고 나왔다. 시원한 음료가 간절했다.
우붓에는 에어컨 없는 가게가 많았다. 좁고 울퉁불퉁한 길을 지나 카페에 들어갔는데 이건 뭐 바깥보다 더 덥다. 차가 쌩쌩 지나다니는 도로 바로 옆에 있는 야외 테라스에 자리를 잡았다.
아이스커피 좀 마시겠다는데 아이는 다른 데 가자고 징징댄다. 자기는 안 먹겠다고(안 먹기는 개뿔. 네가 안 먹는다 그러고 진짜 안 먹은 적 있냐). 단 거를 먹더니 기분이 좋아졌는지 또 유모차와 의자를 가지고 장난을 쳤다. 아이에게 혼을 내다 나는 습관처럼 또 주변을 의식했다.
으.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열이 받았다. 나는 손가방을 열어서 아이가 먹던 왕지렁이 젤리 봉지를 꺼냈다. 그러고는 아이에게 보란 듯이 젤리를 잘근잘근 씹어 먹었다. 네가 엄마 말 안 들었으니까 엄마도 마음대로 할 거라고. 이거 엄마가 다 먹을 거라고.
엄마의 이상행동(?)에 당황한 아이는 울고불고 눈물을 뚝뚝 흘렸다. 남편도 놀란 것 같았다. 그 모습을 보는데 너무 속이 시원하고 통쾌했다. 나는 깔깔대며 웃었다.
좋은 엄마. 그런 거 나랑 안 맞는다. 나도 나이 먹고 그냥 어른이 된 것뿐인데 늘 애한테 다 맞추고 참고 살 수는 없다.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볼까 생각하며 노심초사하는 것도 그만하고 싶다. 이 정도가 내 그릇이다. 한계를 인정하니 속이 후련했다. 남은 젤리를 질겅질겅 삼켰다.
가끔씩은 나도 헷갈린다. 내가 아이를 제지하고 훈육하는 게 정말 아이를 위한 건지, 다른 사람을 위한 건지, 아니면 내 사회적 체면을 위한 건지.
언젠가 외할머니는 아이가 노는 모습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내게 말했다. 너도 어릴 때 쟤 못지않았다고. 얼마나 별났는지 모른다고. 나도 언젠가는 아이처럼 아이였다. 민폐를 끼칠 수밖에 없는 존재. 우리 모두 그랬다. 까맣게 잊어버렸을 뿐.
피해 주기 싫어하는 사람이 피해받는 걸 좋아할 리 없다. 엄마가 되기 전, 나는 공공장소에서 아이가 조금만 시끄럽게 해도 눈을 흘기던 어른이었다. 서로에게 완전히 무해한 관계란 불가하다는 걸 그때는 몰랐다. 내가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는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것도.
"인간 사회는 민폐의 사슬이다. 인간은 나약하기에 사회성을 갖는다. 살자면 기대지 않을 수도 기댐을 안 받을 수도 없다.” 은유 <다가오는 말들> p.100
세 돌 아이는 이제 해야 하는 일과 해서는 안 되는 일을 구분할 줄 안다. 하지만 공공장소에서의 매너를 몸에 새기는 건 다른 문제다. 아이에게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 시간을 묵묵히 기다려주는 건 이미 어른이 된 사람들의 몫이다.
감사하게도 여행지에서는 그 시간을 함께 기다려준 어른이 많았다. 여행하는 내내 아이는 오직 아이라는 이유만으로 사랑받고 배려받았다. “아이니까 그럴 수 있지”, “That’s ok, No problem”.
아이 덕분에 나와 남편도 환대의 자장 안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 따뜻한 미소를 떠올리면 고맙고 부끄러운 감정이 교차한다. 과거의 나는 그런 어른이 되지 못했기에.
‘젤리 사건’ 이후 나는 마음을 조금 내려놓기로 했다. 아이에게도 나에게도 조금은 관대해지기로. 우리 아이를 비롯한 어린이 여행자들에게 조금 더 다정해지기로. 그나저나 젤리는 참 맛있더라.
제가 저자로 참여한 책이 나왔어요. 나를 지키고 싶은 엄마들 ‘마더티브’가 쓰고 그린 <엄마는 누가 돌봐주죠?>. 주요 온라인 서점, 오프라인 서점에서 구매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