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그는, 그냥 버그라는 걸 나도 알지만
꼬꼬마 수습기자 시절, 같은 기자실에 있는 6년 차 여자 선배들을 보면서 생각했다. 와 어떻게 6년을 다니지, 나는 맨날 그만두고 싶은데.
매일 아침 출근해서
아이템 발제하고 깨지고
전화 돌리고 깨지고
취재하고 깨지고
기사 쓰고 깨지고
술 마시고 깨지고…
얼마나 깨지고 울어야 6년이 되는 걸까. 아득하기만 하던 시절(그때는 ‘짬’이라는 게 쌓일 수 있다는 걸 몰랐다).
6년 차는 진작에 넘겼고 2020년 1월이면 사회생활 10년이 된다.
경력 10년이면 뭔가 다를 줄 알았다. 한 분야에서 일가를 이루고, 넉넉함과 단단함을 가진 전문가가 돼있을 거라고. 더는 신입 때처럼 종종거리거나 틈만 나면 울지도 않을 거라고(그때는 정말 징글징글하게 많이 울었다). 주도적으로 내 일을 이끌어갈 수 있으리라 상상했다.
9년 다닌 회사를 나온 지 1년. 내가 쓸모없는 인간이 아닐까 불안한 날들이 늘어났다.
회사 다닐 때라고 해서 불안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이대로 이 우물에 갇혀버리면 어쩌지, 어디에도 갈 곳 없는 사람이 되면 어쩌지 불안했다. 회사라는 울타리가 족쇄처럼 느껴졌다.
퇴사 후, 불안감은 기울기가 한층 가팔라졌다. 회사 밖은 처음이라 모르고 서툰 게 당연한데도 조금만 삐끗해도 이대로 쓸모없는 사람이 돼버리면 어쩌지, 주저앉아 버리면 어쩌지 불안했다.
이직 제안이 왔을 때 길게 생각 않고 수락한 것도 불안감 때문이었다. 실패를 하더라도 울타리 안에서 해보고 싶었다.
다시 회사에 들어와도 불안감은 여전하다. 언론사가 아닌 소셜벤처, 직원 10명도 안 되는 작은 규모의 스타트업. 밑바닥부터 구르고 깨지면서 하나하나 배워가고 있다.
완전히 새로운 분야, 새로운 조직문화, 새로운 일. 더 늦기 전에 경험을 쌓을 수 있어 행운이라는 생각이 들다가도 가끔씩 내가 왜 이 연차, 이 나이에 이 삽질을 하고 있나, 이 땅을 파는 게 맞는 걸까 의문이 든다(젊은 꼰대 인증...)
언론사 다닐 때는 이정표가 명확한 일을 했다. 이슈만 바뀔 뿐 오늘과 내일의 일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일주일 후, 한 달 후가 기대되지 않았다.
스타트업에서는 바다에 떠 있는 부표를 따라다니는 것만 같다. 분명 목표를 향해 가는 건 맞는데 자꾸만 바람의 방향이 바뀌고 파도가 친다. 예상치 못한 파도가 세차게 치는 날에는 모든 게 혼란스럽다. 내가 지금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지. 내가 잘하고 있는 걸까.
내가 쓸모없게 느껴지는 날이면 지하철에서 누군가 나를 치고 지나가기만 해도 부서질 것 같은 기분이 된다. 자존감이 바닥을 친다. SNS에서 전혀 모르는 누군가의 성취를 목격하기만 해도 마음이 뒤틀린다. 주변 사람의 좋은 일에도 진심으로 축하를 건네지 못하는 나를 발견한다.
그런 날에는 집에 돌아가 아이를 보는 게 유독 힘들다. 맑은 아이를 마주하기엔 내 마음이 너무 혼탁해서.
퇴사를 후회하는 건 아니다. 그저 길을 잃은 기분. 더는 돌아갈 곳이 없어진 기분. 그럴 때면 새소년의 ‘집에’를 듣고 또 듣는다.
“코드를 좀 멀리서 보면 어때요?”
케빈이 말없이 나를 올려다봤다.
“자기가 짠 코드랑 자기 자신을 동일시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내가 덧붙였다.
“버그는, 그냥 버그죠. 버그가 케빈을 갉아먹는 건 아니니까.”
-장류진 <일의 기쁨과 슬픔>
장류진의 <일의 기쁨과 슬픔>에는 “자기가 짠 코드랑 자기 자신을 동일시하지 말라”는 대목이 나온다. 버그는, 그냥 버그일 뿐이라고.
일이 곧 내가 아니라는 걸 안다. 그런데 자꾸만 일이 나인 것 같다. 평가에 연연하고 인정투쟁을 하게 된다. 버그는 버그라는 걸 나도 아는데, 자꾸만 케빈처럼 한숨 쉬게 된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눈물은 줄었다. 울어도 해결되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걸 아니까. 그 정도는 아는, 경력 10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