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밀밀 Mar 06. 2020

아이가 없는 것처럼 일한다는 것

엄마에게는 새로운 일 담론이 필요하다


회사를 그만둔 건 시간이 없어서였다. 회사 일은 재밌었다. 성과도 보람도 있었다. 하지만 회사에서 하는 일이 지금 내가 가장 하고 싶은 일은 아니었다.     


아이가 태어난 후 나는 시간거지가 되었다. 아직 어린아이에게는 언제 무슨 일이 어떻게 생길지 몰랐다. 잘 놀던 아이가 갑자기 열 나서 일주일씩 어린이집에 못 갔다. 수족구, 구내염, 뇌수막염, 폐렴, 독감… 전염병은 수시로 창궐했다.     


휴가는 화수분이 아니었다. 퇴사할 때 내게 남은 휴가는 단 하루였다. 아직 가을이었고, 이미 아이 어린이집 문제 때문에 갑작스럽게 한 달 무급휴직까지 끌어다 쓴 상황이었다.     




시간거지의 퇴사     


퇴근과 동시에 육아출근



아이가 태어나자 육아의 중심추는 엄마인 내게로 자연스레 쏠렸다. 1년 3개월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거치며 경력단절이 됐고, 복직과 함께 유연근무제를 신청했다. 아이에게 급한 일이 있을 때 갑작스럽게 휴가를 내거나 재택근무를 신청하는 것도 나였다. 육아휴직 쓰는 남자 직원도 여럿 있을 정도로 나름 육아친화형 회사였다. 뭐라고 하는 사람 하나 없는데 늘 눈치 보이고 죄송했다.     


친정이나 시가의 도움을 거의 받지 못하고 아이를 키웠다. 남편은 아침 시간 보육과 등원을, 나는 저녁 시간 보육과 하원을 담당했다. 노동강도와 남직원 비율이 절대적으로 높은 회사에서 남편은 나름의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남편은 말했다. 본인도 힘들다고.     


남편의 커리어가 조금 흔들렸다면 나의 커리어는 통째로 휘청거렸다. 함께 사랑해서 아이를 낳은 건데 왜 여성인 내 커리어만 위태로운 걸까, 억울했다. 한편으로는 육아 때문에 커리어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면 나보다 돈 많이 버는 남편을 밀어주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바보 같은 생각이지만 많은 여성이 이런 이유로 회사를 그만둔다.     


시간을 내 마음대로 쓸 수 없으니 육아를 제외한 시간은 최대의 효능감을 느낄 수 있는 일로 채우고 싶었다. 내가 좋아하는 일, 잘 할 수 있는 일, 일을 통해 성장할 수 있는 일. 그러자 회사에서 일이 아닌 일 외적인 일에 낭비하고 있는 시간이 눈에 들어왔다.     


복직부터 퇴사까지 1년을 떠올리면 벼랑 끝에 몰린 심정이 된다. 꼭 육아 때문이 아니더라도 퇴사에 대한 고민은 오래전부터 있었다. 퇴사 후 무엇을 할 것인지 찾지 못했을 뿐. 일과 육아 사이에서 궁지에 몰리니 내게 정말 중요한 게 뭔지 명확해졌다. 운 좋게 새롭게 하고 싶은 일도 찾았다. 마음 맞는 동료 엄마들과 함께 <마더티브>를 창간했다.     


마더티브는 결혼과 출산 후에도 나를 지키고 싶은 엄마들을 위한 온라인 매거진이다. 내가 지금 겪고 있는 문제를 콘텐츠로 풀어내고 싶었다. 콘텐츠 만드는 건 내가 제일 잘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단지 아이를 낳았을 뿐인데 내가 사라져버린 것 같아 방황하는 엄마들에게 글과 영상을 통해 위로를 전하고 싶었다.  


   


애 있는 여자의 경쟁력     


퇴근과 동시에 책 노예(feat. 엄마는 누가 돌봐주죠)



창업을 하고 프리랜서로 일한다고 해서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게 결코 수월해지지는 않았다. 일단 ‘적당히’가 안 됐다. 뭐든 적당히 못 하고 열심히 해야 하는 내 성격도 한 몫 했지만, 창업을 하고 수익을 창출하기 위해서는 적당히가 아니라 나를 갈아 넣어야 했다. 회사에는 휴가라도 있지, 창업 후에는 일과 삶의 경계가 사라졌다.

     

마더티브 투자 심사를 앞두고 사업계획서를 써야 하는 중요한 시기. 아이는 폐렴 진단을 받았다. 응급실에서 지옥 같은 시간을 보내고 일주일간 아이와 집안에 갇혀있는데 진심으로 두려웠다. ‘이러다 내 의지와 무관하게 육아만 하는 사람이 돼버리면 어떻게 하지? 아이 말고는 아무도 날 찾지 않으면 어떻게 하지?’     


내게는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도 일 못지 않게 소중했다. 지금 이 순간 아이에게는 양육자의 손길이 꼭 필요했고, 나는 내가 선택해서 낳은 아이를 위해 시간과 정성을 마땅히 내줘야 했다. 이 시간은 한번 가면 다시 오지 않을 거고 아이는 금방 클 테니까.     


그걸 알면서도 아이라는 존재는 때때로 아니 자주 내 커리어의 걸림돌처럼 느껴졌다. 애가 없거나 애가 있어도 없는 것처럼 일하는 사람들의 세계에서 애 있는 여자가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까. 스스로도 자신이 없었다.


사업 체질이 아님을 깨닫고 구직사이트를 눈팅하다 다시 막막해졌다. 아이를 어린이집에서 하원시키려면 오후 6시 이전에는 퇴근해야 했다. 야근이나 회식도 불가능했다. 수시로 갑자기 휴가를 내야 할 수도 있었다. 이걸 모두 용인해줄 수 있는 회사가 있을까. 이번에는 애 봐줄 사람을 구해야 하는 걸까.

     

애 엄마가 한번 회사 나가면 재취업 하기 힘들다고, 남편에게 돈 받아 쓰는 ‘아줌마’ 되는 거 순식간이라고, 마지막까지 진심으로 퇴사를 만류하던 워킹맘 선배의 말이 떠올랐다. 내게는 10년 가까운 경력이 있고 나라는 사람은 그대로인데, 단지 엄마가 됐다는 이유로 사회에서 쓸모없는 사람이 돼버린 것 같았다.     


그제야 알 것 같았다. 왜 일 잘하고 똑똑한 여자들이 아이 낳고 나면 노동시장에서 사라지는지. 결국 권력을 가진 자리에는 남자들만 남게 되는지.     




100% 노동자? 사양할게요      


애는 누가 보는 걸까




자본주의 사회는 돈을 받는 대가로 자신의 시간과 열정을 갈아 넣을 수 있는 100%의 노동자를 원한다. 아내가 아이를 봐주고 집안일을 해주는 남성이 그 전형이다. 남성은 처자식이 있기에 회사에 더 충성해서 열심히 일할 것으로 기대되지만 여성은 아이가 있기에 불안정하고 예측불가능한 부적격 노동자가 된다.     


그런데 말이다. 꼭 100%의 노동자가 되어야 하는 걸까? 애가 있으면서 애가 없는 것처럼 일하고 싶지 않다. 애가 없는 것처럼 일하기 위해 또 다른 여성의 희생을 요구하고 싶지도 않다. 내가 엄마가 아니었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문제는 회사와 사회가 그런 노동자를 받아들일 준비가 됐느냐다. 운 좋게도 나는 이직 제안을 받았고 9개월 만에 주5일 출근하는 삶을 살고 있다. 대부분의 직원이 엄마인 작은 소셜벤처다.     


입사 전까지만 해도 걱정됐다. 내가 주 40시간 근무를 다시 할 수 있을까. 또 그전처럼 소진되지 않을까. 신기하게도 처음으로 복직했을 때만큼 힘들지 않다. 그 사이 아이는 부쩍 자랐다. 세 돌이 지난 아이는 아침마다 내게 차 조심하라며 신신당부를 한다.      


나도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입사할 때 대표는 말했다. 괜히 눈치 안 봐도 된다고, 일만 되게 하면 된다고. 대표 역시 네 살 남자 아이를 키우는 엄마다.


다시 회사에 돌아온 후 나는 일의 효율성을 자주 생각한다. 야근하고 회식과 MT에 참석하고 사무실 오래 지킨다고 해서 일의 효율이 오르지 않는다는 걸 우리 모두 알고 있다. 이제 나는 일 외적인 일이 아니라 일이 되게 하는 일에만 집중하려 한다. 단, 근로계약서에 적힌 업무시간 동안만. 100%의 노동자? 정중히 사양하겠다.

      

이 회사를 언제까지 다닐지는 모르겠다. 일과 육아 사이에서 방황하며 나는 계속 성장하고 있고, 나만의 무기를 갈고 닦고 있다. 예전처럼 퇴사가 두렵지 않다.      


슬프게도 나는 운이 좋은 편이었다. 회사에서 버티고 버티다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할 때 결국 퇴사했다는 어느 엄마를 떠올린다. 소리소문없이 노동시장에서 사라진 수많은 여자들을. 애 있는 여자들은 어떻게 계속 일하며 성장할 수 있을까. 엄마에게도 새로운 일 담론이 필요하다.      





*<딴짓>매거진 12호에 실렸던 글을 다듬었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