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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밀밀 Aug 21. 2020

엄마가 날 잘 돌봐야지

건강하게 일하는 법을 생각한다 

일을 하는 것도 그렇다고 안 하는 것도 아닌 상태로 컴퓨터 보며 스마트폰 보며 책 보며 저녁을 보냈다. 저녁 내내 아이와 레고 만드느라 지친 남편 눈치 보며 설거지까지 마치니 잘 시간.  


"날날아 오늘은 엄마랑 자자." 


난 너무 피곤해서 곯아떨어질 지경인데 아이는 잠이 안 온단다. 어제 늦게 잔 게 문제였을까. 아이는 한참을 뒤척이다 내 배 위에 머리를 뉘인다. 무겁다. 숨 막힌다. 저리 가라고 엄마 힘들다고 했더니 아빠는 배에 누울 수 있게 해 주는데 엄마는 왜 안 되냐고. 엄마 말고 아빠랑 자고 싶다고. 그때부터 기분이 안 좋아서 잠이 안 온단다. 


혈압.


아빠는 배가 큰데 엄마는 배가 작아서 엄마 배 위에서는 못 자는 거야^^ 얘기하고 다시 아이를 달랬다. 날날이 베개 가지고 와서 엄마 옆에 누워볼까. 잠이 안 온단다. 그럼 우리 같이 양 세어볼까? 양 한 마리, 양 두 마리... 육십 마리, 칠십 마리 ... 내가 잠들게 생겼다. 근데 잠이 안 온단다. 


야 그냥 너 나가. 잠 안 오면 자지 마. 왜 안 자.

-나가기는 싫어. 

-그럼 어쩌라고(양까지 다 셌는데 안 자는 건 반칙 아냐). 


엄마가 나를 낳았잖아 그러면 잘 돌봐야지. 


콩 심은 데 콩 난다더니. (내 아들 아니랄까 봐) 5살이 벌써 이런 소리를 하네. 나도 울 엄마 단골 멘트를 해줬다. 


야 엄마가 너를 잘 못 돌본 게 뭐가 있어. 


엄마가 옆에서 몇 마디를 해줘야 한다나 아빠는 그렇게 한다나. 야 이눔아. 아빠보다 엄마가 너 더 많이 재웠어. 또 짜증 내려다가 읍읍. 심호흡.  


BGM으로 틀어놓은 1시간 자장가가 끝나간다. 여기서 또 아이를 흥분시키면 안 된다. 재워야만 한다. 육아 5년차면 그 정도 상황 판단은 된다.  


그럼 엄마가 이야기 해줄까? 아이가 좋아하는 방귀 이야기 경찰 이야기를 섞어서 개연성이라고는 1도 없는 얘기를 들려준다. 겨우 잠드는 아이. 자장가가 끝난 방 안에는 새근새근 숨 쉬는 소리만. 나는 잠이 다 깼다. 


두 번째 퇴사. 새롭게 시작한 일. 엄마 마음이 콩밭에 가 있는 걸 아이는 알았던 걸까. 분명 좋아서 시작한 일인데 또다시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것도 새로운 사람과 합을 맞추는 것도 자꾸만 잔뜩 날이 서게 만든다.  


건강하게 일하는 법을 생각한다. 나와 아이를 지키며 지속 가능하게 일하는 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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