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개월 만에 다시 온 메일
책 내고 싶은 욕망 때문에 자꾸만 조급해지고 초라해지고 급기야는 글을 쓰고 싶지 않아지는 마음에 대해 글쓴 적 있다. 그 후로 책 내고 싶은 강렬한 욕망은 많이 사그라들었지만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었다. 그 메일을 받기 전까지는.
마더티브 이메일로 내게 출간 제안을 하고 싶다는 내용의 글이 도착했다. 브런치를 통해 글을 봤는데 연락처를 알고 싶다고. 애써 태연한 척 했지만 내 심장은 두근 반 세근 반 마구 나대기 시작했다. 침착해, 침착해.
먼저 출판사가 어떤 곳인지 찾아봤다. 지금까지 어떤 책을 냈는지, 어느 정도 규모인지, 얼마 주기로 신간을 내는지.
규모가 크고 유명하다고 해서 무조건 좋은 책을 내는 건 아니다. 한 지인은 꽤 유명한 출판사에서 출간제안을 받아 원고까지 완성했건만 출간까지 한참을 속절없이 기다려야만 했다. 대기하고 있는 굵직한 원고가 많았나 보다.
그런가 하면 또 다른 지인은 한 달에 책을 한 권 이상 내는 작은 출판사에서 책을 출판했는데 기본적인 교정교열도 안 돼서 교정도 홍보도 저자가 셀프로 해야 했다. 케바케이기는 해도 사전 정보가 필요했다.
내가 원하는 출판사의 조건은 두 가지였다.
1. 내가 쓰는 글의 가치를 알아봐줄 것
2. 좋은 책을 함께 만들어가려는 의지가 있을 것
몇 권의 책을 내면서 마음 속에 정한 원칙이었다. 책을 낸다고 해서 끝이 아니었다. 독자들에게 책을 알리기 위한 마케팅 과정도 중요했다. 마음은 이미 출간 후 마케팅까지 간 상태에서 답메일을 보냈다.
편집자와 몇 번의 메일을 주고 받았고 애초 내가 쓴 원고 방향과 출판사에서 원하는 원고 방향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출판사에서는 구성을 바꿔서 새롭게 기획을 했으면 했다. 내게는 그리 매력적이지 않은 기획이었다.
그래도 내 글을 처음 발견해준 편집자의 마음이 고마워 추가로 읽어봤으면 하는 내 원고를 몇 개 추려서 보내줬다. 혹시나 접점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편집자는 꼼꼼히 읽어보고 연락을 주겠다 했다.
그러고는 메일이 끊겼다. 뚝. 당황스러웠다. 뭐야. 출간제안 먼저 한 건 출판사였는데. 먼저 대시한 적도 없는 상대한테 카톡으로 퇴짜 맞은 기분이었다.
내 글이 이렇게 무례한 대접을 받을 정도로 별로야? 상처 받았다가
메일 답장도 못 보낼 정도로 편집자가 바쁜 걸까, 무슨 일이 있나 오지랖 부렸다가
지난번 메일이 그냥 그만 하자는 뜻이었나 몇 번이고 다시 읽어봤다. 내가 눈치가 없었나.
그리고 지난주 금요일, 다시 메일이 왔다. 3개월 만에.
편집자는 답 메일을 보냈다고 생각했는데 그러지 못 했던 것을 뒤늦게 메일 정리하다 알게 됐다고 했다. 결론적으로는 저자가 쓰고 싶은 원고와 출판사에서 내고 싶은 원고 사이에서 편집자로서 접점을 찾지 못했고, 책으로 이어지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솔직하게 말해줬다. 아쉽지만 멀리서 응원하겠다고.
메일을 읽는데 마음이 누그러졌다. 편집자는 편집자대로 출판사는 출판사대로 각자의 사정이 있는 거니까. 어쨌든 늦더라도 답장이 왔으니까. 출판이 어려울 거라는 건 3개월 전 메일을 주고 받을 때 이미 예감하고 있었다. 내가 원하는 건 예의를 갖춘 마침표였다.
나도 답장을 보냈다. 메일이 뚝 끊겨서 조금 당황스러웠다고. 늦게라도 답장을 주고 솔직하게 상황을 설명해줘서 감사하다고. 나도 편집자님과 출판사를 응원하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