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6월 9일을 추억하며)
한라산 하산길은 더 괴로웠다. 왜 더 괴로웠는지 짐작하건대 오르는 건 포기할 수 있어도 내려오는 건 포기할 수가 없잖은가. 힘들다고 한라산 중턱에서 내려가기를 포기하고 눌러 살 순 없잖은가.
산을 타본 사람은 알 것이다. 다 내려오면 다리가 후들거리는 것을. 머리로는 하고 싶지 않은데 다리는 무조건반사로 덜덜덜 떨린다. 그런데 한라산 하산길은 길어서 나중엔 그 후들거림도 없어지더라. 너무 꽉 맞는 등산화 덕분에 앞으로 쏠린 발가락들은 아우성을 치다 못해 비명 객사하기 일보 직전이었다. 아, 내가 한라산을 왜 올랐던고.
왕복 19.2km. 나 같은 저질체력은 그 거리를 그냥 걷는 것도 만만치 않다. 우도 한 바퀴도 그보단 짧다. 그런데 죽이고 싶은 촉촉한 돌땡이들과 가파른 경사들과 대판 싸워야 했으니 말 다했다.
처음 봤던 ‘현위치 번호’를 기다리며(마치 진달래밭 매점의 라면을 기다리듯) 썩은 표정을 내려왔다. 하산길의 사진은 이것 한 장뿐이다. 오를 때도 속으로 엄청 욕했는데 내려올 땐 더 심하게 욕을 해댔다. 누구를 향한 욕이었을까? 아마도 반 이상은 스스로에게 했으리라. 왜 욕을 했는지는 아직도 모른다. 하지만 욕이라도 해야 버틸 수 있었을 거라 생각한다.
누군가에게는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 하지만 내게는 2년이 지난 지금도 잊히지 않은 고통이다.
다 내려온 후의 성판악 탐방로 주차장. 내려오는 것도 남들보다 느려서 많은 차들이 빠져나간 후였다. 친구와 나는 자판기에서 음료수를 빼 마시며 한참을 주저앉아있었다.
한라산 등반이 어찌나 힘들었던지 그 후 1~2주일은 어기적거리며 걸었다. 다리 전반에 알이 배겨서 앉는 것도 걷는 것도 힘들었다. 더 심각했던 건 두드러기까지 돋았다는 거다. 아마도 제 성질에 못 이겨 몸이 반응을 일으켰던 것 같다. 성질이 좀 고약한 것 같다.
요즘은 오름을 오른다. 오름도 한라산 등반 후 한참 지나서 오르기 시작했다. 나는 최고봉보다 낮지만 멋진 풍경을 볼 수 있는 오름이 좋다. 그게 나에게 맞는 높이다.
그래도 얻은 게 있다면, 해봤다는 거. 그 결과 하지 않기로 했다는 거. 다시는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나를 가두지 않기로 한 것이다.
이후 여행 왔던 다수의 친구들은 각자 제 집으로 올라갔고 한 친구만 남아 나와 계속 제주 두 달살이를 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