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6월 17일을 추억하며)
고기가 유명한 식당에서 국수만 먹고 나와야 했던 어떤 사람의 슬픈 전설을 들어봤는가? 돈이 없어서도 아니다, 고기를 못 먹는 체질이어서도 아니다. 그런데 왜? 아, 그저 위가 작아서였으니…
‘제주국수여행’을 하던 2014년 어느 날, 가시리의 나목도식당에서 ‘순대국수’를 판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갔었다. 지금은 바로 옆에 건물을 지어 이전했지만 그때만 해도 미닫이문의 허름한 건물이었는데 미닫이문을 드르륵 열고 들어가니 식당 안의 모든 사람들이 고기를 구워 먹고 있었다. 사실 거긴 고기가 유명하다고 했다.
나는 국수 여행이라는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순대국수’를 시켜 먹었는데… 사방에서 구워 먹는 고기의 비주얼, 향기, 아아. 그건 지옥이었다. 내가 위대(胃大) 했다면 문제가 없을 터였다. 고기도 먹고 순대국수도 먹으면 되니까. 그렇지만 내 위는 생각보다 소박했다. 내 언젠가 다시 가서 보란 듯이 고기를 구워 먹으리라.
제주 두달살기를 시작하고 나목도 식당으로 쳐들어갔다. 그리고 당당하게 고기를 시켰다. 오늘은 고기 먹으러 왔수다!
자, 입가심으로 멸치국수 한 그릇 해보실까?
그런데 이상하다. 고기 먹은 후엔 국수가 들어가는데 국수 먹은 후엔 고기가 왜 못 들어갈까? 심리적 압박감 때문일까? 물론 친구랑 나눠먹었지만 신기할 뿐이다. 위에 차곡차곡 쌓인(?) 고기들 사이로 국수들이 비집고 들어가는 걸까?
맞다,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을 쓴 스티븐 코비 아저씨의 강의를 어디선가 오래전에 봤는데 그때 그랬다. 자갈 한 통과 모래 한 통을 빈 통에 다 담아보라고. 자갈 먼저 넣고 모래를 채우면 그게 다 들어가는데 반대로 하면 돌 들어갈 틈이 없었다. 그러니까 소중한 일부터 하라는 게 요지인데 ‘먹기’에도 그게 통한다는 거다. 소중한 거(?)부터 먼저 먹어야 빈틈으로 나머지가 들어갈 수도 있다!
만족스럽게 먹고 나온 길, 가시리의 동네 개들이 도로에 버티고 앉아 도통 비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것들이. 하루 이틀 해본 자세가 아니다. 한참을 기다려도 비킬 생각을 하지 않아 우리가 비켜갔다. 언니가 고기 먹었으니 오늘은 봐준다. 어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