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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난영 Mar 04. 2024

한량으로 사는 게 나다운 건 아니다

<에디톨로지> 네 번째 이야기

나는 경쟁을 싫어한다. 그리고 '하면 된다'라는 개념도 싫어한다. 그러니까 나를 몰아세우며 승리를 향해 나아가는 것을 싫어한다. 


왜?


나는 그런 것들을 몹쓸 것(?)이라 규정하고 한량처럼 살기를 원했다. 


왜?


실은 자신이 없었다. 경쟁에 이길 자신도 없었고, 될 때까지 할 투지도 없었다. 그래서 몹쓸 것이라 규정했다. 그러면서 나는 그것들을 초월해서 '나답게' 사는 게 좋다고 떠벌이고 다녔다. 


그런데 '나답게'의 정의가 문제였다. 도대체 나다운 게 뭔가? 하기 싫은 거 안 하고 하고 싶은 거, 노력 없이도 얻을 수 있는 것만 취하는 게 나다운 것일까?


언젠가 "너는 뇌가 소풍 갔냐?"라는 말을 들었다. 아니, 내가 생각 없이 산다고? 아니. 나는 최선을 다하며 살고 있어. 내가 왜 생각이 없다고 생각하지?


그런데 그 말이 맞았다. 나는 생각 없이 살고 있었다. 


<에디톨로지>에서는 관점도 선택할 수 있다고 했다. 세상에 있는 관점들 중 '편집'해서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다는 의미다. 그런데 나는 주어진 관점, 아니 사실 나만의 관점도 제대로 없었다. 세상을 이끌어가는 '보이지 않는 손'이 규정한 관점을 그냥 보유하면서 나답게 살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진짜 나다운 건 관점을 선택하고, 편집하고, 그걸 진짜 내 것화하는 거였다. 주어진 대로 살면 '보이지 않는 손'들이 원하는 사람이 된다. 그러니 다각도로 분석하고 편집하여 선택할 줄 알아야 했다. 선택만 하면 끝나냐? 아니다. 그걸 뚝심 있게 밀고 갈 힘이 있어야 한다. 물론 그것만 고집하면 안 된다. '편집'의 가능성은 언제나 열어두어야 한다. 


소풍 간 내 뇌를 불러 들어야 한다. ^^


https://brunch.co.kr/@hongnanyoung/680


제주 유기견 보호소 '한림쉼터'엔 국제학교 학생들과 선생님이 자주 오신다. 학생들 대부분은 한국어도 할 줄 알지만 선생님들은 대개 영어를 사용하신다. 그래서 선생님과는 대화를 잘 안 하게 된다. 서로 말이 안 통하니까. 


그런데 이번엔 선생님의 한 마디가 들렸다. 


봉사 후 단체 사진을 찍으려는데 한 학생이 없었던 모양이다. 그때 선생님은 내게 '영어'로 말했다. 물론 글로 옮길 순 없다(난 영어젬병이다). 한 학생이 손을 씻고 있으니 기다려달라고 했다. 그게 들렸다. 세상에. 


(도대체 중고대학교에서 몇 년을 영어를 배웠는데...)


그 순간 난 깨달았다. 나라는 인간, 영어를 절대 못하는 인간은 아니구나. 그저 영어에 자신이 없어 '영어를 못하는 인간'으로 규정했을 뿐. 이게 나다운 건가? 아니다. 


완벽할 필요는 없다. 봉사에 필요한 영어 단어만 알아도 된다. 그런데 그 영어 단어가 어려운 것도 아니다. food(사료), water(물), dung(똥), thank you... 이 정도? 


꼭 문장으로 말할 필요도 없다. 의미만 전달되면 되니까. this bowl food, this bowl water 대충 말해도 알아들을 거다. 왜냐하면 그들이 한국어를 단어로만 이야기해도 나는 알아들으니까. 



내가 나의 한계를 규정짓는 것도 문제였다. 그건 나다운 게 아니었다. 그냥 회피하는 거였다. 봉사할 때 들리는 영어를 무의식적으로나마 접하다 보니 영어가 들렸던 것은 아닐까 싶었다. 이번 경험으로 나는 '영어가 가능한 사람'으로 재규정되었다. 하면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세상엔 해도 안 되는 것들이 많다. 하지만 할 수 있게 만들면 가능해지는 것도 많다. 그것에 한계를 둘 필요는 없다. 


나답다는 것은 이 세상에 많은 것들 중 무엇을 선택하여 조합할 것인가의 문제였다. 대충 되는대로 사는 게 나다운 게 아니었다. 


1. 조합에 적극적이어야 한다(나에게 잘 맞도록). 

2. 선택했다면 끌고 나아가야 한다(끌고 나가지 않으면 공상에 불과하다). 

3. 편집의 가능성은 늘 열어두어야 한다(독불장군이 되지 않기 위해). 


이게 나다운 거였다. 


대부분의 것들은 한방에 되지 않는다. 지금 당장은 안될 수 있지만 될 수 있게 조금씩 성장하면 정말 할 수도 있다. 


'하면 된다'도 한방에 된다고 이해했기 때문에 그토록 내가 싫어했던 것이다. 안 되는 것도 있지만 될 수 있게 만드는 과정에서 많이 배울 것이다. 실패해도 많이 배울 것이다. '하면 된다'의 진정한 의미는 '도전'이었다. 한계를 짓지 말라는 뜻이었다. 


오늘도 많은 것을 배운다. 실천해야 그 의미가 있다. 오늘도 고고고! 


https://brunch.co.kr/@hongnanyoung/6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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