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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석철 Jul 18. 2018

77 부러우면 지는 거다

독일의 교육과 입시 분석 

  예정보다 빨리 치러진 대선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되었다. 교육학을 전공하고 아이들을 가르치다 보니 교육 관련 공약들을 자세히 보게 되었다. 그런데 당시 문재인 대통령 후보의 공약을 보고 미간이 찌푸려졌던 기억이 난다.


  이유는 수박 겉핥기식의 공약들로 도배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의 문재인 대통령 후보의 교육 관련 주요 공약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외국어고, 자사고, 국제고를 일반고로 전환해서 고교 서열화 문제를 완전히 해소하겠다.

2. 대입 전형을 교과, 종합, 수능 세 가지로 단순화해서, 수시 비중을 축소하고 기회균등 전형을 의무화하겠다.

3. 초등 기초학력 보장제, 중등 자유학기제+절대 평가, 고등 학점제로 공교육을 혁신하고 사교육비를 줄이겠다.


  정책에 따른 개인적인 호불호는 존재하겠지만 이 공약으로 대한민국 교육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은 전문가가 아니라도 알 수 있다. 그 여파가 지금 나타나고 있다. 고교 서열화, 대입 전형, 고교 학점제, 절대평가 전환 등으로 나라가 시끄럽다.


  교육부도 어떻게 선택할지 몰라서 최종 결정을 국가 교육회의로 넘긴 상황이다. 지금 우리의 교육 현실은 이대로 가도 문제고 바꿔도 문제이다. 진퇴양난이다. 교육부를 폐지하자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우리의 교육 문제가 한두 가지 정책으로 해결될 거였으면 이 상황까지 오지도 않았다. 이럴 때일수록 조금 천천히 가더라도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쪽으로 가야 하는데, 정치인들의 임기가 짧고 국민들의 염원(?)이 워낙 크다 보니 생각처럼 쉽지 않나 보다.


  그래서 다른 나라들은 어떤 교육 시스템과 입시 제도로 미래의 인재를 기르고 있는지 살펴보고자 하는 호기심이 생겼다. 외국의 사례들을 연구하다 보면 우리 교육의 문제점에 대한 해결책이 떠오를지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감이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첫 번째 나라는 독일이다. 독일 교육에 대해서 조사하고 느낀 점은 독일과 한국의 교육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그중에서 가장 의미 있는 시사점을 세 가지로 정리해봤다. 


  Point 1. 독일은 일류 대학이 없다. 


  한국 교육 문제의 중심에는 '일류 대학' 있다. 일류 대학을 나온 부모는 본인이 누렸던 인생의 프리미엄을 자식도 누리기를 바라며 자식을 일류대학에 보내길 원한다. 일류 대학을 나오지 못한 부모도 자식이 본인보다 더 나은 삶의 질을 누렸으면 하는 소망으로 자식을 일류대학에 보내길 원한다.


  사실 대한민국의 교육은 한 마디로 전 국민이 자식을 일류대학에 보내기 위한 투쟁(?)인 셈이다. 교육은 사라지고 입시만 남았다. 지금은 예전보다 덜 하지만 그래도 많은 부모님의 소원은 자식이 명문대학에 들어가는 것이다.


  한국에서 명문대학을 나오면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는 삶의 질적인 측면이 있다. 인맥, 취업, 결혼 등은 말할 것도 없이 사회의 주요 요직을 특정 몇몇 대학 출신이 독차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아무리 대학이 성공을 보장하지 않는다고 얘기해봤자 설득력이 떨어진다.


  국민 각 개인은 결국 가장 합리적인 판단을 내릴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렇게 경쟁을 통한 공부 엘리트를 명문대에 넣어 국가의 리더로 키우는 한국의 관점으로 보면 독일은 신기한 나라다. 독일에 명문대는 없지만 독일의 국가 경쟁력이 높기 때문이다. 


  독일에서는 명문 대학이 없다 보니 어느 대학을 나왔느냐에 따라서 그 학생의 능력에 대한 평가가 이뤄지지 않는다. 그럼 학생들의 능력은 무엇으로 평가할까? 대학을 졸업했다는 사실이다. 아비투어의 일정 점수만 있으면 독일의 어느 대학도 갈 수 있기 때문에 입학이 우리나라처럼 치열하지는 않다.


  하지만 졸업을 엄격하게 관리함으로써 입학은 어렵지만 졸업은 쉬운 한국 대학과는 정 반대의 노선을 가지고 있다. 정부에서 대학생들에 대한 모든 학비를 제공해 주기 때문에 독일의 학생들은 학비를 벌기 위해서 아르바이트를 할 필요가 없다. 오로지 학업에만 전념하면 된다. 그리고 학업에 한 몸 불살라야(?) 졸업장을 거머쥘 수 있다.


  입학은 쉽지만 졸업은 어려운 대학교와 입학은 어렵지만 졸업은 쉬운 대학교 중에서 어느 쪽이 더 경쟁력 있는 인재를 길러내는지는 자명하다. 



Point 2. 독일은 공부만 잘 하는 모범생을 선호하지 않는다.


  독일 초등학교는 12시면 끝난다. 아이들은 학교가 끝나면 집에 와서 숙제를 하고 놀러 나간다. 자전거 타고, 공놀이 하고, 게임하고, 숲에서 뛰어 논다. 독일의 초등학생들은 자유롭게 논다. 독일에서 학교 끝나고 학원가는 초등학생은 한국 학생들 뿐이다. 


  그도 그럴 것이 독일 교육의 인재상은 공부 잘하는 학생이 아니다. 독일 교육의 인재상은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뛰어난 엘리트보다 "사회의 구성원으로 원만하게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사람"을 길러내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참고로 우리의 인재상은 "창조적 기술력과 인문학적 상상력을 겸비한 창의 융합형 인재"를 길러내는 것이다.)


  독일에서는 학생들이 교우 관계나 여가 시간을 포기하면서 얻는 최고 성적은 삶의 균형이란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하지 않는다. 


  천재 바이올린 소녀, 천재 피아니스트, 천재 운동선수 등의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이들의 반응은 '어릴 때 그렇게 되기 위해서 얼마나 살인적인 연습을 했을까, 아이들은 뛰어놀아야 하는데...'이다.


  어린 시절의 영재는 부모에 의해 만들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누가 더 혹독한 연습을 받았느냐의 차이인 경우가 많다. 이를 위해 아이들은 뛰어놀 수 있는 자유를 포기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독일에서 영재에 열광하지 않는 이유는 이 보이지 않는 희생을 고려하기 때문이다.


  기업에서도 상위권보다는 중상위권을 선호한다. 성적이 우수한 사람은 지나친 경쟁으로 조직 생활이 원만하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럼 또래보다 열심히 해서 성적이 잘 나온 학생은 어떻게 될까? 월반이라는 제도가 있어서 한 그룹에서 상위권이면 다른 반으로 옮기도록 권유받는다. 그러면 그 학생은 새로운 반에서 중위권이 되는 것이다. 


  우리의 상식으로는 쉽게 이해하기 힘들지만 독일은 그렇게 교우관계와 여가시간도 공부만큼 중요하다는 사회적 합의가 있는 것이다. 그렇게 삶의 균형을 중시한다. 


  물론 단점도 있다. 혁신적인 창조력이나 기업가 정신이 미국이나 영국에 비해서 떨어진다. 하지만 독일은 모든 분야에서 기초가 강한 나라다. 특히 기술 분야에 대한 존경심이 대단하다. 이 기술분야의 중심에 독일의 '마이스터'제도가 있다.



Point 3. 기술을 존경하는 문화와 마이스터 제도


  독일 교육에 관해서 '마이스터' 얘기를 빼놓을 수 없다.


  독일에서는 초등학교 5학년에 인문계(김나지움)로 갈지 직업교육(하웁트슐레, 레알슐레)으로 갈지 결정해야 한다. 학생의 적성, 성격, 성적 등을 고려해 담임선생님과 부모님이 상의한다. 독일 초등학교에선 1학년부터 4학년까지 담임선생님이 바뀌지 않기 때문에 부모들은 선생님의 의견에 신뢰를 보낸다.


  물론 이렇게 어린 시절부터 진로를 구분하는 것이 학생들의 잠재력을 제한하고 교육 기회를 박탈한다는 비판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술직으로 사회에 나왔을 때 전문성을 인정받고 경제적으로도 안정된 삶이 가능하기 때문에 여론이 들끓지는 않는다.


  독일에서 '마이스터'는 독일 제조업 경쟁력의 원천으로서, 그 분야의 고도로 숙련된 기술자 혹은 장인을 말한다. 마이스터가 되기 위해서 직업학교인 하웁트슐레(5년) 또는 레알슐레(6년)의 과정을 마치고 아우스빌둥(3년)이라고 불리는 직업교육을 추가로 받아야 한다.


  아우스빌둥의 과정은 현장에서 주로 훈련하고, 학교에는 일주일에 두 번 정도 가서 이론 수업을 받는다. 이후에 간호사, 원예사, 제빵사, 안경사, 은행원 등등 350여 종의 직업에 종사하는 기술자로 된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이후에 독일 상공희의소에서 주관하는 직업 훈련을 3년 동안 받아야 한다. 그리고 경제, 법률, 교육, 전문 과정 등 4개 과목의 시험까지 통과해야 마이스터가 된다.


  이렇게 혹독한 교육과 훈련을 통해 마이스터가 되기 때문에 자신의 직업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이 대단하고 직업 정신 또한 투철하다. 독일에서 마이스터는 대학을 졸업하고 일하는 사람 못지않게 좋은 연봉과 사회적 대우를 받는다. 


  우리나라는 이 '마이스터'라는 이름만 따와서 공고, 상고를 마이스터 고등학교로 바꾸었다. 베이커리에서 파는 빵은 똑같은데 케이스만 바꾼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독일의 학생들은 몇몇 특정한 직업을 위해서 모든 학생이 공부에 목을 매지 않는다. 만약 본인의 희망 직업이 있다면 상급 학교 진학을 위해 열심히 공부하지만 대다수의 국민들이 한두 가지 직업을 향해서 무한 경쟁을 하지 않는다. 


  본인의 적성과 소질에 따라 사는 것에 만족하고 사회는 다양한 직업군의 삶을 인정하고 존중한다. '사'자로 끝나는 직업에 대한 사회적 선망이 한국과 비교할 수 없다. 


  독일에서는 기본적으로 연금과 건강 보험과 같은 사회 보장이 튼튼하기 때문에 평생 동안 한 개인이 큰 목돈을 마련하지 않더라도 다달이 들어오는 월급으로 안정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다. 


  한국은 불안하다. 정부, 사회, 국가에 대한 신뢰가 없기 때문에 한국인들은 합리적으로 스스로의 미래를 위해서 투자할 수밖에 없다. 내가 아프면 국가가 책임질 것인가? 나의 노후를 국가가 책임져줄 것인가? 내 아이의 미래를 위해서 국가가 뭘 해줄 수 있을까?


  교육은 사회 속에 있는 제도이므로 교육제도만 따로 떼 놓고 말하기 힘들다. 또한 독일에서 직접 살아보지 못했기 때문에 피부로 느끼는 장점과 단점이 없어서 단언하기는 조심스럽다. 그래도 독일 사회와 교육 시스템을 조사하면서 부러운 마음이 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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