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해 봅시다.
하루 종일 일에 치여서 야근까지 하고 회사를 나선다. 오늘 못다 한 일은 내일 다 해치워야 한다고 생각하니 머리가 아파온다. 그래도 애인을 만나러 갈 생각을 하니 기분이 조금 좋아지는 것 같다. 그런데 사랑하는 애인이 헤어지자고 말했다고 생각해보자. 무거운 다리를 이끌고 터벅터벅 집으로 걸어온다. 이 때도 내일 회사에 가서 할 일이 떠오를까?
어쨌든 매우 상심한 채 집으로 오면서 내가 뭐 잘못한 것이 있을까? 아니면 다른 사람이 생겼을까? 마음이 심란하다. 이때 골목에서 갑자기 괴한이 칼을 들고 달려온다. 이 순간도 아까 헤어졌던 애인이 떠오를까? 아니다. 당장 죽게 생겼으니 일단 도망치는 것에 모든 신체적, 정신적인 에너지가 집중될 것이다.
어른들이 자녀의 공부를 방해하는 방법은 바로 '잔소리'를 하는 것이다. 가슴 뜨끔한 부모님들 많이 있을 것이다.^^; 사실 어른들이 하는 말이라는 게 아이들 입장에서는 다 잔소리이다. 어른들이 아이들을 볼 때마다 공부하라는 얘기를 한다. 하지만 아이에게 학업을 독려시키고자 하는 이 말이 바로 아이들의 학업을 방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왜 잔소리가 아이들의 공부를 방해하는지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뇌가 작동하는 원리에 대해서 조금 알 필요가 있다.
인간의 뇌는 간단하게 설명하면 그림에서 처럼 3층 구조로 되어있다. 그리고 각 부분에서 담당하는 역할은 아래와 같다.
1층 – 파충류 뇌 : 생명 관리
2층 – 포유류 뇌 : 감정 반응
3층 – 인간 뇌 : 사고, 판단, 이해
여기서 기억해야 할 사실은 1층 뇌가 안정되어 있지 않으면 2층 뇌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2층 뇌가 안정되어 있지 않으면 3층 뇌가 작동하지 않는다. 수업시간에 배가 고프면 점심시간밖에 기다려지지 않는다. 계속 시계를 확인하며 15분 남았다. 10분 남았다. 5분 남았다. 를 반복한다. 먹고, 자고, 숨 쉬는 등 생명을 담당하는 1층 뇌가 불편하자 2,3층 뇌가 작동을 하지 않는 것이다. 이 순간에도 배고픈 걸 참고 공부하는 사람은 인간의 본성을 거스른 정말 '지독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아까 위에서 봤듯이 애인이 헤어지자고 하니 감정을 담당하는 2층 뇌가 비상이 걸린 것이다. 그래서 내일 회사에서 일할 것을 처리하는 3층 뇌가 작동을 멈춘 것이다. 그렇게 슬픔에 잠겨 있을 때 갑자기 앞에서 강도가 칼을 드리대니 생명을 담당하는 1층 뇌가 초비상이 걸린 것이다. 그래서 슬픔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생명을 위협하는 순간을 벗어나기 위해서 모든 피가 1층 뇌에 집결하는 것이다.
민수네 집은 아버지 사업이 잘 돼서 꽤 형편이 좋았다. 그런데 아버지 사업이 힘들어지자 가세가 기울기 시작했다. 결국 다른 동네 반지하로 이사를 가야 했다. 당시 민수는 고등학생이고 초등학생 여동생이 있었다. 아버지는 박탈감에 도박에 빠졌고 어머니는 괴로움을 술로 달랬다. 매일 집에서는 고성이 오가고 물건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이 상황에서 민수가 공부를 열심히 할 수 있을까?
민수의 1층과 2층 뇌가 안정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3층 뇌가 원활하게 작동하는 것을 기대할 수 없다. 역시나 아이는 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급기야 아버지가 이혼하고 집을 나가서 다른 사람과 결혼을 했다. 어쨌든 아버지가 집을 나가고 조금씩 집안 분위기가 안정되나 싶더니 어머니도 다른 곳에 재가를 했다. 애들을 나중에 데리러 오겠다고 했지만 기약은 없었다. 갑자기 민수가 초등학생 동생을 먹여 살려야 하는 가장이 되었다. 이런 환경에서 학습을 담당하는 3층 뇌가 정상적으로 기능을 할 수 있을까?
그런데 이렇게 척박한 환경이 아니라도 아이들의 뇌를 건드리는 경우는 많다. 예전에 가르쳤던 한 남자아이는 늘 우울한 얼굴로 다녔다. 무슨 일이 있냐고 물어보면 별일 없다고 말했다. 그런데 어느 날 정말 어두운 얼굴로 앉아 있어서 다시 물어보았다. 정말 무슨 일이 없냐고. 그제야 아이는 입을 열었다. 엄마 때문에 짜증 나 죽겠다고 한다. 얘기를 들어보니 엄마가 매일 방청소하라고 잔소리를 한다는 것이었다. 잔소리는 면역이 생겨서 참을 만 한데 급기야 방을 더럽게 해 놓고 안 치운다고 매까지 들었다고 했다. 물론 아이가 청소도 안 하고 더럽게 지냈을 것이다. 아이도 잘못이 있다. 그런데 이렇게 잔소리를 퍼붓고 화를 내면 아이의 2층 뇌에 비상이 걸린다. 3층 뇌가 정상적으로 작동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물어보니 아버지도 집에서 매일 구박을 받는다고 한다. 아버지는 일하고 들어와서 밥을 먹고 씻고 싶은데 어머니는 늘 먼저 씻고 밥을 먹으라고 매일같이 잔소리를 한다는 것이다. 부부간에는 사랑싸움(?)이라고 치고 아이는 공부를 해야 하는데 이렇게 계속 아이의 2층 뇌를 건드리면 안 된다. 그럼 방을 너무 더럽게 써서 차마 눈뜨고 볼 수가 없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 그래도 아이의 학업에 방해를 주는 자극은 피해야 한다. 여러 사람이 같이 쓰는 공간이 아닌 자기 방을 더럽게 쓰는 것이야 안 보면 그만이다.
"공부해라."
"너는 하루 종일 TV만 보고... 숙제는 다 했니?"
"어휴... 하루 종일 먹고 자고 놀고.. 게을러터져가지고... 그러니 살만 디륵디륵 찌찌.. 하아~ 됐다. 말을 말자. 내 입만 아프지..."
“너는 맨날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어딜 그렇게 싸돌아다니는 거야? 방금 학원 선생님에게 전화 왔어. 네가 숙제를 안 해 와서 집에서 좀 지도해 달라고. 얼마나 힘들게 번 돈으로 공부시켜주는데 아주 그냥 꼴도 보기 싫어 그럴 거면 공부 다 때려치우고 기술이나 배워!”
이런 말들을 하지 말자는 것이다. 물론 아이를 보고 있으면 답답하다. 속이 터진다. 그런데 이렇게 감정을 상하게 하면 아이들의 학습에 방해를 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한 어머니는 그럼 울화통이 터져서 내가 죽게 생겼는데 어떻게 하냐고 하소연한다. 그래도 아이의 학업에 방해만 되는 말은 하면 안 된다.
어른과 아이 사이에 갈등이 생겼을 때 문제 해결의 키는 누가 가지고 있을까? 아이가 어른을 이해할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 힘들더라도 어른이 아이를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이성적으로 생각해서 마음을 먹는다면 힘들겠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정리하면, 우리의 뇌는 3층 구조로 되어 있다. 1층은 생명, 2층은 감정, 3층은 학습을 담당한다. 그런데 1층이 안정되어 있지 않으면 2층이 작동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2층이 안정되어 있지 않으면 3층이 정상적인 기능을 하지 못한다. 대부분의 어른들이 아이들의 1층 뇌는 잘 배려해준다. 그래서 먹고 자고 생활하는 것은 큰 문제가 없다. 그러나 어른들이 하는 대부분의 말이 아이들 2층 뇌를 자극한다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 앞으로 말하기 전에 이 말이 아이들의 2층 뇌를 자극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고 말해야 한다. 그럼 어른들이 할 말이 상당히 줄어든다. 대신에 무슨 말을 하면 좋을까? 학습에 도움이 되는 말을 해야 한다. 앞으로의 계획, 꿈, 목표 등이다. 학습에 어려운 점이 없는지 들어주고 같이 방법을 찾아보자고 한다면 잔소리하는 것보다 훨씬 건설적인 대화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