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진은 힙스터다. 그는 노래를 들을 때도 차트에 있는 노래는 제외한 채 밴드음악이나 인디힙합을 찾아 듣는다. 그가 최근에 단 아랫입술의 피어싱은 그의 자랑이자 자신의 힙함을 보여주는 심벌이 되었다.
용진에겐 정수라는 친구가 있다. 정수는 용진이 가장 싫어하는 동시에 구원해 주고픈 부류의 사람이다. 그의 옷차림은 무신사 상위랭킹의 종합과 같았고 좋아하는 노래는 싸구려 감성의 양산형 발라드다. 무엇보다 최악인 건 액정에 금이 간 LG폰을 4년째 쓰고 있는 것이다.
가엾은 정수를 구해주기 위해 용진은 자신의 보물과도 같은 홍대의 모 편집샵에 데려가 멋지게 꾸며주기도 했다. 게다가 용진과 같은 영혼을 공유하는 사람들만 모인 자신의 아지트인 힙합클럽까지도 데려갔다. 찌질한 사람인 정수는 그런 곳에서 즐기지도 못하고 피씨방이나 가자며 징징거리기까지 한다. 화가 난 용진은 정수의 찐따스러움이 얼마나 한심한지 늘어놓는다. 그렇게 용진은 정수와 한동안 만나지 않았다.
용진은 자신의 오랜 꿈을 위한 노력을 해나갔다. 힙스터들과 함께 즐기기 위한 장소로 빈티지한 느낌의 북카페를 만들기로 결심했다. 그는 ‘장사의 신’ 같은 여러 자기 계발 유튜브를 보면서 혼신의 노력을 했다. 또한 주에 2번씩 피자집 알바를 이어가며 사업자금을 불려 갔다. 나머지 5일 동안은 예술적 감각을 유지하기 위해 힙합 커뮤니티와 인스타그램을 넘나들며 시간을 보냈다.
몇 년 뒤 용진은 우연히 정수를 만났다. 정수는 용진과 멀어진 후 공무원 시험에 도전해 합격했다고 한다. 칙칙한 정수에 걸맞는 직업을 가지게 된 것이다. 애써 축하한다고 말했지만 용진은 정수가 지난번 자신의 충고에도 변하지 못한 그저 그런 회색빛 어른이 된 것이라고 탄식한다. 정수가 용진에게 근황을 물어보자 용진은 자신의 화려한 계획들을 조리 있게 펼쳤다. 물론 아직 사업자금을 다 모으진 못했지만 사업 구상은 다 끝났다. 용진은 정수의 계획에 혀를 차며 용진을 비난한다.
-으유 한심한 새끼야. 홍대병 걸린 거 이제 좀 컸다고 괜찮아졌을 줄 알았는데 아직도 그러네. 인스타로 장사의 신 캡처한 거 스토리 올리면서 사업 준비하는 척이나 하고 변변한 책 하나 읽지 않으면서 무슨 사업이냐.. 그냥 너도 나처럼 미래 안 보이면 공무원이나 준비해라. 공부하는 법이랑 팁 같은 건 내가 다 알려줄 테니까…
용진은 이제 정수가 구원조차 안 되는 망한 인생으로 밖에 안 느껴진다. 한 번뿐인 인생인데 공무원처럼 박봉 받아가며 자신의 인생을 한정 짓는 게 얼마나 한심한 일인지 정수는 모르는 거다. 용진과 정수는 좁혀지지 않는 의견차이에 결국 씩씩거리며 다시 헤어졌다. 집에 들어온 용진은 인스타그램에 교묘하게 정수를 저격하는 스토리를 올린 채 잠에 든다. 내일은 피자집 알바날이니 일찍 잠에 들어야 하는 탓이다. 시간을 쪼개가며 미래에 정진하는 자신의 모습에 뿌듯함을 느낀 용진은 편안한 웃음을 지으며 잠에 든다.